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백제기행 (다시가고 싶은 백제기행 다섯 번째 여정)-
신라의 야외박물관, 미술의 보고가 따로 없다.경주 남산 일대
이순자 주부
야외 박물관, 어느 계곡을 따라 들어가더라도 만날 수 잇는 수많은 불교 유적과 신라 문화의 흔적들. 정말 그랬다. 경주와 남산은 그 전체가 마치 신라의 예술과 문화를 위해 숨쉬고 잇는 땅같았다.
우리나라에서 경주는 꼭 다녀와야 할, 어쩌면 제주도보다도 당연히 다녀와야할 곳이 되어버린 곳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경주로 수학여행이라는 것을 떠나고, 나같은 어른들은 꼭 한번 관광버스에라도 올라 경주를 다녀오곤 하니까.
아직은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초가을 오후에(9월 11일)출발해 저녁 7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황룡사지-월성지-계림-첨성대. 일정에 써있는 첫날 코스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여행의 묘미가 또 무엇이던가. 일정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맛이 또 있는 법이다. 아쉽게도 첫날 일행은 이름모를 불상밖에 만날 수가 없었다. 숙소로 이동을 하고 경상도에서는 제법 맛있는 저녁으로 허기를 달래고 백제기행의 피해 갈 수 없는 ‘공부’(나같이 나이가 든 아줌마에게는 피해 갈 수 없다고 밖에 표현 할 수가 없다.), 강사 선생님의 경주 남산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금오산이라고도 불리는, 경주시의 남쪽을 둘러싸고 남북으로 솟은 산이 남산이엇다. 일반적으로 북쪽의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을 잇는 산들과 계곡 전체를 통칭해서 남산이라고 한단다. 남산은 정상이 직삼각형의 모습을 이루고 있고, 또 무수한 계곡이 종횡으로 치달아 있다고 한다. 그 골짜기마다 사지, 석불, 석탑이 있고, 산꼭대기에 있는 수많은 화장장골기가 출토되어 전산이 불적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란다.
이곳은 신라 사영지 가운데 항 곳으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곳에서 모임을 가지고 나랏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한다. 또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인 나정이 이 산 기슭에 있고, 경애왕이 적의 손에 죽은 포석정이 있으며, 서라벌을 지키던 육군본부인 남산성도 잇다. 또 불교가 공인된 이후에는 남산은 부처님이 상주하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존중되었다고 한다. 9세기 경에는 부처님이 하강하는 산으로 여겨져, 화장한 뼈를 꽃무늬로 장식한 항아리에 넣어 묻었다고 한다. 30여개가 되는 골짜기마다 절을 짓고, 바위마다 부처님의 모습을 새겨 놓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절터가 55개소, 석탑이 38기, 불상이 70여좌가 있어 그대로 하나의 큰 박물관이며 미술의 보고인 성산으로 여겨지고 잇단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남산으로 오르기도 전 강의시간에 준비된 슬라이드를 통해 그야말로 ‘야외박물관’으로 향했다. 남은 일은 내일 직접 이것들을 눈과 가슴으로 보는 일일뿐이랴.
다음날 일행은 아침 8시부터 길을 나섰다. 쉽지 않은 길에 오른 만큼, 여느때 백제기행 참가자들이 다 그랬던 것처럼 하나라도 더 느끼고 가야한다는 생각에 주최측에서 제시한 출발시간이 조금 일었어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동해바다. 모두들 상쾌한 아침공기 속에서 바다를 대하니 기분이 그만인 듯 했다. 대왕암이라 불리는 동해 가운데 바위섬은 문무왕의 수중릉이다. 죽어서 용이 되어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의지가 담긴 곳으로 화장하여 이곳에 매장했거나 뿌렸다 한다. 그의 아들 신문왕이 완성시킨 절이 감은사인데,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금당 밑에 구멍을 내놓은 흔적을 볼 수 잇다. 절터의 금당 앞 좌우에 똑같은 삼층 석탑이 남아있는데 엄숙함과 안정감이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기본형이라 한다.
남산에 앞서 찾아간 황룡사는 몽고군의 침략으로 불타 없어지고 바람만 이는 들판이었다. 계절과 날이 좋아 그렇지, 겨울이라도 됐다면 그 황량함을 무슨 수로 막아낼까 하는 안타까움 마저 자아냈다. 금당벽에 솔거의 벽화가 있었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 황룡사 터에는, 건물과 탑 그리고 불상의 자리를 알려주는 초석뿐이었지만 그 규모는 엄청나게 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구층목탑은 백제의 아버지가 만들었다는데 백제문화가 신라에 파급되었다는 만족감과 더불어 상대국의 문화도 과감하게 받아들였던 그들의 여유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기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마지막 코스 남산. 남산에 오르기 위해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함께 온 일행의 따뜻함으로 감동되는 순간이었다. 멀리 청주에서 오신 부부께서 오늘 산행을 위해 당나무를 깎아 만든 지팡이를 준비해 오신 것이다. 소수정예의 가족같은 분위기, 백제기행의 또 하나의 묘미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가 똑같은 지팡이에 의지해 남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소나무가 많아 솔잎향기 그윽하고, 계곡물도 너무 맑앗다. 그 계곡물 맛 좀 보느라 일행에서 조금 뒤쳐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많은 절과 탑이 서고 불상이 만들어졌던 곳으로 가는 길목, 계곡마다 그들을 만날 수 잇고 큰 바위에 새겨진 부처를 쉽게 볼 수 있었다.
1박2일 동안 돌아보기에는 조금 벅찬 일정 이었지만 많은 것을 다시한번 느끼고 얻어가는 시간들이었다. 무엇보다도 경주를 방문한 이라면 누구나가 느끼는 것일테지만 참 잘 가꾸어진 유적지가 경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어떤 유적 유물들을 보존하기 위한 제도들이 시행되고 잇고, 6.25의 전화를 피한 곳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을 소중하게, 가끔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랑스러워하는 경주시민들도 단단히 한 몫 거들고 있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 전북지역에도 못지 않은 많은 유물과 유적들이 있는데 그동안 내가 가졌던 생각, '난의 떡이 커보인다‘는 그런 생각으로 다른 지역에 와서는 부러움만 가지고 돌아가지는 않았는지 하고 반성도 해보았다.
몇 번 백제기행을 참가했던 나에게 이런 유적 유물을 배우고 느끼는 것 못지 않게 얻어가는 것이 있다면 다름아닌 ‘사람’이다. 나이든 아줌마가 젊은 사람들을 만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기행에 참가한 젊은이들과 함께 일정을 보내면 덩달아 나까지 젊은 기분이 나곤 한다. 이번 기행에서도 우연하게 만난 시집 안간 처자들과 한방에 묵었다. 1박2일 내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배웠고, 다음 기행에도 함께 하기로 약속까지 했다.
이제 다시 경주를 찾을때면 그유명한 석굴암이나 불국사만 찾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화려한 보문단지에서 술잔을 기울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강사 선생님이 하신 말처럼 조금은 황량한 황룡사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밤하늘의 별을 벗삼아, 구층목탑을 상상으로나마 하나하나 쌓아가며 기울이는 술맛이 훨씬 좋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