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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6 | [문화저널]
<제94회 백제기행>박물관을 통해 보는 역사·문화기행(순천일대)
이은나 북전주농협 서부지소 과장 (2005-01-25 16:10:45)
2004년 5월 23일, 백제기행 이라는 것을 가보고자 2년여를 벼르고 별러서 즐거이 출발일 만을 기다렸건만, 태풍 라마순의 북상으로 전국은 아수라장 이었다. 간밤에 퍼부은 폭우에 세상은 쓸려 갈듯 몸살을 앓았고, 백제기행의 설렘 또한 같이 쓸려가 버린 듯, 약간은 심란한 마음으로 세 아들을 데리고 집결장소로 향했다. 우리가족을 포함한 함께 할 초보 기행가족과, 이미 백제기행에는 이골들이 난 기행마니아들을 싣고 버스는 떠났다. 간간이 뿌리는 빗방울이 창가를 때리고, 버스는 어느새 전주를 벗어나 남원을 향하고, 날씨 탓에 마음 졸이며 잠 설친 기획실장님의 인사에 이어 백제기행 의 피해갈 수 없는 통과의례, 가족소개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순에 의해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들, 우리나라 토종식물과 나리꽃에 대해 열변으로 설명을 이어 가는 분이 있는가 하면, 기행의 매력에 푹 빠져서 이미 많은 곳을 섭렵한 경험을 전하는 분도 있고, 여전히 이름 소개하기도 버거운 한국인 특유의 낯가림식 수줍음을 가진 분들도 있었다. 난 후자였다. 공적인일, 준비된 업무적인 설명이 아니면 어느 자리에 나서서 자연스럽게 화제를 이어 가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 중에 하나다. 간단한 가족소개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 선다는 부담이 약간의 긴장을 갖게 했다. 그래도 옆에는 내가 마음 편하게 비빌 우리 큰아들이 있었기에 다른 이들의 자기소개 시간을 여유만만하게 지켜보는데, 맨 마지막 마이크를 든 큰아들은 나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고 나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간단히 이름만 말하고 마이크를 내리려던 생각과 달리 순간 왜 기행에 따라나서게 되었는지, 전주토박이인 내가 벌교라는 곳이며, 조계산이라는 곳 송광사나 선암사라는 사찰에 대해 알 수 없는 향수를 갖게 되어버린 이유가 설명되고 있었다. 가슴 저 편에 담긴 나의 20대는 독재와 민주화가 얽힌 혼미한 시대였고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던 때에 감명의 단계를 넘어서 뿌리 깊게 박혀 있던 그리움의 정체, 바로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그것이었다. 비록 역사유물로서의 접근을 요하는 백제기행의 본래의 취지와 방향에는 역행되는 것이었지만 벌교 낙안이라는 선암사나 송광사라는 낯설지 않은 소설 속의 배경이 나를 기행에 따라 나서게 만들었다. 갑작스레 젖어버린 20대 저편의 향수가 가슴을 벌렁거리게 할 즈음 버스는 소설 속의 낯익은 지명들을 스치고 그 옛날 빨치산들의 행렬이 잇따랐을 조계산에 도착했다. 송광사를 향해 일행들이 빗속을 여유 있게 올라갈 때 우리 꼬맹이 아들들을 우비 입히고 우산 챙겨 바쁜 걸음을 재촉 하노라니, 시끄러운 속내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예불소리와 탁 트인 사찰의 앞마당이 보였다. 넓은 사찰의 마당 한가운데 서서 내리는 비를 커다란 우산으로 가리고 듣던, 부처님 한분을 향한 백여 명의 스님들의 예불소리는 웅장한 교향악에 비할까, 실로 가슴 멍하게 하는 종교의 감동이었다. 또한 예불을 마치고 각자의 수행지로 향하는 스님들의 행렬은 한참을 바라보게 하는 광경이었다. 물론 간간이 섞인 외국인 스님의 모습이 참 낯설었지만, 교수님 설명 덕에 불교의 종파 중 선종과 교종의 차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초보 기행자 일행은 다른 일행에 동참하여 학습도 하지 못하고 참 도움이 안 되는 일만 하고 다녔다. 그러나 탱화를 보는 법이며, 불교의 종파의 차이며, 열심히 설명해주신 교수님의 강의가 초보 기행자에게도 나름대로 감동과 지식을 주었음을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웅장한 교향악을 연상케 했던 송광사의 예불행렬을 뒤로 하고 다음 행선지인 낙안민속마을로 향했다. 옛 여인들을 부르는 이름은 정겨운 구석이 있다. 굳이 처녀 적에 부르던 이름이 있을 터인데, 아니면 요즘처럼 아이의 이름을 따서 누구누구 엄마라고 부를 수도 있을 터인데 소설 태백산맥 속에는 유독 지명을 지칭하는 이름이 많았다. 좌익인 아들이 있었음에도 욕심이 과해서 소작인들 손에 죽임을 당한 정현동의 처 낙안댁, 무당소화를 도와 같이 살던 들몰댁, 청년단장 염상구의 아이를 임신한 죄로 숨죽여 살다 남편의 죽음으로 빨치산이 된 외서댁 등등. 어느새 비가 그치고 지나는 곳곳에서 소설 태백산백의 인물들을 만나고 있을 즈음, 옛날 읍성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민속마을에 도착하였다. 한참을 달려 산사의 웅장함에 취해 잠시 잊었던 식욕이 옛 주막의 지짐 냄새에 여지없이 몰려들었다. 민속마을 주막에서 맛본 달큰한 동동주 한잔은 비개인 후의 후덥지근함을 여지없이 날려주었고, 장터에서 약간은 어설픈 옛날엽전과 꼬맹이의 고무신을 선물로 고를 수 있는 여유도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성곽 위로 올라 읍성 내를 보며 걷다보니 전주로 치면 풍남문쯤 되는 곳에 자리를 하고 앉았다. 물론 나는 우리 다람쥐마냥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꼬맹이들 덕에 교수님 설명보다는 다음에 기행을 따라 나설 때는 꼭 떼놓고 와야겠다는 결심만하고 말았지만, 낙안읍성이 옛 전주읍성과 비슷하고, 풍남문부터 객사에 이르는 전주읍성 복원에는 공감을 하였다. 아무리 현대적인 것이 전부인 요즘이지만 말이다. 성곽을 내려와 옛 가옥에 들어가 그 옛날의 생활을 보고 있자니, 어디에서 따왔는지 빨갛게 익은 자두 두 알을 내미는 큰아들에게서 만만한 정도 새롭게 맛보았다. 빡빡한 일정으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선암사에서의 여유 있는 기행을 위해 중간 방문지를 생략하려 했건만 공룡박물관을 향한 우리 꼬맹이들의 의지는 강하기만 하였다. 어른들에게는 시시하기만 하고 약간은 협소한 공룡박물관에서 꼬맹이 두 아들은 기행의 즐거움을 달성하려는 듯 화석제작도 하고 공룡도 타보고 무서운 공룡모형 탓에 자꾸 엄마 뒤로 숨어 가면서도 연신 감탄들이다. 여러 가지 공룡모형에 엄마 주머니들은 털리고, 어른들은 시간이 지루하였지만 아이들은 최고의 방문지였으리라. 더 놀자는 아이들을 달래 가며 선암사로 향했다. 조계산 아래 송광사와 함께 그 옛날 빨치산의 무대였던 곳, 이념의 분단을 아프게 겪은 가슴 막막하게 하는 역사 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선암사라는 푯말이 보이고, 버스에서 내린 일행들을 맞이한 비개인 후의 땀방울 송골송골 맺히게 하는 후덥지근한 더위는 짜증스럽기까지 하였다. 송광사에서 뒤쳐져 재촉했던 걸음이 생각나 초보 기행자는 또 한번 교수님의 강의를 기망하고 먼저 산사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꼬맹이들을 앞세우고 큰아들과 나란히 걷던 산사의 오솔길. 팍팍한 걸음에, 끕끕한 더위에 지쳐갈 때 푸르게 우거진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쏴하고 떨어지는 계곡의 물소리는 한순간 짜증스럽던 더위를 몰아 내버렸다. 간밤에 내린 비에 계곡의 물은 더해져 흐르는 물소리가 폭포수를 버금가게 하였고 슬금슬금 피어올라 살갗에 감겨 오는 물안개의 시원함은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한순간에 짜증을 날려 버리고, 시원한 계곡물에 손도 담그고, 신비롭게 따르는 물안개는 신선이 된 듯한 착각이 들게 하고, 영원히 잠겨 있고 싶은 무어라 표현되지 않는 감동과 함께 선암사에 이르렀다. 빨치산의 주무대였던 만큼 험한 산속에 수도승 몇 명이 조용히 참선하는 암자를 연상했던 선암사는 송광사에 버금가는 규모가 큰 사찰이었고 역사 또한 오래된 듯한 사찰이었다. 사찰의 역사에 대해서도 발전해온 과정도 겪은 환란도 모르는 초보 기행자가 보기에도 선암사는 보통의 사찰은 넘는 듯싶었다. 아쉬운 것은 내내 기망했던 교수님의 강의가 선암사에 이르러서 궁금해졌다는 것이다. 교수님 일행은 강의가 길어져서 걸음이 늦어지는지 기어이 기다리지 못하고 보통은 넘는 선암사를 눈으로만 즐기고 내려가는 초보기행자의 심정은 오죽했으랴. 내려오는 길에 다시 한번 만난 계곡의 물안개는 조금 전의 감동을 잔잔히 일깨웠고 덥고 짜증스러웠던 초보기행의 과정을 담담한 추억으로 남기기에 충분하였다. 전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피곤으로 늘어진 아들들을 바로 뉘이며, 백제기행의 마니아들께는 죄송하지만 본질에서 벗어난 초보기행을 마무리 해보았다. 한번쯤 참여 하고프다는 마음에 2년여를 벼르다 벌교, 송광사, 선암사라는 뿌리 깊게 박혀 있던 향수 어린 곳이기에 불안한 일기에도 심란한 마음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20대에 갖았던 소설 태백산백의 향수에 푹 빠졌던 하루도 행복하였고, 살갗을 촉촉이 적시던 선암사의 물안개는 더 잊을 수 없는 자연의 감동으로 가슴 한 편에 남아있다. 어두워지는 전주로 향하는 나는 떠날 때의 심란함은 잊어버렸고, 한동안은 산사에서 얻은 자연의 감동으로 웬만해서는 도시의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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