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0 | [문화저널]
<제 51회 백제기행>시골장, 그 추억속으로의 여행
김금자 왕신여종고 서무과
(2005-01-25 15:20:45)
시골장은 전통적인 우리네 삶의 터전이었고 사람이 함께 모이는 정보교환의 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대식 상점에 밀려 자취가 사라져가고 있다. 순창 일대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몇몇 장터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갔던 날은 동계 장날인데도 가게들이 거의 문을 닫았고 몇 집만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여름의 무성함이 각기 다른 색깔로 물들어가고 있는 산과 들의 풍경만 보아도 가을은 여행을 서두르게 한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이 가을로 가득한 시월에 전통 장날의 모습을 보러 백제기행을 간다기에 네명의 친구와 함께 길을 떠났다. 임실, 오수를 거쳐 동계로 향하는 차창 밖에는 모든 일을 마친 여유와 허전함이 함께 있었다. 곡식을 거두어 들인 논과 밭은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다시 생각나게 하였다.
처음 간 곳은 동계였다. 그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던 향토사학자 양상화 선생을 모시고 동계와 순창 일대 5일장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시골장은 전통적인 우리네 삶의 터전이었고 사람이 함께 모이는 정보교환의 장이었으나 지금은 현대식 상점에 밀려 자취가 사라져가고 있고, 순창 일대에도 몇몇 장터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갔던 날은 동계장날인데도 가게들이 거의 문을 닫았고 몇 집만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예전엔 농사일에 바쁘던 사람들이 가을걷이가 끝나면 장터에 모여들었다. 참빗장사, 팥죽장사, 고무신 장사, 옷장사, 약장사 등 온갖 장사들과 무언가를 사려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장날, 약장사의 놀이판은 제일 재미있었던 볼거리였다. 손님이 많으면 아이들을 내쫓기도 했지만 그래도 눈치껏 끼어들어 구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다 어머니께서 큰맘먹고 사주시던 팥죽은 평생 팥죽만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 만큼 맛있었었다. 그러나 그런 흔적들은 찾아볼 수도 없는게 아닌가. 너무 스산하여 빈 구멍이 느껴지는 마음을 메우려고 장터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 쌓인 노란 은행잎만 보고 또 모았다. 모퉁이를 돌아나오는데 돗자리, 체, 키, 나무주걱 등을 팔고 계신 할아버지를 만났다. 친구와 작은 돗자리를 하나씩 샀다. 웬지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 순창의 명당을 찾아갔다. 명산에 명당이 없는 이유는 지리산 모악산 같은 명산의 기의 응결이 너무 강해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벅차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순창 일대의 부드러운 산줄기들은 인간의 유골 하나를 포근히 품어 안을 포용력이 있다고 한다. 양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찾아간 곳은 인계면 구미리의 양씨 성촌이었다. 명당에 얽힌 이야기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가 그저 지나치던 산과 들에 대한 새로운 눈뜸이었다.
집집마다 처마 밑에 늘어뜨려 말리고 있는 곶감, 돌담장 위의 늙은 호박, 마을 안길까지 쳐들어온 논과 밭, 그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고샅길, 모두가 영화속의 한 장면같이 떠오른다.
양씨 종갓집 아주머니는 찾아오신 손님들에게 대접할 것이 없다하시며 우리들 불청객에게 집안의 솜씨로 내려오는 생강엿을 나누어 주셨다. 당신이 직접 만드셨다고 하시는데 정말 맛이 있었다. “곶감도 좀 주세요” 라고 염치없이 졸랐더니 “아직 다 안되었는디...”하시며 선선히 몇 개를 빼어주셨다.
댐을 쌓으면 잠기게 되어 21세기에는 어쩌면 사라져 버리고 없을 길을 따라 보스는 순창 읍내로 향했다. 순창 장터는 읍내 규모답게 규모가 상당히 컸다. 읍내에 아직 슈퍼나 편의점이 많지 않은 모양인지 농촌의 옛모습을 지니고 있는 순창장은 함석을 올린 장옥을 그대로 쓰고있었다. 기행 일정이 순창 장날과 맞아 떨어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장날이 주말을 비켜간 탓에 우리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흥청거리며 장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또 먹자타령을 늘어놓아야 했다.
그날, 장날도 아닌 날, 남원 순대국밥집 아주머니는 우리 일행을 위해 문을 열고 먹거리를 준비해 놓으셨다. 타일을 붙인 목로 곁에 폭이 좁은 나무판자로 만든 긴 의자, 그 촌스런 의자가 새삼스럽게 반가워서 제일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국밥집 아주머니는 낭자머리에 옥비녀를 꽂고 귀꽂이로 한참 멋을 내고 분홍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맵시있게 차려입으셨다. 입성도 그렇지만 자태도 고와서 그렇다고 했더니 “내가 어디가 이쁘요?” 하고 웃으신다. 곱창 피순대와 개운한 국밥은 일품이었다.
순창에는 강천산이 있다. 다음 방문 예정지가 강천산 삼인대 (삼인대)였는데 일요일에다 단풍철이 겹쳐 버스는 들어갈 수 없단다. 열심히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로 아니된다 하여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리 행락철이라지만 문화재를 답사한다는데 안내는 그만두고 방해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잠시 후 우리가 도착한 곳은 순창군 복흥면 추령마을 이었다. 그곳에서 장승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금년으로 두 번째라는 장승제는 지역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한 축제로 기획된 행사였다. 장승의 역할은 이정표, 마을의 경계표시, 지세가 허한 곳을 세우는 풍수비보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본다고 하였다. 장승2제를 위하여 장승, 석장승, 솟대, 움막, 돌탑 등이 세워지고 각종민속놀이 기구들도 마련되었다. 장승제를 보면서 국밥으로 채웠던 속이 다시 허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사라져가고, 보존한다는 것들도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나...
친구와 널뛰기를 했다. 오랜만이었지만 솜씨가 어디로 가겠는가. 주변 사람들이 샘을 내도록 한바탕 뛰고 나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돌아오는 차창 밖으로 갈대가 흔들렸다. 서울서 온 친구는 모두 다 좋았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 보름달이 하얗게 밝았다.
김금자 / 정읍 출생. 한국방통대, 우석대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현재 왕신여자종합고 서무과에 근무하고 있다. 꽃꽃이 1급 사범으로 두 번의 회원전을 가졌고, 전통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