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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 | [문화저널]
<제 92회 백제기행>수덕사 대웅전은 너무 예뻤다 _ 충남일대
김승민 마당 기획실장 (2005-01-25 16:08:59)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역마살이라 했던가! 어른들 말씀을 빌리자면 싸돌아 다니기를 무척 좋아했던 나에게 문화저널의 백제기행은 천상 나를 위해 준비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그저 떠나는 것과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참 많이도 달랐다. 즐거움이 일이 되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격이 없는 하나의 기행자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를 다잡아 본다. 일요일 아침, 엊저녁의 수상한 날씨 때문에 조심스레 열어본 창문 틈으로 파란하늘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면 그렇지 축복 받은 백제기행이지 않던가! 여느 때보다 신청자가 많아 함께 하지 못한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오른 차안에는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낯 익은 얼굴들이 환하게 웃음으로 인사한다. 2004년 첫 기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물관을 통해보는 역사와 문화기행" 오늘의 책임강사는 사진작가요 미술사가인 이흥재 선생님. 초창기 백제기행의 답사자로 열심히도 함께 하던 선생께서 이제 책임강사로 참여하신 것이다. 선생스스로도 조금은 감개무량한 모양이다. 더구나 초등학생 때 선생의 손을 잡고 백제기행을 참여하던 아들녀석이 이제는 성인이 되어 군대휴가의 황금 같은 시간을 아버지와 함께 하고 싶어(본인 말로는 효도차원에서....) 동행했으니 누구보다도 남다른 기행이리라!!! 명찰을 나눠주고, 답사일정을 설명하고, 부산을 떠는 가운데 차는 어느새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린다. 그러고 보니 새로운 얼굴들도 제법 눈에 띈다. 하루를 함께 하는 동행자로써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 두 달에 한번 하는 기행에 매번 정겨운 인사말로 자신을 소개하는 골수들, 조금은 서툴고 어색함으로 첫 경험의 설렘을 표현하는 초짜들, 이제는 기행의 선배로서 한자리를 톡톡하게 잡고 앉은 상민이와 정현이는 이름만 말하고 이하생략이란다. 녀석들 텃새가 만만치 않다. 2004년 백제기행 첫 답사지로 정한 한국고건축박물관 산하를 돌아보며 들렀던 많은 절 집들, 서원,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삶에서 조금은 멀어진 한옥의 구조와 아름다움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이다. 협소한 공간 안에 가득 채워진,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 목조건축물 축소 모형이 옷을 반쯤 벗은 여인네처럼 수줍게도 앉아있다. 소나무 향이 코로 확 들어온다. 애 많이 썼겠다 싶은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 목조 건축을 대표하는 궁궐과 사찰 건물들은 이 박물관을 세운 전흥수관장이 전수생들과 함께 공들여 만들 작품이란다. 복잡하기도 복잡할세라! 선생은 열심히 설명하는데 금방 돌아서면 긴가 민가 한다. 영문학도의 설명답게 영어단어 하나 외우는데도 삼백 번 정도의 반복이 필요하다는 설명에 무식의 소치를 조금은 위안 삼으며 돌아보는 전시실은 한마디로 대단했다. 이곳에 전시된 목조 건축물 모형은 40여점. 모두 만드는데 3년이 걸렸단다. 크기만 실물보다 작을 뿐이지, 정확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나무를 하나하나 깍아서 세웠다. 대목장인 전흥수 관장은 18살 때부터 고건축을 시작해 40여 년 동안 이일을 해왔다. 전국의 궁궐과 사찰 등 그가 거쳐온 건축물들의 평수를 모두 합하면 약 4만 평에 달한다나 어쩐다나, 어쨌든 참 대단하다 싶고, 전통문화의 본고장을 내세우는 전주에도 이런 소중한 교육장이나 박물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을 안고 나왔다. 80년대 어느 해인가,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었던 성싶다. 지금은 한 지붕 아래 살고있는 당시 국문학도였던 안사람이 출가한 친구가 보고싶어 찾아 나섰던 예산수덕사. 먼길 떠나보내고 걱정 반 부러움 반으로 밤을 지새며 어드메쯤 있나 하고 찾아보던 수덕사는 내가 상상하던 그 수덕사가 아니었다. 그 때는 비구스님들이 계셨다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고, 한국 불교의 선지총찰 대가람답게 신축한 건물들과 내방객들이 그득그득 하다. 어디가나 느끼는 거지만 좀 그냥 두지 싶다. 불사라는 이름으로 넉넉했던 앞마당과 곳곳에 들어선 신축건물들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답답해 보인다. 게다가 한술더 떠 무슨 경비원 복장을 한 아저씨들이 이쪽 저쪽에서 내방객들에게 호통이 한창이다. 경허, 만공 스님의 호통도 아니고 그저 못들은 채 하는 게 상책이다. 예쁘다, 수덕사 대웅전 군더더기 없이, 아무런 꾸밈도 없이 700여 년을 거기 그렇게 서있는 수덕사 대웅전은 예쁘다. 무어라 부연설명 한다는 것이 부질없이 느껴진다. 이흥재 선생님도 그런가 보다. 그저 대웅전의 빼어난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 측면으로 우리를 이끈다.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햇살을 가득 담은 대웅전의 옆모습은 정말 예쁘다. 일정이 짜여진 기행이 아니라면 그 앞에서 한나절쯤 멍하니 앉아 있고 싶다.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신축건물들도 보이지 않고, 경비아저씨의 호통소리도 들리지도 않는다. 덕숭산 아리아리 돌아가는 능선을 뒤로하고 앉아 있는 대웅전만 내 가슴에 들어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답사 때마다 묻고 찾고 해서 고르고 고른, 답사 객의 허기를 채워줄 음식점 찾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번엔 비빕밥이다. 비빕밥의 고장 전주에서 온 답사 객들에게 웬 비빕밥. 전국 어디를 간들 전주사람들의 입맛을 제대로 채워줄 음식이 있으랴만, 단지 덕숭산 자락에서 나고 자란 갖은 산채와 나물을 넣어 비벼 먹는 비빕밥이 그래도 났지 않을까 싶어 골라봤는데, 참 고맙게도 잘도 드신다. 허기가 반찬이겠지. 식사 후 커피한잔 뽑아 건네는 걸 잊지 않으시는 이혜경 선생님, 후식이라고 집에서부터 깍아 정성스럽게 가지고온 사과를 모두에게 나눠주시는 윤욱희원장님, 사탕도 건네고, 과자도 나눠먹고, 정겨움이 더해 함포고복이다. 백제기행은 행복하다. 백제기행의 골수 어린이들 중에 정민지가 벌써 고등학생이 된단다. 장성한 이흥재 선생님 아들이 함께 와서 그런 생각이 들었나, 민지나 이사야, 이사라가 시집가서 남편하고 함께 백제기행에 올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혼자서 히죽히죽 웃었다. 폐허가 주는 아름다움 정림사지. 아무것도 없다. 석탑하나와 석불좌상만 있다. 하지만 천년의 세월이 거기에 있었다. 국보 9호인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백제석탑의 정형이란다.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모든 석탑은 이 탑을 닮았단다. 천년의 세월을 안고 묵묵히 서있는 탑을 바라보며 나도 너를 닮고 싶다 그랬다. 이흥재 선생님은 사진작가 맞다. 탑을 보는 것도 구도를 잡아 보여준다. 멀리 서서 보다가, 측면에서 보다가, 다가가서 보다가, 그 느낌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다. 천상 사진작가다. 사람들은 왜 박물관을 찾는가! 박물관에는 우리들이 살아온 역사와 문화가 있다. 그 역사와 문화를 만나면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를 찾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도 다양한 형태의 박물관이 많고 그 대표 중에 하나가 국립박물관이다. 요즈음은 이색 박물관, 테마박물관 등 실로 박물관의 영역이 날로 넓어지고 그 교육적인 효과 또한 중요하게 인식되어지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수히 많이 늘어가는 박물관의 전시형태나 구조가 19세기의 방법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며 여러 가지 매체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전시 방법와 효과적인 전달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없어 보인다. 국립부여박물관 역시 좋은 말로하면 고전적인 형태의 박물관이다. 소중한 전시물들을 시대별로 분류하고 테마별로 분류하여 교육적으로 전시 진열해 놓고 있다. 19세기에 그러했듯이...... 각설하고, 백제금동대향로 하나만 가지고도 국립부여박물관은 꼭 들러보아야 할 곳 중에 하나이다. 높이 61.8cm, 원형의 몸통지름 19cm의 그리 크지 않은 이 향로에는 우주가 들어있다. 그 예술적 완성도는 물론이려니와 정교하게 새겨진 주악상, 인물상, 동물상, 화염문, 폭포 등 100여 개의 화려한 문양에는 동양적 신비와 종교적 철학까지 담아내고 있는 걸작이다. 백제의 철학과 조형예술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백제금동대향로 속의 산과 계곡, 그리고 우주 속으로, 천년의 시공을 넘어 떠나는 경험을 꼭 한번 해보시기를. 애들이 집에 가잔다. 하루종일 걷고, 듣고, 지칠 만도 하다. 이쯤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한 깜짝 답사지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름하야 서천해양박물관. 백제기행에서는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자연생태계를 체험하고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는 바다의 해양자원을 꼼꼼히 살펴 볼 수 있는 교육적 효과가 클 것 같아 잡아본 일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입체영화를 보며 아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래! 잘 선택한 거야!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 2층에 올라 바라보는 일몰이 장관이다. 서해안 넘실거리는 바다가 붉게 물들고, 그 틈에 소주한잔 몰래 마신 이흥재 선생님의 얼굴도 붉게 물들고, 우리 모두의 마음도 붉게 물들이며, 그렇게 하루해가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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