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 | [문화저널]
<제75회 백제기행>생활속으로 떠나는 문화기행 - 전라도
장수영 소비자고발센터 간사
(2005-01-25 15:57:06)
삶과 죽음의 화해의 장(場)인 씻김굿의 신명나는 한판 어느덧 늦겨울 2월에 떠나는 여정. 처음 접해보는 이번 기행은 틀에 박힌 일상생활에서 한번쯤 벗어나 보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출발하기전 우리처럼 직장 단위의 어른들만 가는 줄 알았으나 엄마손을 꼭잡고 도란도란 가족이 참여한 사람들도 많아 정겨운 출발이었다.떠날 때 비가 주룩주룩 내려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으나 전주를 벗어나 가느다란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창밖의 풍경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잠깐 먼 생각에 잠기게 했다. 잠시 눈을 부쳐 깨어보니 그칠 줄 모를 것 같던 비가 어느덧 전남 여수에 도착하니 먹구름이 개어 그 사이에 햇빛이 부끄럽게 비친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하늘이 도우소서...늘 먹던 밥과 입맛이 맞지 않은 가운데 시장이 반찬이라 투정을 부리기도 전에 공기밥 한그릇을 후다닥 털어버렸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순천에서 유명한 우리고유전통 씻김굿을 감상하게 되었다.그것은 바로 아직 저승의 세계를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에서 떠도는 망자의 넋을 모셔다 원한을 풀고 씻겨주어서 저승에 잘 들어가시라고 기원하는 씻김굿의 약식이었다. 이는 무속신앙으로 무당을 주축으로 하여 민가에서 전승되고 있으며 다른 민간신앙 중에서 가장 체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순천지방의 씻김굿은 망자의 넋을 씻기는 정화의례이며, 넋을 씻김으로써 극락왕생하도록 하는 천도의례이다. 이 굿의 종류는 부엌에서 하는 조왕굿, 성주신에게 하는 안당, 자손의 건강을 축원하는 손굿, 조상에게 축원하는 조상굿 등이 있다. 이 굿판은 순천 씻김굿 세습무인인 박경자 선생님의 일흔 남짓한 춘추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우리들에게 씻김굿이 뭔가를 보여주시려는 열성적인 모습에 역시 우리 것을 계승시키고 전수하려는 살아 숨쉬는 그야말로 인간문화재를 직접 뵐 수 있어서 이런 기회는 난생 처음인 것 같다. 그 동안 학교생활, 사회초년생으로 사회에 발을 디딘지도 엊그제 같은데 이번 문화기행을 통해서 새삼 나의 문화수준을 깨닫게 되었다. 이리 저리 핑계로 거의 문화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나로써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얼쑤', '좋다' 추임새를 넣고 덩실덩실 어깨를 들썩거려 장단을 맞추는 모습은 이 추운 겨울바람에도 끄덕도 하지 않는 그 뭔가가 얼굴에 담겨져 있어 보였다. 특히 성주풀이 한 구절을 따라해 보았는데 처음에는 어색하고 잘 되지 않았지만 몇번 따라 불러 보니 새로운 소리를 접하게 되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지나 숙소에 이르러 후다닥 짐을 풀고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한자리를 하는 시간이 점점 취기에 무러 익어 가는 중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불쑥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눈을 떠보니 새벽 6시. 곧바로 일출을 보기 위하여 감긴 눈을 비비며 '해맞이 명소'라 불리우는 향일암을 향해 출발하였다.향일암은 기암절벽위에 동백나무와 아열대 식물의 숲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해수평선의 일출광경이 특히 장관을 이루고 있어 그 장관은 그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동백나무 사이로 좁은 동굴사이로 한 줄로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동그랗고 빼꼼히 솟아오르는 빠알간, 만지면 타 녹아버릴 것 같은 뜨거운 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나오는 환호와 벅차오르는 그 기쁨은 모두 똑같아 보였다.놀랍다. 매일 잠에서 깨어나 아침을 밝게 해주는 그러한 빛이 없었더라면 감히 그러한 생각을 하기도 싫을 정도로 우리 맘속에 항상 깨어있어야 할 마음의 태양을 간직하면서 살아야 겠다.그렇다. 직접 보지 않고는 상상도 설명도 할 수 없다. 보라 저 붉은 태양을.하늘색 꿈을 갖고 있는 쪽빛의 비밀 그 길을 떠나 전남 보성군 벌교면 지곡리로 향했다. 그 곳에는 천연염색으로 유명한 한광석 염장이 살고 있었다. 그 분은 20년동안 쪽빛에 대해 연구를 해왔으며 10년동안만 쪽물을 만드는 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끊임없이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마침내 성공을 해낸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색(色)을 찾으려는 그 숭고한 장인정신과 우리 것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자, 이제 염색을 시작해볼까! 아이들이 먼저 일찍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말 그대로 열심히였다. 처음 시작한 홍화염색은 잇꽃이라 불리우는 홍화(紅花)를 가지고 해뜨기 전에 활짝 핀 것을 따서 물에 담가 4-5일간 우린 것을 꺼내어 자루에 넣고 맑은 물과 뜨거운 물로 누런 색을 빼낸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널다랗고 거대한 대야에 팔뚝을 걷어 부치고 명주천을 담가 염색을 하는 사람들은 추울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계절적으로 쪽빛의 물을 들일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순수함을 쪽빛처럼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어떨련지... 쪽빛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보여지는 것만의 색이 전부가 아닌 그 이상의 염장의 고귀한 정신과 독창성과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하늘이 도와야만 가능한 작업이라고 한다. 양지바른 마당 길다란 빨랫줄에 줄줄이 사탕처럼 걸려져 있는 핑크빛 같은 분홍, 개나리색 같은 노랑천이 바람에 살랑살랑 거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꽉 채워져 있는 것 같고 차분하고 유순해지는 것 같았다.아침에 화장하는 여자의 마음에 비유해도 될까. 단순히 한 가지색이 나오지 않고 여러번 염색을 반복할 때 수십가지의 색이 나올 수 있다는 말에 다시금 감탄했다.차밭을 거닐며 우리 소리를 찾아 쪽빛의 여운을 접고 나선 길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차밭을 가지고 있는 전남 보성이다. 또한 보성은 판소리 보성제로 유명하다. 그 보성의 소리꾼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박유전이다. 서편제의 보성의 소리가 전체 소리의 95%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보성의 맥을 잇기 위해 교육시키고 있다는 말에 우리 소리를 지키고 전수시키려는 이 지역의 사람들의 의지는 투철했다.지리학적으로 물이 좋고 깨끗한 자연수를 마시면서 오염되지 않는 환경에서 사는 소리꾼들이 명창으로 나올 수 있게 된 환경적 영향이리라. 전날 씻김굿을 감상하였는데 그 굿과 판소리는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고 한다.노래만 하는 창부분과 말로 하는 아니리 부분이 조화된 점과 초기 판소리 명창들의 출신이 무속인이었다는 점, 여성이 가창을 담당하고 남성이 고인 또는 고수를 담당한다. 300년전에 탄생된 판소리는 결코 다른 나라의 음악에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전통성과 역사의 흐름에 발맞춰 거듭되는 소리인 것이다. 서민들의 정서와 한을 노래하는 소리는 대중가요나 외국 팝송을 들을 때와는 분명히 차별화가 되어 있다. 결코 질리지 않은 고유의 우리의 음악인 판소리, 계속적인 일반인들의 관심과 문화의식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 사철가의 소리마당이 벌려져 차맛을 한층 더 돋구게 하는 자리가 되었다.그 길을 따라 보성차밭길을 거니는데 그렇게 맘이 편할 수가 없었다.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살짝 지어본다. 그런데 보성차밭에 와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다도"라는 말이 일본 문화에서 유래된 거라는 것과 "한지"하는 말도 우리입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 단어에 어폐가 있다고 한다. 우린 이제 스스로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묵인되어 버린, 그냥 자리잡게 되어 버린 잘못된 문화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이제는 "다도"라는 단어 대신 "다례"라고, "한지"라는 단어 대신 "종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말 그대로 한지는 우리나라 고유의 종이인데 굳이 한지라고 단정지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이... 그렇다면 이것 외에도 우리가 잘못 알고 있고 제대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젖어버린 우리문화가 얼마나 많을 것이며 어떻게 개선하고 바로 잡아야 할련지 한숨 섞여 내뱉는 큰 숨을 쉬어본다. 처음 참가한 이번 기행을 통해서 우리 것에 대한 앎음이 짧음을 깨닫게 되었고 도시위주의 생활이 다른 분야의 것에 대해서 좁은 소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문화저널팀에게 감사를 드리며 도공의 후예를 꿈꾸는 다음 경기도 이천 기행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