2005.2 | [교사일기]
욕심 많은 교사의 책상 세 개
현은주 구리중학교 특수교육 교사(2005-02-15 14:15:11)
컴퓨터 활용 기능대회에 출전하는 아이를 데리고 수원을 다녀왔다. 대회는 오전에 끝이 났지만, 구리에서 수원까지 왕복 4시간이 걸리기에 학교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하교하고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의 하교를 챙겨주신 옆 반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할 겸 교실로 들어서니, 선생님께 웃으면서 말씀하신다.
“아침에 말야. ○○가 선생님 없다고 찾더라. ‘현은주 없네.’ 라고 말하면서 말야”
“아니 감히 선생님께 현은주라니요. 이 녀석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 입꼬리는 위로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한 번도 먼저 현은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던 아이가, 늘 ‘내가 누구니?’ 라고 되물을 때만 현은주 선생님이라고 말하던 아이가, 아침부터 나를 찾았다니. 마음에 차오는 것은 기쁨이고, 얼굴에 가득한 건 웃음이었다.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열명의 아들들 (우리학교는 남자중학교이고, 우리 반은 열 명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장애를 가진 학생이고, 나의 직업은 특수교사이다. 그러면 사람은 “특수교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되묻는다.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특수교사”란 ‘장애를 가진 학생 즉, 특수교육대상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설명하면 열 명의 아홉은 “참 좋은 일을 하시는군요. 마음이 비단결 같이 고우세요” 라고 칭찬(?)한다. 아마, 초등교사, 중등교사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되묻고 “교사”라고 대답하면 나처럼 비슷한 칭찬(?)을 받게 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장애인은 늘 불쌍하고 돌보아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 학생이며,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나는 특수교육을 전공한 교사일 뿐이다. 초등교육, 국어교육을 전공한 교사들처럼. 나는 여러 교사들 중 특수교사라 불릴 뿐, 특별하게 마음이 곱다거나 불쌍한 장애학생을 사랑과 봉사의 실천으로 돌보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의 교단일기는 아이들과 나 사이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그러나, 무척이나 달콤한 행복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2월 말 새로 배정받은 교실을 정리하기 위해 문을 들어서니, 처음 나를 맞이한 물건은 교단이었다. 교단은 학생들이 교사를 바라볼 수 있는 정적인 교차점이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각자의 걸상에 앉아서 교단근처에 서 있는 교사를 바라보는 시선들. 교사가 부여받는 제한된 범위에서의 교단. 문득 교단을 바라보는 정적인 시선에 생동감이 얼마만큼 활동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었다. 그래서 교단을 갖다버렸다. 교단을 버리고 나니 늘 교단의 뒷자리를 지키고 있던 칠판의 자리가 무색해졌다. 그러나 칠판은 교실의 여러 곳이 될 수 있으며, 꼭 칠판이라 불리는 물건에만 판서나 교과내용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교단이 사라진 교실에서 나는 교사 스스로의 활동성과 아이들의 활동성의 폭이 무한대로 (교실 밖을 벗어날 수 없지만) 넓어지길 바랐었다.
교단을 없애고 교사책상을 칠판에 바싹 붙이면서 우리 반에는 세 종류의 책상이 생기게 되었다. 공부하는 책상, 대화의 책상, 편안함의 책상. 공부하는 책상이 말 그대로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책상이다. 대화의 책상은 남중이란 특성상 손쉽게 주먹이 오가는 걸 막기 위해서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걸 가르치기 위해서) 만든 책상이다. 뾰족 솟은 마음을 둥글게 하잔 뜻에서 둥근 책상으로 만들어놓았지만, 1년간 대화의 책상에서 오가는 건 욕설들과 책상을 내리치는 손바닥이 대다수였다. 편안함의 책상은 사실 책상이 아니라 소파이지만, 교실에 소파를 두는 건 보건실 외에 잘 허용이 되지 않기에 학교장님이 오가실 때 얼른 소파 앞으로 책상을 붙여두는 재빠름을 보이곤 한다. 45분 공부하고 10분 쉬는 것이 어른에게도 힘이 든데, 아이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마음과 몸이 쉬고 싶을 때는 쉬어야 하는 것이 이치이니, 그 이치를 따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책상이 편안함의 책상이다.
이렇게 세 책상을 가지고 나와 열 명의 아들의 동거(?)생활은 시작되었다. 처음에 우리는 세 책상을 오가면서 많이 싸우고 다투고 화를 냈었다. 그건 서로 익숙하지 않아서였기 보다는, 아들들을 나와 동등한 입장으로 대하려는 내 욕심 때문이었다. 공부보다 중요한건 친구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다른 이를 배려하는 마음이라 하여 대화의 책상으로 아이들을 이끈다. 학교가 지겹고 수업이 심심(?)할 때는 편안함의 책상으로 내몰며 아이들에 건 나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무던히도 아들들을 들볶았다.
‘네 마음속에 있는 걸 대화해 보자’
‘네 생각을 풀어보자’
아들들의 마음상태를 다 가늠하지도 못한 채 내 딴엔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서 전전긍긍했었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다 하나씩 하나씩 아이들을 담으면서 신뢰가 쌓여가고, 그제서야 아들들은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되었다. 아들들이 마음을 열 때, 보여준 모습과 이야기들은 학기 초와는 사뭇 다른 모습들이었다. 더구나 특수학급에 소속되어 있다고 마음 한곳에 불편함을 갖고 살아가는 아들들이, 서로의 장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받아들이고, 교사의 마음을 알아가고, 자신을 표현하고, 대화하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교육이란 지식전달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부모의 마음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내 부모님도 이러 하셨겠구나’란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을 통해서 나를 보고, 나를 통해서 부모를 본다. 그리고 다시 아이들을 통해서 아이들을 보게 된다. 가르치는 일은 아이들의 성장을 꾀한다고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의 성장을 꾀하는 밑거름이 된다. 성장하지 않는 교사는 살아있는 교사가 아니다. 아이들은 늘 교사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주며, 교사는 이를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아이들에게 되돌아가게 된다. 이로서 교사는 성장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아이들을 늘 기억하고 있는 건 그 시간이 살아있음을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2004년, 교실 속에서 나는 살아서 성장하고자 팔딱거리는 사람이었다. 나를 키우는 건 4할은 부모님이요, 4할은 아이들이다. 4할의 아이들, 아이들에게 과연 나는 살아있음의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었던가? 반문하게 된다.
그 질문에 아들들은 어떤 대답을 내릴까? “2004년 동안 아들들이 즐거워했던가?”를 되묻는다면 쉬이 답을 유추할 수 있을 터이다. 그리고 난 아들들이 웃으면서 답을 해주길, 아들들이 나를 사랑해주길 바라는 욕심 많은 교사이다. 이 욕심은 교직생활 내내 나를 괴롭히면서 나를 즐겁게 할 욕심일 것이다. 그래도 이 욕심을 가졌으니 나는 정말 행복한 교사이다.
현은주 | 197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대학교 중등특수교육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구리중학교에서 특수교육 교사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