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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6 | [문화계 핫이슈]
교수노조, 교권과 노동권 보장하는 실질적 대안 대학의 현실과 교수노조결성
남춘호 전북대 교수·사회학과 (2003-04-07 14:15:31)
지난 4월14일 서울대학교에서 '전국교수노동조합 준비위원회'가 출범하였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전교조 등 노동단체들과 전국교수회, 국교협, 사교련 등 교수단체 및 우리사회의 민주적인 시민 사회단체 대표들의 축하와 격려속에 6백명 이상의 교수노조발기인들은 대학개혁의 큰 희망을 세우기 위하여 힘찬 출발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전북지역에서는 지난 5월16일 전북대학교에서 교수노조준비위원회 전북지역 발기인대회 겸 출범식을 거행하였다. 사실 민교협을 중심으로 교수노조에 대한 공론화작업이 이루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전북지역에서는 교수노조에 대한 일반 교수대중의 관심과 지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가지는 분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막상 교수노조준비위원회를 꾸려가는 과정에서는 우리지역의 교수들이 전국에서 가장 적극적인 지지를 보여주었으며 그 결과 5월 21일 현재 도내에서는 11개대학 1백6분의 교수들이 교수노조(준)에 가입하였다. 외국에서는 교수노동조합이 이미 일상화된 일이지만 우리로서는 전인미답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대학교수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배경에는 오늘날 총체적 위기에 처한 우리대학의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총체적 위기는 교육부와 사학재단의 왜곡된 대학지배구조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대학교육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무시한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은 그러한 위기를 오히려 심화시켜 왔다. 그간 우리의 대학은 양적 팽창과 성장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룩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해왔으나, 지금 세기적 전환에 즈음하여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학이 마땅한 소임을 다하지 못해 국민의 질책을 받기에 이른 데에는 최대의 지식인집단으로서 교수사회가 져야할 책임이 적지 않다. 교수노조는 당연히 대학사회의 겸허한 자기반성의 진원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학이 국민이 열망하는 교육과 연구의 전당이 되지 못한 데에는 개별 교수들로서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는 구조적이고 객관적인 요인이 작용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대학의 여건이 얼마나 악화되어 왔는지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하자. 지난 30년간 전임 교원 1인당 학생수의 변화를 살펴보면 초등학교는 1970년에 57명이던 것이 2000년에는 29명으로, 중학교는 42명에서 20명으로, 고등학교는 30명에서 20명으로 줄어들었다. 반면에 같은 기간동안에 4년제 대학은 19명에서 40명으로, 전문대학은 21명에서 78명으로 늘어났다. OECD국가의 교수 1인당 평균 학생수가 2000년 현재 14.6명임에 비추어 볼 때 우리대학의 현실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다. 이런 공백을 메우는 것이 '보따리 장사'라 비하되는 시간강사들이다. 전임교수가 5만여명인데 비해서 시간강사는 7만여명에 달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시간강사의 근로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공공근로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강사료를 받고 있는 시간강사들의 어깨위에 대학의 교육과 학문연구의 중책이 맡겨져 있는 것이다. 사실 연봉제와 계약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드는 논거중의 하나는 교수자리가 '철밥그릇'이므로 도무지 교육과 연구의 효율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장원리를 도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원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시간강사만큼 시장의 경쟁에 노출되어 고용이 불안정한 집단도 찾기 힘들 것이다. 최악의 노동조건속에서도 대학교육의 절반 가까이를 책임지고 있으며, 동시에 전임교수가 되기위해서 늘 연구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이들의 처지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시간강사가 압도적으로 많은 우리대학의 경우에는 당연히 교육과 연구에서 월등한 효과를 내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대학교수들 내부에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한 교수들이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학개혁의 큰 줄기는 연봉제 계약제에 있다기 보다는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교수충원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신분불안속에 학문의 길을 포기하고 있는 시간강사들을 대거 전임교수로 임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면 왜 이렇게 시간강사의 비중이 높아졌는가? 이는 바로 대학을 영리와 치부의 수단으로 삼는 사학재단과 이를 방치한 교육부 당국의 교육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대학교육의 80%를 사학이 전담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 왜냐하면 제대로된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원을 부담해야하는데 사학재단들이 이를 감당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학의 현실은 어떠한가? 재단이 재원을 대학에 지원하기는 커녕 오히려 학생들의 등록금을 재단관련 타 사업에 유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대학이야말로 설립인가만 따내면 가장 수지맞는 사업이라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이 된지 오래다. 적당히 모양을 갖추어서 졸업장만 파는 식이 아니라면 어떻게 대학을 세워서 돈을 벌 수 있겠는가? 최근 들어 신자유주의의 흐름속에서 대학에도 시장원리를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대학교육을 시장에 맡긴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지난 수십년동안 대학수와 학생수에 있어서 엄청나게 팽창한 사립대학에 비해서 국공립대학은 과연 얼마나 증설되었는가? 결국 국가는 고등교육을 사학재단의 손에 맡겨두었던 것이며, 상당수의 사학재단들은 이를 치부의 기회로 활용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우리 나라에는 일제의 억압에 맞서 사재를 털어서 민족교육 함양에 진력해온 빛나는 사학의 전통이 있다. 이제 그런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사학의 비리는 근절되어야 한다. 교육부의 관료적 통제와 비리사학의 전횡에 맞서던 많은 교수들이 '재임용 탈락'으로 거리를 헤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수노동조합의 건설이 교권과 노동권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대안이라는데 다수의 교수들이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교수노조는 결성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사회와 교육의 민주화에 큰 공헌을 할 것이다. 그것은 대학의 민주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 나라의 학문발전에 기여하고 노동운동에 대한 기존의 왜곡된 인식을 바꾸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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