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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7 | [문화저널]
<제67회 백제기행>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안동 하회마을
최정숙(2005-01-25 15:50:40)

<제67회 백제기행>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안동 하회마을



최정숙


우연히 친구로부터 안동지역 답사가 있다는 소리에 귀가 번쩍 띠었다. 경북 안동은 내가 살고있는 익산에서는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지역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책에서만 보고 느꼈던 감동을 실제로 느껴볼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아들(찬, 윤)과 함께 답사에 참가하게 되었다.7월 24일, 좀 이르다 싶은 시간에 아이들을 재촉하며 전주 집결지에 도착했다. 


방학이라서 가족 단위의 답사객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처음 본 사람들이지만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버스안에서 이번 답사의 길라잡이인 ‘조법종’ 교수의 자세한 설명은 답사내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리가 답사할 안동지역을 대동여지도로 보면서 설명을 들었는데, 박물관에서나 언 듯 보았던 대동여지도를 기호 하나하나 설명을 듣고 자세히 알게되는 기쁨 또한 컸다.따가운 7월의 햇살속을 버스는 힘차게 달려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우리의 목적지인 안동에 드디어 입성을 하였다. 첫 번째 답사지인 봉정사로 향하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은근히 걱정을 하였는데, 봉정사 입구에 도착하자 빗줄기가 멈춰 이번 답사의 행운을 예고했다. 버스에서 내려 일주문을 넘어서니 산길 좌우에는 해묵은 고목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고, 소나기에 씻긴 숲은 짙은 녹색의 푸르름으로 눈이 부셨다.


깊은 숨을 몰아쉬며 숲길을 걸어올라가니 때마침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법종 소리가 들려와 알 수 없는 기운에 가슴이 서늘해져옴을 느꼈다. 봉정사는 절이 앉은 자세가 마치 봉황이 머물고 있는 듯 하여 이와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지난번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간 절로 세간에 소개가 되어 널리 알려진 아담한 절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봉정사가 세상에 이름 높은 것은 현존하는 목조건축으로 가장 오래된 극락전(국보 제15호)이 있기 때문이다. 극락전은 맞배지붕 특유의 단순하면서 힘있는 것이 아주 야무진 맛이 풍기는 건물이었다. 특이한 것은 네모 반듯한 문틀만 있지, 문짝이 없고 좌우로 빗살의 창문이 나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처음에는 물건을 보관하는 기능을 가진 건물이 아니었나 하는 추정이 든다는 설명이었다. 


날은 저물어 버스를 타고 안동시내에 있는 안동 문화회관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뒤에 조금은 피곤하였지만 안동대학교에 있는 임재해 교수의 안동문화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안동문화의 전반적인 이야기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안동 방문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이야기로 많은 시간을 할해하여서 다소 실망스러웠고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자루하여 잠깐 졸기까지 하였다.졸린 눈을 번쩍 뜨게한 사람은 ‘편해문’이라는 젊은이였다. 편해문씨는 안동민요를 연구하는 젊은이로 구성진 목소리로 옛아이들의 노래를 가르쳐주었는데, 따라부르기 쉽고 익살스러워 어른, 아이 모두들 즐거워 했다. 다음날 아침 6시에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안동역 앞에 있는 동부동 5층 전탑을 보았다. 


전탑은 벽돌로 쌓아 만든 탑인데 안동지역에만 유일하게 존재한다고 한다. 여기는 옛날 범림사가 있던 자리로 지금은 당간지주와 함께 이 전탑만이 안동역 한쪽 외진곳에 쓸쓸히 서있다. 그래서 그런지 탑 층층마다 얹혀져 있는 부서진 기와조각은 애잔함마저 느껴졌다.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같은 안동시내에 있는 법흥동 7층 전탑과 고성이씨 종택을 둘러보았다. 법흥동 임청각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99칸 집이라고 한다. 별당채인 군자정에서 앞을 내다보니 뿌연 새벽 안개속에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는데, 이런 아름다운 풍광을 바로 코앞 철길이 반감 시켜버려 참으로 안타까웠다. 7층 전탑은 높이 17.2m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탑중 가장 키가 크다고 한다. 


원래 이 자리는 통일 신라때 법흥사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폐불정책으로 안동부내의 절들을 강제로 철폐시켜 폐사가 되고 탑만 덩그러니 남아 고성이씨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일제때 중앙성 철길이 법흥동 7층 전탑 바로 코 앞으로 놓아져 기차가 지나갈때마다 진동과 소음이 심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천년을 두고 우뚝 서있는 저력이 그저 장하기만 하였다. 탑 기단부는 시멘트로 발라놓은 것이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똑같은 처지로 참으로 안스럽기만 하였다.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가꾸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영주 부석사로 향하는 도중에 산 기슭 암벽에 새겨진 커다란 마애불인 제비원 석불이 있었다. 이 석불은 고려 불상으로 큰 암벽에 몸채를 그려넣고 그위에 얼굴을 조각하여 얹어놓아졌다고 한다. 설명하는 강사는 잘생기신 부처님이라고 하셨지만 내가 보기에는 무당집 신당에서 본 부처님 같아보여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제비원 석불은 민간신앙의 본향으로 무가중 성주풀이에 나오는 석불이라고 한다. 오전 8시 20분쯤 부석사에 도착하여 아침을 들고 야트막한 경사길의 부석사 진입로에 들어섰다.


 부석사 진입로는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1km가 넘는 비탈길로 양옆에는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고, 바로 옆에는 사과밭이 있어 아직 익지않은 사과가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누군가가 늦가을 부석사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던데 그말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노란 은행잎이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사과 밭에는 빨간 사과가 익어가고 있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개인적으로 이번 답사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도 이곳 부석사였다. 일주문에서 천왕문으로 오르는 길에 우뚝 선 당간지주가 먼저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 훤칠하게 잘 생긴 당간지주는 절집의 당(깃발)을 계양한 곳이라고 한다. 비탈길이 끝나고 돌계단을 오르면 천왕문에 이르러 부석사 경내로 들어가는데 여기서 요사채, 법종루,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에 이르기까지 9품계단으로 이루어진다. 극락 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의 상주처인 무량수전 건물은 팔작지붕으로 봉황의 날개짓 모습의 기품있는 건물이었다. 


특히 배흘림 기둥의 곡선의 아름다움이 확연히 살아있는 건물이다.무량수전 앞 안양루에서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부석사 당우들이 낮게 내려앉아 있고, 멀리 태백산 산줄기가 뿌연 연루속에 현세가 아닌 극락세계인냥 아스라히 펼쳐져 있다.늦가을 은행잎이 질 때 부석사를 꼭 한번더 찾아오리라 마음 먹으며 버스에 몸을 싣고 마지막 답사지인 안동으로 향하였다. 가던 길에 선사시대 암각화가 그려져 있고 고려시대 양식인 마애불이 있는 곳에 잠시내려 설명을 듣고 사진도 몇장 찍고 곧장 병산서원으로 달려갔다. 하회마을에 들어가기전에 낙동강을 따라 차가 서로 비켜가기도 힘든 좁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니 병산서원이 눈에 들어왔다. 병산서원은 조선시대 5대 서원중의 하나로 1572년 서애 류성용이 풍산 읍내에 있던 류씨 교육기관인 풍악 서당을 이곳 병산에 옮겨 지은 곳이라고 한다. 병산서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건축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우리네 눈으로 보아도 병산서원의 공간배치와 주위의 경관은 빼어났다. 특히 만대루의 탁트인 전망이 압권인 것 같다. 넓은 마루 넘어 낙동강의 하얀 백사장과 초록빛 병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발아래에는 꽃분홍의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초록빛깔과 붉은빛의 대조에 눈이 부신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두 개의 통나무 계단을 올라 누마루에 올라가 잠시 앉아 아름다운 풍광에 그저 감탄사만 연발하였다. 아름다운 병산서원을 뒤로 하고 안동하회마을에 들어서니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옛스럽고, 조용한 양반마을만 생각해서인지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 물돌이동 이라고도 하는데 풍수상으로 태극형 또는 연화 부수형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부터 큰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안동의 향토식인 헛제삿밥으로 점심을 먹고 마을을 둘러보았다. 하회는 전깃줄도 지하에 묻어 전봇대도 없고 돌담을 끼고 도는 고샅길, 늙은 은행나무, 이끼낀 기와지붕과 소박하고 정겨운 초가집, 이런 모습만 잠깐 확대 정지시켜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와 있지 않나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서애 종택인 충효당과 겸암 종택인 양진당 북촌댁, 남촌댁 등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이 수려한 풍광과 조화를 잘 이룬 마을이었다. 오후 3시쯤에 마지막 답사코스인 하회 탈춤 공연을 관람하였다. 탈춤을 관람하는 즐거운 시간이기보다는 누가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오래 버티나 인내심을 시험하는 고행의 시간이었다. 더위도 더위였지만 더욱 더 짜증나는 것은 탈춤을 추는 공연자들의 대사가 정확이 전달이 되지 않는 점이었다. 탈을 쓰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한 여름 퇴약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탈을 쓰고 공연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햇볕이 다들어오는 엉성하게 쳐진 차양막 아래 1시간이 넘게 서 있는다는 것은 보통 인내심 가지고는 힘든 일이었다. 하회 탈춤을 끝까지 다 본 사람은 죽어 극락세계에 꼭 간다더니&#44118;? 인내심이 강한 사람만이 극락세계에 가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그래도 끝까지 보긴 보았다. 4시 30분쯤 1박2일의 안동 답사를 마치고 귀로에 올랐다. 피곤함과 더위에 지쳐 한숨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창밖은 벌써 깜깜한 밤이었다. 저녁 10시쯤 전주에 도착하니 마중나온 아이들 아빠 얼굴이 참으로 반갑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기쁨과 아는만큼 역시 보인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해진 답사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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