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 | [문화저널]
[테마기획]백번의 손길이 만들어 낸다
최정학(2005-02-15 13:51:13)
한지는 예로부터 ‘백지’로도 불려왔다. 한지를 만드는데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지를 만드는 주원료는 닥나무 껍질을 벗기면 나오는 안쪽의 섬유질이다. 닥나무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으로, 한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로 2~3m 길이로 자란 일 년생 나무를 늦가을에 채취해서 쓴다.
채취한 닥나무는 일단 커다란 솥에 삶아, 겉껍질을 벗겨 흑피를 만든다. 이것을 하루쯤 물에 불린 뒤, 다시 잿물에 6~7시간 삶는다. 잿물은 주로 콩대나 메밀대, 짚 등을 태운 재를 따뜻한 물에 우려 걸러서 사용한다. 잿물에 삶는 과정을 통해 한지는 약알칼리성을 띠게 되는데, 이 화학적 성질이 한지의 산화를 방지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백피. 이 백피를 흐르는 물에 반나절 정도 담가두거나, 깨끗한 물로 2~3회 물을 갈아주면서 씻어낸다. 잿물과 당분, 회분, 기름기 등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런 다음, 깨끗한 물을 갈아주면서 햇볕을 쬐어 흰색을 띨 때까지 탈색시킨다. 이때 물 속에서는 햇볕의 작용으로 오존과 과산화수소가 발생하여 산화 표백 작용을 일으키게 되는데, 날씨에 영향을 받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점은 있지만 섬유가 손상 받지 않아 한지의 특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백피가 충분히 탈색되면, 표피에 남아있는 불순물들을 일일이 골라내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있는 닥의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시간과 인력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때문에 요즘엔 대부분 닥을 삶을 때 가성소다를 넣어 잡티를 표백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얻어진 닥은 평평한 돌 위에 올려놓고 나무 방망이로 2~3시간 두드려 섬유를 풀어준다. 이것을 지통에 넣고 물을 적당히 부어 잘 휘저은 뒤, 여기에 닥풀(황촉규즙)을 넣는다. 닥풀은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닥나무의 섬유점착을 좋게 해주어 종이의 강도를 증가시키며 얇고 균일한 한지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
한지를 뜨는 방법에는 전통기법인 흘림뜨기(외발뜨기)와 개량기법인 가둠뜨기(쌍발뜨기)가 있다. 흘림뜨기는 주로 섬유를 자유롭게 흘려보내면서 탈수를 하기 때문에 두께가 균일하지 못해, 서로 반대방향으로 뜬 두장의 종이를 겹쳐 한 장의 종이를 만든다. 손이 더 많이 가는 단점은 있지만, 섬유가 대각선 방향으로 배열되어 가둠뜨기로 만든 종이에 비해 질기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을 하루 동안 물기를 빼주고, 건조시키면 한지가 되는 것이다. 덜 마른 한지를 여러 겹 포개놓고 계속 두드려 주면 종이조직이 치밀해지고 윤이 나는 종이를 얻을 수 있는데, 이 공정을 다듬이질 혹은 도침질이라고 한다. | 최정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