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4 | [문화저널]
<제 87회 백제기행>약속의 땅 익산에 부활의 씨를 뿌리며... (익산·완주 백제문화권 일대)
최윤숙 익산 문화원 간사
(2005-01-25 16:04:19)
받는 편지라고는 세금 고지서가 고작인 사람에게 잊을 만 하면 반가운 소식하나 날라 옵니다.
“못다 피운 꿈”, 그 이야기를 찾아 떠나지 않으시렵니까?” 적당히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그 문구만 읽어도 마음은 이미 길을 나서고 있지요.
무뚝뚝한 안내문이 아닌 감추었던 마음을 동하게 하는 문구, 문화저널을 모르면서도 항시 배시시 웃음이 피어나는 건 그런 작지만 고운 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있어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길. 다투어 피우던 봄꽃향연도 어느새 푸른 잎들을
내어놓고 비처럼 몸을 날리고, 끝이면서도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달걀을 나누며 서로의
작은 부활을 꿈꾸고 건네는 부활절에 드디어 못다 피운 꿈, 그러나 그 약속의 땅에서
새로이 거듭나고 있는 익산지역 답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참 의미가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부활절에 미사에 참석하지 않고 미륵이 하생하였다는 약속의 땅 익산, 저 또한 부활을 꿈꾸는 한 사람으로 무왕의 중흥의 이상을 담았을 비상할 듯 날렵한 서탑의 귀옥개부분의 해체를 보며 또 다른 복원을 기다리듯 서있기 때문입니다.
답사 갈 때는 나이는 저만치 뚝 떼어놓고 준비한 그릇만큼 담아온다고 하였는데 왜 그리 소풍 기다리는 어린아이마냥 준비한 그릇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마음은 들뜨고 내리는 비마저도 반가운지요. 왕궁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잔잔한 안개비를 뚫고 버스가 다가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지도를 받았습니다. 해설사 교육 때 만나 뵈었던 교수님, 그리고 답사를 준비하며 그 열정에 반해 버렸던 회장님의 아들인 꽃미남 선생님, 항시 사랑하는 윤숙씨를 먼저 내미는 황 선생님 그리고 항시 고운 채 선생님, 여러 선생님들, 아이들, 제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듯 그리도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 다닐 곳 지도를 먼저 보고 가는 곳 마다 그 흐름 속에서 현 위치를 체크해가며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들여다보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한 교수님과 진행 팀의 배려를 먼저 받아 봅니다.
이주 전에 왔을 때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서 온통 하얀 꽃밭이었던 것이 얄궂은 봄비에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다 떨어지고 민둥민둥한 베롱나무 칠 팔십 그루가 붉은 레이스자락 휘날릴 백일을 표시도 없이 준비하고 있는 봄날, 교수님의 말씀은 쉼이 없고 아이들 기지 또한 잠시의 추위를 몰고 가기에 충분합니다.
지도를 읽고 떠나는 답사 길은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상하게 지도와 삼국유사 원문, 관세음응험기의 원문을 읽어 주시고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무왕이 별도를 설치했다는 기록을 알려 주시는 조 교수님의 준비에 고맙다는 말 대신 웃음만 지어봅니다.
딱히 유원지하나도 없던 익산에 벚꽃 만발한 왕궁은 데이트하는 남녀들이 곧 잘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멀리서 지나면서 힘차게 우뚝 솟은 왕궁오층석탑이 만개한 벚꽃에 배롱나무에 가려 잘 볼 수가 없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유적보다는 조경에 더 치우친 느낌이 들어서지요. 한 단 아래서 내려 보아야 제대로의 탑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교수님 말씀처럼 늦가을 싸늘한 바람에 갈대 흔들릴 때 역광으로 바라보는 왕궁리 오층석탑은 그리 호방하면서도 고울 수가 없습니다.
왕궁리 오층석탑은 탑의 조성시기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데 1965년 해체 보수중에 제1층 지붕돌의 중앙과 기단 심초석에서 각각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보물이던 것이 국보로 상향조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왕궁리오층석탑을 지나 들린 곳은 동고도리 석불입니다.
옥룡천 사이 약 200m를 사이에 두고 애틋한 사연을 지니고 있는 두 석인, 석불로도 불리우고 있는데 무속적인 감각을 가미한 고려 중기이후에 건립된 석상으로 장승이든 민불이든 석불이든 비보석불로 세웠던, 풍수지리적으로 마부를 세우려고 했던지 들판에 서서 민초들의 삶과 같이 해온 소박한 석인상이 참 정겹다는 것이지요. 일년에 한 번 섣달 그믐 자시에나 만나 회포를 푼 후 새벽 닭이 울면 헤어지는게 안타까워 옥룡천에 다리를 놔주었다는 민담이 또한 재미나기도 한데 몇 번 와 보았지만 올라가서 석불 코 밑에서 자세히 들여다 보기는 처음이었지요 밑에서 스치며 보았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 좋았지만 훼손되지는 않을까 조금 조심스럽기도 하였습니다. 동쪽 석불에서 아이들이 수염을 흉내 내는 익살스런 모습, 또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는 교수님 망외의 기쁨이 이런 것 아니겠는지요.
아이들의 막히지 않고 열린 상상력, 순간의 재치 때문에 더 즐거운 답사길 입니다.
동고도리 석불을 지나 도착한 곳은 제석사지입니다. 이 마을 사는 권씨 일가의 꿈에 이 땅에 묘를 쓰면 일이 잘 된다고 해서 그대로 하였더니 하는 일마다 잘되어 묘를 이장할 수 가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목탑의 심초석과 몇 개의 부재만 떵그러니 남아 북풍한설 같은 바람만 안고 있는 곳입니다.
사지 북쪽엔 와요지가 발견되어 단기 발굴로 원대 박물관 팀에 의해 탐색조사가 진행 중 입니다.
한 곳에 백제의 막새편, 요벽채가 이처럼 많이 발견된 곳이 없다는데 일주일전에 둘러보러 왔을 때 백제 연화문 수막새 편을 발견했습니다. 천사백년 지나 내 손에 쥐어진 연화문 수막새의 선명하고 봉긋하니 입체감있는 문양이 얼마나 고왔던지 몰래 훔쳐오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심초석도 보여주고 성혈인지 윷자리인지 별자리인지 모를 흔적도 보여줬지만 시간이 없어 실제 발굴하고 있는 현장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7세기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릉 이라고 추정되는 쌍릉에 도착했을때도 잔잔하게 비가 내려 그칠 줄 모르지만 조금은 처연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어쩌면 오늘 답사지와 분위기가 참으로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청주한씨에서 제사를 모시고 있었는데 익산시에서 땅을 매각해서 이 곳과 서동공원을 연계해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거리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무왕과 선화공주처럼 이 길을 걸어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조성되면 연인들은 꼭 한번 찾아가 보세요.
쌍릉 북동쪽엔 시간 관계상 들리지 못한 익산토성, 마룡지가 있는데 발굴조사결과 백제 토성인 것을 후에 석성으로 개조된 듯 하고 마한 원삼국시대의 치소였다면 그 시기에 맞는 토기라도 나와야 하는데 확인된 바가 없고 장소도 협소하며 고구려적인 유구나 유물이 나와 주지 않아 보덕국의 행정치소로 보기도 어려워 아직도 그 성격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아 의견이 분분한데 익산시에서 시민 휴식처로 잘 정비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뭐니 뭐니해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비도 내리고 조금은 추운 답사 길에 익산 땅에서 나온 콩으로 만든 순두부 찌개 국물은 식었던 몸을 녹이기엔 충분하지요 식사 후 소개 시간 그 짧은 시간에 맛 보았던 새콤 달콤한 맛은 백제기행만이 가지는 독특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였습니다. 고삼 학생을 데리고 온 부모님의 너른 안목, 손을 들어 시키지도 않은 노래를 천연덕스럽다 못해 소름이 끼치도록 잘도 불러댄 상민이, 남자아이의 변성기 지나지 않은 목소리가 저리도 꾀꼬리마냥 고을 수가 있는지 목 캔디 두개 주고 사인도 받았습니다. 먹는데서 정 나온다는 말이 있지요. 밥을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속 깊은 정들을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른 점심이었습니다. 배도 든든하고 몸도 녹여 넉넉한 마음으로 찾은 미륵사지 지난 겨울 몇 안 되는 낙엽 둥글던 처연했던 사지가 어느새 연초록 옷을 걸치고 촉촉한 안개비에 젖어 낮은 운무를 깔고 더 이상 만들어 낼 수 없는 신비로움에 쌓여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사지의 연못을 거닐 때면 아무리 마음을 앙당그려도 이유 없는 눈물 한 자락 뚝 내어놓고 말지요. 저녁노을지고 땅거미 내릴 때 바라보는 사지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후두둑 날아갈 때 시선 내리고 본 미륵사지는 항상 쓸쓸하고 처연하였습니다. 긴 겨울 인내하고 조그마한 꽃을 피워냈던 이름 모를 꽃, 냉이 꽃, 애기 별꽃 저는 어느새 땡기지도 못하는 덜떠름한 디지털 카메라로 미륵사지의 생태를 알리는 전도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눈 푹푹 쌓인 겨울 사지를 걷는 연인들의 손길이 따스해 보여 부럽기도 하고, 시름 많은 나그네 늦은 저녁 잔디에 앉아 몰래 소주 한 잔 기울이면 저 북쪽 미륵산 정상이 여인네 젖무덤 같고 어머니 품 속 같이 느껴진다고도 하는 걸 보면 계절에 따라 보는 사람의 그때 마음에 따라 그렇게 사지도 자연도 달리 보이나 봅니다.
미륵사지는 부끄럽게도 아직 햇병아리인 제가 해설을 맡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족한게 많아 오늘은 답사객이 되어 찾아 두루 두루 인사를 하고 들어갑니다. 미륵사지에 오면 그저 왜?라는 질문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곳입니다.
미륵사지는 1400년동안 역사와 문화가 진행되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곳입니다. 근 천년을 유지하였던 미륵사는 이제 지난 상흔을 다 덜어내고 새롭게 태어나려고 합니다.
해설을 다 듣고 천사백년전과 지금을 빗대어 생각해 보라하면 지금의 월드컵이니 올림픽이니 그런 것도 무왕의 의도와 같지 않겠느냐는 어린 학생들의 대답이 참 예리하면서도 정확하니 말하지 않아도 미루어 현재를 볼 수 있는 그들이 있기에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사는 메시지를 가져오는 이런 일에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미륵사지에는 시원양식이 서 석탑, 석등하대석, 석인상 세 점이 있습니다. 서 석탑을 지켜온 수인상, 또는 석인상으로 불리우는 것은 석탑의 아름다움 균제미 때문에 언뜻 눈이 가지 않지만 그 모습이 참 귀여워 망외의 기쁨, 생각외의 기쁨, 보너스라도 부르고 있습니다. 93년(92년)에 복원된 동탑은 기존의 부재가 35개가 들어가 있지만 그 모습이 주는 느낌이 생경하고 균열이 가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절에 당간지주가 둘인 곳은 이 곳이 유일한데 그 만큼 절이 컸다는 걸 의미하고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1972년 당간지주 뿌리가 빠지지 않아 정으로 기단 석재를 아홉 토막 내어 복원한다는 미명아래 훼손하였다는 것입니다.
출토된 유물이나 각 건물지마다의 의미를 다 짚고 갈 수는 없지만 백제인의 예술적 감각이 엿보이는 아름다운 석탑, 정 하나하나에 담았을 그들의 정신, 예술 혼이 총체적으로 담긴 서석탑의 해체는 그 모습이 어떻게 될지 참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아직은 문화재청에서 계획하고 있지 않지만 익산시 에서는 해마다 복원 계획을 올리고 있어 미륵사지를 바로 이 곳에 복원하자는 움직임도 있어 하나의 역사적인 현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기도 하는 곳입니다.
운무에 신비롭게 쌓여 있는 미륵사에 마음을 묶고 찾아 간 곳은 석불사입니다.
타자마자 내리자니 조금 대펴진 몸이 영 아쉬워 이거 극기 훈련 수준 아니냐며 애교스런 불평을 하면서도 7세기 초반으로 추정되는 입체원불의 거대한 광배와 법륭사의 원형으로 백제 영향을 받은 불상을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불상이라는 부처임의 그 우멍한 부처님 얼굴을 보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수인을 이야기 할 때도 전혀 어렵지 않게 아이들에게 쉽게 설명하는 교수님의 눈높이 학습에 다시 한번 부족한 자신을 돌아다봅니다. 건축사 연구의 유일하고 귀중한 자료라는 4개소의 굴립주를 세운 기둥구멍도 보며 내려오는 길 비에 젖은 금낭화를 얼른 사진에 담고 내려와 입점리 고분군을 향해 다시 또 출발...
아직 전시관이 개원하지 않은 상태라 멀리서 고분군만 보고 말았지만 내부까지 볼 수 있도록 준비해 준다면 아이들에게도 실감나는 역사의 현장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웅포의 고분의 피장자는 담로의 장이 아니었을까 추정되는데 웅포는 겨울 철새 날아올 때 탐조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석양에 비친 금강변은 마음을 빼앗기기 충분한 곳입니다. 웅포 골프장에서도 지표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하니 다음 답사길엔 그 현장성을 충분히 맛 볼 수 있는 답사코스가 안배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가고 싶었던 곳을 가지 못하면 서운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곳을 가면 보너스를 받는 듯 마음이 후해지지요. 발산초등학교 뒤편에 석탑과 석등... 교수님 말씀처럼 석등하대석 화사석 연결문양이 특이하고 해학적입니다. 탁본을 뜨지 못해 아쉽기는 했지만 보여 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얼른 사진에 담아보았지요. 돌아오는 길 답사 가는 곳마다 함초롱이 피어있는 얼레지며
약속의 땅 익산에 작은 부활의 씨를 뿌리며...
비상을 꿈꾸던 힘찬 날개 짓
그조차도 버거워 다 내어놓고
부활을 꿈꾸는 천년의 돌덩이
빠짐없는 구원과 하나 됨을 염원했던
석공의 숨결, 벅찬 망치질 소리
천년을 지나 미련 없이 살점 떼어
비상할 듯 날렵한 날개 짓을 펼치려하네
텅 빈 사지 긴 세월, 휘돌아 돌아온 바람
낙엽 거두어 연못가에 모두었던 눈물
더는 아리지 않고도 볼 수 있으니
샘솟지 않으나 잔잔하게 배어나오는
간절함이여...
겸손하되 지치지 않을 부활을 꿈꾸며
못다 이룬 꿈에 미래를 묶지 않고
더하여 베풀고 더하여 이로운 새 땅으로
거듭나리니..
미륵이 내려온 약속의 땅에
부활을 꿈꾸었던 백제인의 기상처럼
그렇게 한결같은 뜨거움으로 거듭 나고파
내 작은 부활을 꿈꾸며 씨를 뿌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