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 | [문화시평]
화랑을 통해서 본 전북미술
구혜경 객원기자(2005-02-15 13:59:55)
미술관과 화랑의 의미
미술관과 화랑은 그 성격과 역할에서 공통 부분이 있지만 이름이 다르듯이 서로 다른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두 공간의 의미를 정의해보면, 미술관은 여러 종류의 박물관 가운데 하나로서 과학자료를 중심으로 다루는 과학 박물관, 역사자료를 중심으로 다루는 역사박물관과 함께 중요한 세 분야를 형성하고 있다. 즉 미술관은 미술박물관의 줄인 말로 이해하면 된다. 미술관은 그 역할이 수집의 역사와 함께 탄생하여 지금에 와서도 소장품의 수집과 보존, 연구와 해석, 그리고 대중을 향한 교육과 여가의 제공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에 오면서도 변하지 않는 부분이고 다만 역할을 더 세분화하고 전문화하여 정규 교육의 보조적 역할로서의 교육 기능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평생 교육 기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화랑의 역할은 미술품을 진열, 전시하고 판매하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 미술관의 복합적인 기능과 달리 단순한 형태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들이 작품 발표의 장소로 개인의 화랑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근대 이후 미술사를 주도해 가는 무대로 전개되고 있어 미술관과 다른 또 하나의 미술 영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일부 사설 화랑들은 특성을 가지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미술관이 가지는 역할까지도 수용하는 부분이 있어 오히려 더 복합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즉, 화랑 가운데 구입자와 화가 사이의 중개적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창조적 의욕으로 교육과 연구, 수집을 함께 하는 곳이 많아졌다. 이렇듯 미술관과 화랑이 의미와 역할이 다른 성격을 가지면서도 결국은 공통의 분모를 가지고 있다.
전북의 미술관과 화랑의 현황
우리나라 박물관, 미술관의 역사를 문헌을 통해 멀리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왕실을 위한 동·식물원 성격의 공간이 있었으며 서화를 수집하여 진열하고 이러한 저장고의 경비를 엄중히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오늘날의 미술 전시장과 비슷한 형태를 갖춘 공간이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근대에 들어서면 이왕가(李王家) 박물관이 일반에게 공개되면서부터 박물관이 처음 탄생하였다.
1909년 덕수궁 석조전이 완공되자 이 곳에 고종 재위 당시 외국 사신들이 가져온 각종의 진귀한 물건들이 보관되고 일본의 근대 미술이 전시되기도 했다. 1938년에는 덕수궁 내에 새로운 미술관이 세워지고 이왕가 박물관에서 미술품들이 이곳으로 분리 이관되어 이왕가 미술관이 설립된다. 이 건물은 8개의 전시실 이외에 수장고, 강당 등 미술관으로서의 제 모습을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관이었다. 이곳이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이 되었다. 이외에 1982년에 개관한 호암미술관, 1971년 첫 전시회를 가진 간송미술관 등이 있으며 1990년대에 들어와 선재미술관, 월전미술관, 성곡미술관, 금호미술관 등의 사립미술관들이 설립되게 된다. 이밖에도 인사동을 비롯한 청담동, 사간동 등에 많은 사설 화랑들이 자리잡게 된다.
전북에서는 처음으로 1987년 사립미술관인 온다라미술관이 생기면서 미술문화 정착을 시도하였고, 이후 1990년 국립전주박물관이 개관하여 전북의 역사를 연구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밖에도 2002년 전주역사박물관이 근·현대사를 연구하며 박물관 형식으로 새롭게 자리를 잡아왔으나, 현대미술을 다루는 제대로 된 미술관 형식을 갖춘 곳은 2003년에 개관한 전북도립미술관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더불어 다방문화에서 출발한 전북의 전시 공간은 현재 민촌갤러리, 서신갤러리, 경원아트홀, 오스갤러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익산현대갤러리 그리고 2004년을 끝으로 폐관한 얼화랑 등 사설화랑들이 있다. 그 밖에도 각 지역 문예회관이 가지고 있는 전시공간들과 전북예술회관이 있으나 단순히 대관을 위주로 하고 있어서 본격적인 화랑의 역할은 하지 않고 있다. 이 시점에서 보면 많은 투자와 전문인력이 확보된 전북도립미술관만이 미술관 형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셈이다.
전북미술과 화랑의 현실
전북은 많은 문인들의 활동으로 문인화와 서예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지역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시작된 미술이어서 그런지 지금도 그 영향이 남아있어 현대미술 안에서도 전통미술을 지키려는 미술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 지역의 미술은 여러 가지 문제점과 그 속에 감추어진 장점들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북의 미술은 급변하는 현대미술 안에서 그 흐름이 유독 더디게만 느껴진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전북 나름의 미술들은 그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어서 형식적인 면과 내용적인 면으로 나누어 그 색깔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먼저, 전북 미술의 형식적인 면을 살펴보면 표현상 변화가 다양하지 않게 보인다. 이것은 현대미술이 급변하는 가운데 다양성을 추구하는 반면 여전히 추상이나 실험적인 형식보다는 전통을 바탕에 두고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작품들이 강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다보니 이제는 거의 회의적이 되어버린 영상매체를 이용한 작품들도 이곳에서는 아직도 실험적이고 신선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만큼 전통을 고수하는 경향들이 많아 그 흐름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현대미술 안에서 진부한 그림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다른 표현 방식의 한 미술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 지역만이 가지는 어떤 것, 또는 정체성 확립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뿐이다.
이미 현대미술은 어떠한 매체도 다 통용되는 그야말로 번득이고 눈을 자극하는 다양함의 천국이다. 그 속에서 눈의 피로를 덜어주고 내면을 자극할 수 있는 유형의 작품들이 있다면 오히려 그 쪽에 더 많은 시선이 끌릴 것이다. 현대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예술을 통해 휴식과 안정을 얻고 싶은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전북의 미술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움일 것이다.
그러나 전북 화단에는 전통을 고수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여러 다양한 매체들도 가지고 있다. 단지 그것이 어떤 큰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서서히 그 맥을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전북의 화단도 그 변화가 더디지만 늘 새로운 어떤 것을 향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단순한 전통의 지속적인 고수가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식에 있다.
예전부터 경제적인 안정으로 인해 편안함이 몸에 배인 우리에게는 그러한 토양적인 기질이 의식 변화의 느슨함으로 인해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더디게 하고 있다. 이것이 단점이면서도 장점이 되는 셈이다. 물론 변화가 더디기는 하지만 머무르지 않고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내용적인 면을 살펴보면 전북은 사회전반적으로 발전 방향을 전통성에 두고 있다. 그래서 ‘전통중심도시’를 만들어내고자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도 전북의 정체성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전통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전북의 미술이 이미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발전 방향을 유지하면서 진보적으로 변화한다면 오히려 더 많이 앞서나가게 될 것이다.
이렇듯 전북의 화단은 작은 색깔들은 가지고 있으나 큰 색깔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고 본다. 예술이라고 하는 분야가 어느 한 가지로 만들어질 수는 없지만 큰 흐름을 주도하고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색깔들을 모아서 하나의 큰 것을 만들어내야 하고 이것을 이끌어 갈 주도적인 역할에는 작가가 가장 큰 몫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화랑들도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경제적인 안정으로 인해 전북의 미술 흐름이 형성되었고 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현재의 화단(畵壇)을 어렵게 하고 있다. 경제와 예술은 밀접하게 관계하며 가장 민감하게 체감되고 있다. 그래서 전북의 화단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가 형성되는 시장논리가 예술에서는 전혀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 현실이다. 이렇다보니 창작자인 작가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곧 화랑들의 어려운 현실이 되버렸다.
전북 화랑들의 현실을 살펴보면, 얼마 전에도 폐관한 화랑이 있지만 운영상의 어려움이 극도에 달하고 있다. 이것을 벗어날 어떤 대안이 있지 않으면 전북의 화단은 더욱더 침체될 것은 기정사실이다. 현재 전북에는 국공립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전시장과 사설화랑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작가들은 늘 전시장 부족을 불편하게 생각하며 공간 모색을 해왔지만 현재는 거꾸로 화랑이 유치할 작가가 없어 고심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여러 공간들이 생겨나 부족한 수요를 충족시켜주었지만 여전히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형성되어 있다. 단지 상황이 반대적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공간 공급의 과잉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경제적, 사회적인 여러 여건으로 인해 많은 작가들이 화가로서의 길을 접는 경우가 많아져서 수요자들이 줄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대적으로 중앙화단은 새로운 거대 미술관이 생겨나기도 하고, 사설 화랑들이 개관하기도 하는 등 지역과는 반대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더욱 더 중앙화단으로 편중되는 인상을 가지게 된다. 여기에서도 시장경제 논리가 철저하게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의 화랑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전북미술의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던 화랑들이 서서히 주변의 힘에 밀려나지 않고 자생하기 위해서는 특성화, 세분화, 전문화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즉 화랑이 무엇이나 다 있는 잡화상이 아니라 한가지만을 고집하는 전문점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현재 전북에는 특성화된 곳으로 공예전문관과 특정적 시대를 다루는 박물관도 있지만 다양한 순수미술도 세분화하고 특성화하여 나름의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화랑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일 것이지만 일차적으로는 화랑을 운영하는 마인드에서 변화의 의식을 가져보고, 그 다음 그 곳에 내용을 담을 작가도 함께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화랑과 작가와의 관계에서 현실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창작에 대한 의욕과 미술문화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주체의식이 함께 어울어진다면 침체된 미술시장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문화예술을 유지시키기 위한 공적인 지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보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평이함에서 오는 식상함과 그로인해 생기는 무관심일 것이다. 화랑과 작가와 관람자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면 이들 삼각관계는 유지되기가 어렵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감지하고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화랑은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작가는 그곳에 담아 낼 내용을 위해 예술적 열정을 태워야하며, 관람자는 그렇게 혼신을 다해 만들어진 것에 관심을 가지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들의 관계 형성에서 전북 화단이 활성화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미술계도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다. | 원광대 미술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