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6 | [문화저널]
[제76회백제기행]
백제의 옛 영토, 질긴 숨쉬는 우리문화
고영희
임실서고등학교 교사(2003-04-07 14:18:05)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이 한꺼번에 꽃 램프를 켜더니, 이제는 초록빛 잎사귀에 자리를 내준 화창한 4월의 봄날. 전북문화저널에서 주최하는 "제 76회 생활 속으로 떠나는 문화기행"(경기도편)에 참가하게 되었다. 우리 곁에 전북문화저널이 있어 내가 사는 공간 속에 숨소리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기쁨이지만 넓혀진 마음으로 또 다른 공간과의 접목을 끊임없이 시도해 준다는 것이 더할 수 없는 고마움이 된다.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마이크를 잡은 강사 김성식씨(도립국악원 학예연구실장)가 이번 기행은 서울, 경기도 지역이라고 말하자 한 초등학생이 이렇게 묻는다. "백제가 언제 서울까지 올라갔느냐? "백제" 하면 떠오르는 연상이 패망한 국가이기 때문에 상당기간 동안 경기도 지역이 백제의 영토였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고속도로를 지나 서울로 들어서니 석양빛이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있는 한강 둔치에 많은 시민들이 나와 토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이 보인다. 어느 곳에서 연날리기 대회가 있나 보다. 하늘 높이 나는 연이 마치 새가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것 같다. 나는 잠시 연날리기는 새처럼 날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먼저 문화기행의 첫번째 순서는 송파산대놀이. 공연장은 롯데월드 옆의 덕수궁 돌담길을 연상하게 하는 나즈막한 담장에 미류나무가 있는 도심 속의 아늑한 한옥 공간이다. 또한 토요일마다 상설공연이 열리는 조그마한 원형극장도 갖추어져 있다. 이런 놀이문화공간을 도시마다 만든다면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생생하게 보존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산대놀이 전수교육 보조자인 함완식씨가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한복을 입은 모습이 잘 어울리는 멋스러운 분으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산대놀이를 배우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현재의 위치에 놀이공간도 마련하고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때 우리의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보여주려고 동분서주 애쓰신 보람이 오늘을 있게 해준 것 같다.
함완식씨를 통해 전해들은 산대놀이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49호로 지정된 송파산대놀이는 약 200여년 전부터 현재의 서울 송파구 석촌 호수 주변에 있던 송파장을 중심으로 연희되어 오고 있다고 한다. 송파산대놀이는 서울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탈놀이로서, 상업적 부촌이었던 송파장이 송파산대놀이 연희의 경제적 요건이 갖추어진 적절한 장소였다고 한다. 마당구성은 산대놀이 12마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금까지 그대로 전승되고 있고 탈의 수도 33개로 배역도 있어 비교적 고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춤사위는 지극히 섬세하고 종류가 다양하여 한국 민속무용의 춤사위로 대변할 만하고 등장인물이 추는 춤은 모두가 생활 속에서 따온 민중 자신의 삶의 모습임을 보여준다고 한다. 또한 "탈"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말로써 "배탈" "해탈" 등 갈등과 모순을 해결하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함완식씨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그 분의 송파산대놀이의 원형을 보존하려 하는 열정어린 노력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드디어 같이 탈춤을 추는 시간. 장구 장단에 맞추어 호흡을 같이 하며 신명나게 박수도 치며 탈춤을 배워본다. 건드렁, 여닫이, 배치기의 간단한 동작인데 여러 번 반복하니 어느새 땀이 배어 나온다. 힘과 애절함이 동시에 곁들인 동작으로 모두 깔깔깔 웃으면서 열심히 따라 해본다.
함선생님은 탈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을 해주시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먹중탈을 만드는 사람은 대부분 탈의 모습을 본인의 얼굴 모습으로 만든다고 한다. 무척 흥미로운 말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정신문화연구원에서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데 참석자 한 분이 고발하겠다고 했단다. 아마도 내용이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하고 비꼬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웃지 못할 희극적인 이야기다.
시연이 끝난 후, 호수 건너편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저녁이 이렇게 늦게 된 것은 보다 더 맛있는 식사를 하기 위한 주최측의 배려(?)때문이었다는 말에 모두들 한바탕 웃음으로 답변을 했다. 저녁을 먹고 주변을 둘러보니 롯데월드에서 들리는 함성소리와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눈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롯데월드에 와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옆에 있는 원형극장으로 되어있는 우리문화 놀이공간은 그냥 지나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다음 순서는 경기도 이천의 도자기 만들어 보기 학습장이다.
이천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같이 동참한 김성식(도립국악원 학예연구실장)씨의 재치 넘치는 여담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함완식씨의 치열한 열정을 여기에 다 옮기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경기도 이천의 숙소에 도착. 이곳에서는 도자기를 직접 만드는 체험을 해볼 예정이다. 다음날 아침 쌀의 본고장답게 윤기가 나는 맛있는 쌀밥을 먹고 해강도자미술관에 도착, 전시물품을 관람해 본다. 해강도자미술관은 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도자기를 통하여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곳이다. 제 1전시실(도자문화실)은 도자사의 변천과 제작기술의 발달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이며 체계적으로 정리 전시하였고 제 2전시실(유물 전시실)은 명품의 도자기 이외에도 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도편들과 도자기와 관계 있는 공예품을 비교 전시함으로써 도자기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였다. 나는 이곳에서 "상감기법"에 대해 다시 한번 공부를 했다. 평소에 많이 듣던 말이지만 정확한 내용은 사실 모르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공부한 "상감기법" 이란 고려시대 청자의 장식 기법이다. 그것은 음각을 한 곳에 다른 빛깔의 흙을 집어넣는 기법으로 태토를 음각하고 그곳에 다른 색의 흙을 집어넣는 것이지만 그 과정은 음각을 한 위에 백토나 흙토 같은 다른 색의 흙을 물에 개어 두껍게 칠한 다음 조금 마르면 칼로 살살 긁어 내어 음각한 곳에 다른 색의 흙이 남아 있게 하는 것이다. 상감기법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알고 보니 역시 사람은 평생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강선생(유근형)은 암울한 일제 침략기에 맥이 끊기어 잊혀졌던 고려청자의 계승에 신명을 바친 분으로 현대 한국의 도자 발전에 초석을 쌓고 아울러 고려 청자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신 분이다. 이제는 자제분(2대 해강 유광열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 이천, 여주에서는 2001년 8∼10월까지 "세계 도자 엑스포"(흙으로 빚는 미래라는 부제가 붙어있다.)가 열린다. 해강 선생의 뜻을 기려 우리의 뛰어난 도자 문화를 전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의 산증거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전시관을 둘러본 후,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본다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드디어 해동도자교실로 들어섰다. 해동도자교실에서 2가지 체험을 해본다.(직접 흙을 주물러 만들어 보거나 이미 만들어진 작품에 그림을 그려 넣는 방법). 먼저 선생님이 물레를 돌리면서 도자를 만드는 방법을 시범을 해보이신다.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물레를 돌리면서 도자기를 만드는 장면이 퍽 인상적이었다.) 정성스럽게 움직이는 손의 모양에 따라 도자의 모양이 계속 새로운 형태로 바뀌어 간다. "이중투각"이라는 작품인데 안의 모양이 궁금할 거라며 실로 반을 쪼개어 안을 보여주신다. 모두들 호기심어린 눈으로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나는 도자를 만드는 대신 그리는 방법을 택했다. 화병에 장미꽃을 정성스럽게 그려 넣었다. 앗! 나의 실수. 한 손으로 꽃병 가장자리를 잡고 들었더니 그만 꽃병이 깨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접시에 예쁜 장미꽃을 그려넣었다. 실수하지 말아야지 되내이면서...... 다 만든 작품은 전주로 보내주신단다. 모두 멋진 작품이 완성되기를 기대해본다. 이곳에서 잠시 쇼핑할 수 있는 시간을 내본다. 모두들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는 도자기 가게를 기웃해 본다. 도자기 가게마다 특색 있는 다양한 도자기를 진열해 놓고 손님들을 유혹한다. 간간이 가게를 들러보는 외국인도 눈에 띈다. 그만큼 이곳이 한국의 도자기 문화를 대표하는 거리이기 때문이리라.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너무 고가라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도자기를 만들어 보는 일이 몹시 힘들었는지 버스 안에서 정신 없이 눈을 붙이고 있는데 어느새 여천의 식당 앞이다. 들어서면서 상호명을 보니 "청심장" -마음이 맑으면 정신이 맑나니-. 점심 한끼 먹으면서도 마음을 다스리고 먹으라는 뜻이리라.
다음 목적지는 목아 불교 미술관. 이곳 외부는 인도 사원의 독특한 벽돌 양식을 이용하여 표현하고 내부는 한국고유의 문살과 한지를 이용하여 우리의 전통적 분위기를 살린 멋스러운 건물이다.
목아 박찬수씨와 안명자씨의 두손 모은 마음의 문으로 설립된 곳으로 4층으로 되어있는 박물관 안에는 여러 형태의 부처님들이 모셔져 있었는데 특히 아기부처의 모습이 아주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잘 다듬어 놓은 정원에는 전시물이 저마다의 의미를 지니고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었고 박물관 외벽은 세월의 흔적을 나타내듯 담쟁이 덩쿨로 덮여있어 한층 그윽한 멋을 자아내고 있다. 이 곳에서 이 여행을 기념할 만한 기념품을 샀다.
마지막으로 들러본 곳이 세종대왕 영릉. 세종대왕릉은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대왕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한글을 창제하고 과학기구를 발명하였으며, 아악을 정리하고 북방의 야인들을 정벌하여 국토를 확장하였다. 학문을 숭상하여 학자를 양성하고 활자를 개량하여 용비어천가, 농사직설 등 수많은 책을 발간하였다. 왕릉은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능의 하나로서 합장릉임을 알 수 있는 두 개의 혼유석이 있고 봉분 둘레에 돌난간을 둘렀으며 능 뒤에는 나즈막한 곡담을 둘러 한층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세종대왕 재위시의 업적물(측우기, 자격루, 수표, 혼천의 등)이 안내문과 함께 전시되어 있어 새삼 그 분의 업적을 기리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홍살문을 지나오니 산에서 시원한 솔바람이 불어와 여행자의 피곤함을 풀어준다. 여행이 끝나간다. 여행은 항상 신비스럽다. 여행처럼 이해 못할 신비도 없다.
인간은 유한하다. 시간과 공간에 묶여있다. 생활은 때로 더 큰 족쇄를 채우기도 한다. 인간은 또 초월적이다. 늘 자신을 규정짓는 시공간에서 벗어나려 한다. 누구든 그 성공과 실패의 좁은 경계선 위에서 일희일비한다. 시간과의 싸움은 어쩔 수 없다. 강제로 잡아 늘리기 힘들다. 하지만 상대가 공간이라면 희망이 보인다. 공간은 확장이 가능하다. 얼마든지 자신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 여행을 통해서 말이다. 이번 여행이 나 자신의 공간적 영역을 한 뼘 넓히고 성숙시켰음을 느끼며 제법 길었던 나의 답사기를 여기서 마칠까 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