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 | [문화저널]
[김규남의 전라도 푸진 사투리]흐리하리풍더쿵
김규남(2005-02-15 14:11:42)
방귀를 소재로 한 우스개 소리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어메가 똥 뀌면 내가 배아프당가’가 으뜸이다. 그것도 구사력 좋게 들어야 제 맛이 난다.
아, 이눔의 배가 느닷없이 살살 틀리더니 방구가 살살 나올려구 해서 전딜 수가 있는가. 아, 요리 옴착, 조리 옴착 참니라고 그냥 옴착옴착 참지. 참은게, 참었다 뀌는 놈의 똥은 더 영글개 나오네. 아 전디다 못해서 그냥 ‘쀼우우-웅’. 아하, 나와번졌거든. 그냥 얼굴이 삐얼건해져 갖고는 시아재 앞에서 헐 일이라고?
그리하여 이미 당한 무안을 극복해보려고 자신의 실수를 젖먹이 아이에게 떠넘겨 보려했다가 예상치 못하게 어린 아들의 받아치기 “어매가 똥 뀌먼 내가 배 아프당가”로 치명타를 맞는다는 이야기다. 별 것 아닌 소재일망정 토박이 화자의 이야기 구사력은 견디다견디다 ‘영글게’ 뀐 방귀 소리 그리고 얼굴이 벌개져버린 계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은 마치 김홍도의 민속화 한 편과 견줄 만하다.
이야기를 이야기답게 만드는 여러 장치들이 있겠지만 앞서 구사된 이야기에서는 상황을 구체화하는 장치로서 의성어와 의태어들이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배가 살살 뒤틀리더니 방구가 살살 나오려구 해서’는 일정한 시간 동안에 서서히 진행되는 신체의 변화 그리고 ‘요리 옴착, 조리 옴착 참니라고 그냥 옴착옴착 참지’에서는 애써 방귀를 참는 모습, ‘참었다 뀌는 똥은 더 영글게 나오네. 전디다 못해서 그냥 쀼우우웅 나와번졌거든’은 안타깝게도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결국 얼굴이 ‘삐얼건해져’ 버린 귀결까지를 우리 모두 즐겁게 수용하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음성상징어들의 역할 때문이다.
기실 방귀 이야기의 백미는 ‘흐리하리 풍더쿵’이다. 부잣집 규수를 사모하며 ‘근근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는 노총각이 삼 년 정성으로 규수를 아내로 맞게 해달라고 빈 끝에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쪼슥쪼슥’ 다가온 잠 속에서 얻은 비결로 규수가 눈 오줌자리에 심지 세 개를 박아놓자마자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긴다.
아, 큰애기가 밥을 헐라고 쌀을 내러 들어간게, 아, 이눔의 느닷없이 아랫두리서 ‘흐-리 하-리 풍더쿵, 흐-리 하-리 풍더쿵, 흐-리 하-리 풍더쿵’ 아, 느닷없이 이 소리가 난개 찬찬히 가믄 ‘흐-리 하-리 풍더쿵’ 조금 싸게 가면, ‘흐리 하리 풍더쿵’. 어깨를 들썩거리여 빠르게 걷는 시늉을 하며 아, 이거 큰일났거든. 큰일났어. 아, 가만히 가만가만 들어가서는 머리를 싸매고 들어누웠어. 밥도 못허고, 아 몸만 움적거리면, “흐리 하리 풍더쿵”
어떤 방귀 소리가 이렇게 리드미컬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만 이 이야기 역시 방귀 소리를 언어로 상징화한 ‘흐리하리 풍더쿵’이 재미의 핵심이다. 천천히 걸으면 ‘흐으리 하아리 풍더쿵’ 빨리 걸으면 ‘흐리하리풍더쿵’. 이 해괴한 방귀 소리를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낸 것일까. 청산별곡의 후렴구 ‘얄리얄리얄라셩’에 견줄 만하지 않은가.
소재 자체가 지저분하지만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콩밥 먹고 난 후에 ‘똥구녁에 콩 두 조각이 걸려서 나는 소리’는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어떤 사람이 콩밥을 먹고 장으를 가는디 어디서
( ) 소리가 나.
“아, 이상허다. 어서 이렇게 소리가 나까?”
그리서 갓을 훌떡 벗어 집어던지고 걸어가. 그리도 어디서 ( ) 혀. 두루매기를 벗어 내버리고 띠어가도 어디서
( ) 혀. 그리서 저고리도 벗어버리고 나중으는 속것까지 다 벗고 막 뛰어가는디도 ( ) 소리가 나. 그리서 똥구녁을 본게로 콩 두 개가 있더랴.
이 말 같지 않은 이야기도 이야기로 가치가 나게 만드는 장치는 또 하나의 해괴망측한 소리 ‘오각조각’이다. 그럴 것 같지 않은가. 꼭 그런 소리가 날 법하지 않은가. 두 단어를 반복해서 단어를 만들어내는 장치(reduplication)는 만국 언어의 공통적인 것 중 하나인데 우리말에는 이런 장치로 만들어진 단어가 매우 많다. 예를 들면, 방긋방긋, 울긋불긋, 알쏭달쏭, 오순도순, 이서방인지 개서방인지 등이다. 방긋방긋은 똑 같은 음절을 두 번 반복한 것이고 울긋불긋 등은 어떤 하나는 의미가 있는 단어의 어근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가 없는 단어이다. 즉, ‘울긋불긋’의 예를 가지고 말하자면 ‘불긋’은 의미를 가진 단어 ‘붉-’에 출발한 것이며 상대적으로 ‘울긋’은 아무런 의미가 없이 단어의 리듬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요소이다. ‘오각조각’은 ‘콩조각’의 ‘조각’이란 단어가 의미의 연상 작용을 이용하여 소리의 상징성까지 도출하게 만든 교묘한 의성어이며 여기에 ‘오각’이 적절하게 어울려 만들어진 음성상징어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흐리하리 풍더쿵’의 ‘흐리하리’도 방귀가 ’새어나오다’의 의미를 떠오르게 하는 ‘흘리-’ 혹은 ‘흐리-’와 리듬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하리’가 어울려 이루어진 단어인 셈이다.
리듬의 백미는 민요가락이고 민요가락의 리듬으로 다져진 우리 동네 말 밭에는 참신하고 정교한 상징어들이 ‘곰실곰실’ 열렸더라.
제비제비 초록제비 / 나부나부 붉은나부 / 아리금살 꾀꼬리는 / 뉘간장을 이려고
저리곱게 생겼는고 / 연밥에다 밥을싸고 / 풀잎에다 진게싸고 / 앞냇강에 넥기질가니
여그저그 뛰는잉어 / 못다잡고 해가졌네 / 우리집을 들어가니 / 양손에는 행주들고
방그작작 웃는양은 / 아리금살 꾀꼴레라 / 뉘간장을 녹일라고 / 저리곱게도 생겼는가
(자료 출처 : 한국구비문학대계 5-3 전라북도 부안군 편, 정신문화연구원<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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