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인도영화를 보다
신귀백(2005-02-15 14:06:36)
카트만두로 떠나기 전날, 뉴델리의 ‘어디언 시네마’ 극장을 찾았다. 일년에 800편의 영화를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제작편수를 자랑하는 이 동네 영화를 '볼리우드 Bollywood'라 부르는데, 이것은 봄베이와 헐리우드를 합친 말이란다. <Ab Tumhare Hawale Watan Saathiyo>이란 영환데(제목이 무슨 뜻인지?) 척 보니 전쟁 영화로 한국의 <태극기 휘날리며>같은 분위기다. 밤 9시 45분에 시작하는 영화는, 테라스는 80루피(1루피가 약 30원)인데 아래층은 50루피다. 좌석번호는 지정돼있고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몸수색을 한다. 캠버전에 대한 공포는 여기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힌두어로 진행되는 영화는 쉬운 영어가 섞여 나와 대충 짐작이 가는데, 1971년 인도 파키스탄 전쟁을 기초로 한다. 군함 세 척이 부감샷으로 등장하면서 잠수함을 잡느라 폭뢰를 쏟아 붓고 잠수함의 어뢰가 군함을 향해 명중해가는 것이 할리우드 뺨치는 솜씨다. 항상 전쟁영화의 영웅으로 나온다는 터번을 두른 시크교 장군 역할을 한 인도 국민배우 아미타브 밧찬(Amitabh Bachchan)은 숀 코네리의 카리스마에 못지않다. 그런데 하나의 시퀀스가 끝날 때마다 배우들이 자막으로 소개되는 인트로만 시작 후 정확히 30분이 걸렸다.
타지마할을 만든 그들처럼 스케일이 빵빵한 것이 재미있을 것 같던 인도국방부 홍보영화는 갑자기 세월을 건너뛰는데, 어! 장렬히 전사하는 군인의 모습이 애절했던 전쟁영화는 그가 다시 살아나 (그의 아들) 장교에 입문하는 과정 속에서 갑자기 로맨스 영화로 바뀐다. -알고보니 1인2역이었다!- 이미 결혼한 여자 Shweta라는 춤추는 여인이 등장할 때는 항상 화면이 뽀얀데 아마도 포토샵을 사용하는 듯하다. 쉽게 말해, 춤과 노래의 공주과 선수 A가 있고 그를 사랑하는 활달한 남자 주인공, 또 그를 그늘에서 수줍게 연모하는 여주인공 B가 있다. 실내에 있어도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남주인공은 B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는지 모르는체 하는지를 모르겠다.
전쟁 블록버스터가 뮤직비디오 스타일로 바뀌면서 신나는 노래에 맞추어 수백 명이 등장하는 군무 혹은 남녀주인공의 ‘닭살댄스’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상상 장면인지 실제 장면인지도 역시 모르겠다. 판타지다. 애국심과 군인정신에다 두 나라 사이의 평화 거기다 삼각관계를 버무리는데 그 향신료가 바로 음악과 춤으로 장식을 한 것이 바로 맛살라(masala 향신료) 무비란다. 허 참! 이 영화의 춤과 노래 장면이 인도 MTV 뮤직비디오 1위인 것을 호텔에서 확인했다. 그렇다. 다민족 다언어 국가를 묶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음악과 춤일 것이다.
1시간 30분 동안 계속되는 우연의 남발(의도적?)과 댄스는 솔직히 지루했고 쏟아지는 잠도 주체할 수 없었다. 화장실과 매점도 다녀오라고 친절히 ‘쉬는 시간 Intermission’이 자막으로 나오며 불이 켜질 때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시티 오브 조이>의 인력거꾼들은 이미 도태되고 없는 도시의 늦은 밤, 바싹 마른 남자가 수건으로 땀을 닦는 사이클릭샤를 탔다. 나는 후반 90분을 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남주인공은 요녀와의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겪은 후 카마수트라 직전에 깨달음을 얻고서 같은 장교인 B와 더 우아한 춤을 추고 애국심에 불타는 군인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해피엔딩으로 갔을 이 영화를 솔직히 한 수 접어주고 들어갔지만 발상만은 갸륵하다고 해야 하나? 돌아와 인도 사이트를 뒤지니 평단도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영화였다. 평론가 말이 ‘구성이 좀 헷갈리고, 개념이 잘못된데 다가 아미타브 밧찬도 잘못 캐스팅 한 듯’하단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나라라고 하나 내가 겪은 지독한 인파와 소떼의 도시 바라나시는 어느 곳이나 영화속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난에 찌든 갠지스 강가의 사람들은 신화의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이란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었다. 어릴 때 다닌 교회나 또 품위 있는 한국 사찰 등 근대성의 경험적 방법론에 익숙한 종교관 탓일 것이다. 베컴의 슛 같은 멋진 영화, 품격 패키지 여행, 감미로운 일본소설, 좋은 자동차, 지적이면서 아름다운 여인 등 우리가 숭배하는 우상들을 갠지스 강 화장터에 버리고 오기엔 보름이란 날짜는 너무 짧았을 것이다. 싱겁지만 나마스떼! butgoo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