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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 | [문화저널]
고품격 가족뮤지컬 바로보기
최기우 작가(2005-02-15 14:01:37)
‘보따리 극단’이 부쩍 늘었다. 문화체험의 중요성과 부모들의 교육비가 정비례하면서 성수기와 비수기를 가리지 않고 아동극(가족극)이 도내 곳곳에서 올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제대로 된 작품은 한 달에 한두 편 꼽기도 힘들다. 애드립으로 채워진 대본과 성의 없는 음악, 전달력마저 떨어지는 실력 없는 배우들, 완성도를 고민하지 않는 스태프, 국적을 짐작할 수 없는 의상과 조악한 소품 등 대부분 함량미달인 이 낯선 극단들은, 오히려 뛰어난 상술로 공연장마다 위세를 떨친다. 무차별 살포된 할인권 전단지로 관객을 현혹해 결국 ‘배우와 폴라로이드 사진 찍기’등으로 ‘(자신의 티켓은 끊지 않고 공연장 로비에서 서성이는) 알뜰한 엄마들’의 쌈짓돈까지 털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질을 꼼꼼하게 점검하지 않는 문화시설 대관 담당자들의 허술한 운영도 ‘보따리’를 더 두툼하게 하는데 한 몫을 한다. 이들의 반짝 공연 속에서 지난 달 반가운 공연이 있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기획·제작한 가족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연출 왕래우,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와 지역극단인 까치동의 인형창극 ‘호랑이님 생일잔치’(연출 정경선, 전주창작소극장·전주덕진예술회관)다. ‘오즈의 마법사’는 2001년 소리전당을 위탁·운영하던 중앙공연문화재단이 올렸던 작품을 토대로 대본·안무·의상·무대(소품)·음악 등을 모두 새롭게 해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변화시켰다. 동명의 동요에서 창안한 ‘호랑이님 생일잔치’는 창극식 대사법과 국악 선율의 노래를 넣어 제작한 초연작품이다. 지역에서 자체 제작해 해를 넘기며 모처럼 장기공연을 선보인 두 작품의 제작비는 각각 1억8천만 원(복권기금 등 : 1억4천만 원)과 9백만 원(전주시보조금 : 3백만 원)으로 큰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제작과정을 거치며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한달 여의 짧은 연습기간과 배우 구하기의 어려움은 여전히 문제였다. 제작진의 노력과 욕심은 무대에서 그대로 드러났지만, 결국 두 작품 모두 관객에게 서둘러 제작됐다는 것을 들키고 말았다. ‘오즈의 마법사’는 노래와 춤 연습에 치중해 연기력이 부족했으며, 배우들의 동작도 유쾌하지 못했다. 공연 첫 날 팜플렛이 배포되지 못한 것도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한 예다. ‘호랑이님 생일잔치’는 인형과 조정자가 한 몸을 이루지 못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채워졌더라도 인형을 조작하는 기술이 아이디어를 따라가지 못하면 왠지 초라하고 엉성하다. 가장 아쉬운 건 현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수탁자인 예원예술대학교에서 처음 기획·제작해 올린 작품을 올곧게 지역에서 생산된 작품이라고 자랑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공개오디션으로 출발부터 화제를 모았던 ‘오즈의 마법사’는 모두 4차례의 오디션을 치렀지만, “45명에 달하는 주요 출연진 대부분을 지역 예술가와 어린이들로 채우겠다”는 선언은 실패로 돌아갔다. 연출과 작곡, 안무 등 주요 스태프뿐 아니라 주요 배역인 도로시·허수아비·나무꾼·사자 모두 서울에서 초빙됐기 때문이다. 전당에서는 “지역 내 기존 배우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려웠다”며 “서울에서 오디션을 통해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1년 제작 당시에도 도내에서 연기자들을 공개 오디션으로 선발했고, 최경식·정경림·국영숙·최지훈·이혜지 등 전문 연기자들의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냈던 것과 비교하면 문제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내심, 위촉을 기대하는 일부 배우들의 노블레스 노마드(Noblesse Nomad·귀족적 유목민)적인 특징만을 탓할 것도 아니다. 가장 큰 원인은 각 극단의 시스템과 전북 문화계의 특징을 먼저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결합하려는 의지의 부재다. 기존 활동 배우들이 다른 일정으로 참가가 어려웠던 ‘호랑이님 생일잔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장 숙련된 연기자들이 인형을 조정해야 한다”고 늘 주장하던 연출자는 결국 ‘끼 있는 배우 지망생 찾기’에 나서야 했다. 원인은 인형극에 대한 기존 배우들의 선호도가 적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홍보효과와 친근감을 노린 배우 선택, 스타시스템 도입이다. ‘오즈의 마법사’는 유명 개그맨(김병만·이수근)과 가수(은별)를 불러들였다. 바쁜 일정을 쪼개느라 유명인들은 연습이 충분하지 못했고, 결국 공연의 질을 몇 단계 낮추고 말았다. 다른 배우들보다 10배가 넘는 출연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유명인을 무대에 올려야 하는지는 과제로 남았다. 반면 지역에서 꽤 알려진 어린이배우(오하늘)를 주요배역으로 출연시킨 ‘호랑이님 생일잔치’는 또래의 아이를 무대에 세운 효과를 충분히 누렸다. 뮤지컬과 인형창극을 앞세운 만큼 두 공연 모두 음악을 적절하게 활용한 것도 한 특징이다. ‘호랑이님 생일잔치’는 전통 국악선율의 흥겨움이 있었고, ‘오즈의 마법사’는 뮤지컬 특유의 발랄함이 돋보였다. 특히 ‘오즈의 마법사’는 가수 출신인 주인공을 효과적으로 살렸으며, 합창의 즐거움을 알려줬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지나치게 늘어지고 슬픈 가락이 많았던 점은 아쉽다. 또 단어의 선택이 아이들의 정서와는 거리감이 느껴졌던 것도 지적된다. 특히 ‘동쪽마녀가 죽었어. 너무 좋아’, ‘사람을 녹이는(녹여서 죽이는) 스프’ 등의 대사는 위험하다. 팥쥐가 결국 사지가 찢겨져 젓갈로 담가졌다거나, 신데렐라의 언니들이 억지로 신발을 신으려 엄지발가락을 잘랐다는 일화의 ‘잔혹’함을 느끼는 나이가 되면, 어린 시절 공연을 보며 즐겁게 따라 불렀던 노래의 한 소절을 떠올리며 몸서리칠 아이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예연감을 살펴보면 1997년부터 해마다 공연되는 어린이연극은 국내 제작 공연물의 25%~30% 정도를 차지한다. 2001년 이후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 자녀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이 치열한 교과 교육열 못지않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오즈의 마법사’의 관람가능 연령은 24개월 이상.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고품격 가족 뮤지컬’을 내세웠다. 진정한 의미의 가족극은 연령을 초월해 관람 가능한 공연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어린이를 혼자 극장에 들여보내지 말고 부모와 함께 관람하며 작품에 대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이의 눈높이를 의식하느라 어른들이 보기에 유치한 작품이 주종을 이룬다. 아무리 고품격이라고 해도 24개월 된 아이와 30~40대 부모의 감성이 접점을 찾기는 힘들다. 그래서인지 아이와 부모의 눈높이를 동시에 맞추며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내비친 두 작품이지만, 가족뮤지컬이나 인형창극의 좋은 사례로 기억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배우들과 손 한번 잡고, 사진 한번 찍기 위해 떼를 쓰는 아이들과 얇아진 지갑을 호호 불어가며 공연장을 나서야 하는 부모들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는 작품에 대해 조금만 더 고민하자. 아동극 관계자들을 위한 표어 하나. ‘부실한 아동극은 동심만을 멍들게 하지 않는다. 가족의 나들이를 쓸쓸하게 하며, 지역 무대 인력들의 살림까지 파탄 낸다. 더 큰 문제는 미래 연극 인프라를 말살시키는 요소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기우 |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를 통해 등단해, 전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1년 연극 ‘귀싸대기를 쳐라’를 시작으로 무대극 쓰기에 주력하고 있다. 제19회 전북연극제와 제21회 전국연극제에서 희곡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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