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 | [시]
한 외로운 사내의 서러운 노랫소리
안도현 시인(2005-02-15 14:05:18)
내가 백석의 시를 처음 읽은 것은 1980년, 대학 1학년 때였다. 은사이신 박항식 선생님이 쓴 『수사학』이라는 책에 시 「모닥불」이 인용되어 있었다. 그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갓신창’ ‘개니빠디’ ‘너울쪽’ 같은 몇몇 말들이 좀 낯설었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단 세 문장으로 이루어진 간명한 시 형식 속에 놀랍게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타오르는 것을 보고 나는 금세 뜨거워지고 말았다. 나는 그 은사님을 찾아 뵙고 백석의 시에 반해 버렸다고 고백했고, 그의 다른 시도 읽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래서 그 후에 백석의 시를 여러 편 접하게 되었다. 아마 시집 『사슴』에 수록된 시들이었던 것 같다. 나는 백석의 새로운 시를 만날 때마다 노트에 한 편 두 편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공개적으로 그의 시를 논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백석의 시를 베낄 때면 묘한 흥분과 감격에 휩싸이곤 하였다.
몇 년 후, 선배 시인 이광웅이 ‘오송회’ 사건으로 복역하다가 출옥한 후에 나에게 또 백석의 시를 보여주었다. 낡은 대학노트에 아주 정갈한 글씨체로 또박또박 필사한 시였다. 백석의 시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면 소주 몇 병이 저절로 비워졌다. 사회과학적 열정과 기운이 문학을 견인하던 80년대에 백석의 시는 내가 깃들일, 거의 완전한 둥지였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집회에 참가해서 구호를 외치다가 돌아와 쉴 곳도 그 둥지였고, 잃어버린 시의 나침반을 찾아 헤맬 때 길을 가르쳐 준 것도 그 둥지였다.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은 일찍이 김현 선생이 ‘한국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 중의 하나’라고 격찬한 바 있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두 해 전, 백석이 남한의 잡지(『학풍』 창간호)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보다 시를 끌고 가는 유장한 호흡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가야 하는 한 외로운 사내가 흥얼거리듯 고백하는 ‘슬픔과 어리석음’이 읽을 때마다 나에게는 서러운 노랫소리로 들려온다. 거의 모든 행에서 쉼표를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그 쉼표는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처지에 선 자의 안간힘이었을까. 쉼표 하나 하나에 화자의 참을 수 없는 ‘슬픔이며 어리석음’이 아프게 고여 있는 것만 같다.
백석은 시에서 자신의 감정을 격하게 몰고 가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여기서는 감정의 안과 바깥이 훤히 보인다. 수없이 쉼표를 찍으면서 토로하고 싶은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감정의 바깥이라면,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는 결구는 역시 감정의 안쪽이라고 할 수 있다. 할 말을 다 하되 격정 때문에 스스로 시적 품격을 떨어뜨리지 않는 절제력이 백석 시의 매력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이 시에서 만난 갈매나무를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심어 두었다. 그리고 언젠가 거금을 들여 『한국의 자원식물』이라는 책 다섯 권을 구입했을 때 맨 먼저 갈매나무부터 찾아보았다.
“……중국 및 우리나라 전국 각지의 해발 100-1,600m 지역의 산야지 곡간에 자생한다. 낙엽관목이며 높이는 5m 안팎이고 가지의 끝이 가시로 변한다…….”
나는 사진 속의 갈매나무를 보면서 쌀랑쌀랑 눈 내리는 산중에 서 있을 갈매나무를 떠올렸다. 그 굳고 정하다는 나무…… ‘굳다’나 ‘정하다’와 같은 형용사가 왜, 유독, 갈매나무라는 나무에만 어울리는 말인지 알 듯하였다.
안도현 |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과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모닥불』, 『서울로 가는 전봉준』,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