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6 | [문화저널]
[박남준의 모악일기]
파랑새를 보았다
박남준(2003-04-07 14:22:29)
가까운 벗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너무도 갑작스럽게 떠나 보냈다. 스승이며 아우이며 사랑하는 벗이었던 사람, 그의 주검 곁에 가는 날 나는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으며 그 하늘에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진리를 찾아 날아오르는 자유로운 새를, 그의 영혼을 떠올렸다.
해마다 개울가 오동나무, 꼭 그 자리에 찾아와 새끼들을 키우며 살던 청딱따구리 한 쌍이 있다. 오월 어느 날, 그 청딱따구리의 둥지를 빼앗아 보금자리를 틀었던 찌르레기 부부는 벌써 새끼들을 다 키우고 둥지를 떠나갔다.
그런데 둥지를 빼앗기고 서럽게 울며 주변을 서성거리던 틀림없이 그 녀석들이 다시 그 둥지를 보수하며 깃 들어 알을 품기 시작한다. 한 이십여일이 다 되었는데 아니 나는 이 녀석들이 다른 둥지를 지어 살고 있으리라 여겼는데 지금껏 집이 비기를 기다렸단 말인가.
며칠 전이었다. 청딱따구리 암컷이 찌르레기가 떠나간 오동나무 구멍 옆에 앉아 울어대고 있었다. 그래 찌르레기에게 빼앗긴 그 집이 못내 잊히지 않았던 것이냐. 하긴 사람들도 살던 집을 억울하게 빼앗기거나 강제철거 당하는 일을 겪기도 한단다. 정들었던 집을, 어찌 그 일을 쉽게 잊을 수 있겠느냐.
그때였다. 어디에선가 청딱따구리 수컷이 그 옆으로 날아와 몇 번 마치 손사래를 치는 것처럼 날개 짓을 퍼덕이며 울다가 날아간다. 마치 나무래 듯이, 달래주듯이, 그만 잊어버리자고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 새들도 저렇게 가슴이 아펐던 것이구나. 그렇게 여겼었는데 그 둥지에 다시 알을 낳고 품고 있다니. 그랬었구나.
청딱따구리만이 아니다. 마당 앞 미루나무에 둥지를 틀었던 까치들이 집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악스러운 까치들이 대체 어떤 새에게 둥지를 빼앗겼는지 몹시도 궁금했다.
또한 그때 사랑하는 벗을 떠나보낸 나는 거의 매일을 술독에 빠져 징징거리고 있었다. 전화코드도 뽑고 모든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걱정이 되어 찾아온 형님이 있었다.
나는 그때 조류도감을 뒤지고 있었다. 부리가 주홍빛, 몸이 온통 까맣고 날개에 흰 줄무늬가 있었다. 조류도감을 다 뒤져도 알 수가 없다. 좀더 자세하게 봐야하는데 이 말을 들은 형님이 성능 좋은 망원경을 선물했다. 진작부터 사주고 싶었다고.
파랑새였다. 멀리서 볼 때 검은 색이었던 것이 그 푸른 하늘빛의 깃털을 가지고 있다니. 파랑새를 처음 보았다. 먼길 떠난 그 친구가 보내온 새인가. 날마다 둥지를 되찾으려는 까치들과 어린 새끼들을 지키려는 파랑새들의 싸움으로 뜰 앞이 편하지 않다. 파랑새들이 잘 지켜내야 하는데 미루나무 둥지를 바라보며 나는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