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회 백제기행>오백년 세월이 남긴 자취, 옛 한양의 궁궐들
이지현
왕도의 얼, 오백년 세월이 남긴 자취--옛 한양의 궁궐들은 내가 선택한 20세기의 마지막 기행이었다.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면서도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을이 아름답다던 서울의 궁궐들! 비원! 종묘! 국립민속박물관! 어느 한곳도 날 실망시킨 곳 없이 정겹게 맞아주었다. 장엄하고 엄숙한 조선 왕조의 도읍지는 고즈넉한 멋에 자연과 어우러진 화려함의 극치 바로 그것이었다. 도심 한가운데의 자연은 전주에서 상경한 우리들에게 큰 부러움을 사기에도 충분하였다.그리고 이번 여행의 또 하나의 특별함.
도청에 한국어 연수하러 온 일본 가고시마 현청 직원 오오나카하라 마고토씨와의 동행! 조선과 일본의 역사와 지금의 한국과 일본은 물론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역사 앞에서, 처음엔 분명 어색함과 묘한 감정이 교차되었다. 물론 한국어의 서툼과 어설픈 일본어의 통역으로 그 감정 그대로를 이해시킬 수는 없었지만 통하는 느낌은 뭔가가 있었으리라.난 큰 숙제를 안고 이 기행을 시작해야 했다.전주에서 오후 2시를 지나 출발해 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저문 7시무렵.
첫날은 도착만으로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 후 경기도 문화재위원 이승은 선생의 슬라이드 강의가 시작되었다. 내일 일정을 위해서 잘 먹고 푹 쉬어야 하는 것처럼 좀더 많이 볼 수 있도록 우린 열심히 이 시간에 충실하려고 눈과 귀를 모았다. 늦은 9시쯤 일찍(?)강의를 마치고 서울이기에 가능한 남대문시장 순례 길에 나섰다. 주말이라 그런지 문을 닫은 곳이 많았지만 밤도 없이 열심인 시장사람들의 모습은 활기찼다.둘째날, 우리가 아침산책과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출발한 시간은 8시 30분.국립민속박물관 개관시간에 맞춰 나선 시간덕분에 다른 날 보다 여유 있는 아침시간을 가진 것 같다. 버스는 청와대 앞을 지나 무궁화동산에 정차해 조선왕조의 궁궐답사를 시작하기 전에 현재의 궁궐(?)앞에 서봄도 묘한 느낌이었다.
노란 은행나무 거목에 둘러싸인 청와대 또한 엄숙하고 조금은 낯선 느낌이었다.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경복궁 북쪽에 위치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은 2만여점이 있으며 토속적이고 일상생활에 관련된 전통 생활문화의 유산을 전시하고 있었다. 3개의 전시관에서 한민족 생활사, 생활문물과 생산민속품, 한국인의 일생 등 1백20여개의 주제를 전시하고 있다.특히 오늘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건 국립중앙박물관‘백제 특별전’ 이었다. 백제의 귀중한 여러 유물을 우린 다른 박물관에 들릴 수고를 덜면서 길라잡이 조법종 교수와 이승은 선생의 자세한 설명으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경복궁! 박물관과 바로 인접해 있는 이곳은 어젯밤 열심히 봐 두었던 슬라이드 덕분으로 훨씬 친숙하게 찾을 수 있었다. 경복궁은 태조4년(1395)에 창건된 조선의 정궁으로 임진왜란 이전에는 대체로 역대 국왕들이 이곳에서 즉위하고 거처하고 정사를 보았다고 한다. 경복궁에는 경복궁의 수조(受朝) 정전으로서 신왕의 등극이나 세자 책봉 등에 있어서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정령을 반포하는 정전인 근정전(勤政殿), 왕이 평상시에 거처하면서 정사를 살피던 사정전(思政殿), 세종 때에 집현전으로 사용되던 수정전(修政殿),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던 누각 경회루, 왕의 침전으로 사용되던 강녕전과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등이 있다. 여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교태전의 후정인 아미산은 경회루의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만든 인공산인데 산수를 축소시켜놓은 듯한 정원과, 아름답게 장식해 놓은 굴뚝의 모습은 사소한 것에서도 그냥 지나침이 없는 선조들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이곳 건물들은 창건이후 중건을 거듭해, 너무 산뜻한 새모습으로 단장하여 어색함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조선의 화려했던 궁의 모습과 아름다운 가을 정취는 잘 어우러져 찾아오는 내외국인의 탄성을 자아내기는 충분하였다.
나와 같이 온 일본인 오오나카하라씨는 서울에 단체 관광온 일본인 팀에 끼여 열심히 설명을 들으러 갔기 때문에 나의 부담은 줄면서 그 또한 충분한 안내를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우린 서울에서 전주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한 뒤 버스에 올라 창덕궁을 향했다. 물론 오전 내내 걸어 피곤했지만, 한곳이라도 더 담아내기 위해선 바쁜 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창덕궁은 태종이 1405년 이궁(離宮)으로 지은 궁궐로서 자연친화적으로, 지세와 풍수를 그대로 살려서 지었으며, 왕국의 장중함과 그 규모가 현재까지 잘 보전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궁궐의 후원인 비원과 함께 가장 중요한 고궁의 하나라고 한다.창덕궁의 후원은 금원, 또는 비원으로도 불리는데 조선시대 궁궐의 조경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시되고 있으며, 100여종이 넘는 수종과 300년이 넘는 거목들이 있고, 연못과 정자들은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루어 내고 있었다. 조선후기 역대 임금들이 대체로 창덕궁에 머물면서 수시로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만 했다. 그리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선조들의 지혜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종묘(宗廟)! 종묘는 조선시대의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왕의 신주(神主)를 봉안한 사당이다. 왕이 도읍을 정하면 궁전의 왼편에 종묘를, 오른편에 사직을 세우게 했다고 한다. 종묘는 목조 건축중 가장 긴 건물로 장엄하고 엄숙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인류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그리고 서둘러 도착한 덕분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 1호로 지정된 종묘제례악 연주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정전과 영년전을 둘러보고 아쉽지만 우린 발걸음을 옮겨 전주로 향해야만 했다.
하루종일 걸어 피곤했지만, 누구하나 불평 없이 뿌듯하고 벅찬 가슴으로 향하는 귀성 길은 언제나 행복하다. 친한 친구와, 같은 사무실 동생과, 일본인 친구와, 그 외 동행한 다른 분들과의 감정과 느낌은 모두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여행으로 서로의 동질감을 확인하고 같이 감탄하고 느끼게 된다. 이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그리고 일본인 친구에게 많은 것을 말로 얘기 해 주진 못했지만 우리 선조의 얼과 전통이 서려있는 이곳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젠 좀더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 질 수 있지 않을까? 왕도의 얼, 오백년 세월이 남긴 자취를 찾는 옛 한양의 궁궐들은 내가 선택한 20세기의 마지막 여행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여행이었고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제 겨우 두 번째인 답사 기행이었지만 난 앞으로의 기행도 모조리 예약을 해 두었다. 물론 나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