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 | [서평]
우리의 밥상을 이대로 놔둘 것인가
황만길 전 전농 전북도연맹 정책실장(2005-01-08 10:06:06)
농민들이 글로벌 시대에 산다는 것은 전통적 가치와 문화에 충실한 농민들에게는 결코 축복이랄 수 없는 고난일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치열한 경쟁과 생존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제3세계의 농민들에게는 WTO(세계무역기구)와 FTA(자유무역협정)로 표현되는 논의의 장에서 적자생존의 게임의 법칙에 방어막도 없이 몸을 맡기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한국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WTO협상이나 쌀협상 종결을 앞두고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을 부르짖고 있으나, 10년 전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때와는 달리 메아리 없는 외침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농민들 사이에 WTO와 FTA는 결국 강자에 의한 강자를 위한 강자의 전가의 보도이므로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내부의 체질을 개선해 농업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 등 이견도 존재하고 있지만, 결국 WTO와 FTA라는 구조 속에서 사회적 약자인 농민과 사양 산업으로 인식되는 농업의 축소와 희생을 통해 국제시장에서 교섭력과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비교우위의 고전적 경제 이론에 정부가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다는 인식에는 일치하고 있다. 쌀협상 역시 수입량과 국내 밥용쌀로 시판하느냐 여부 역시 미국이나 중국과의 협상에서 좌우되는 현실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무역구조의 왜곡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WTO와 FTA라는 구조는 국가간 이해타산의 산물이요, 꼭 필요한 존재로써 다가오기도 하지만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때부터 농산물이 무역협상의 대상으로 UR테이블 위에 올라온 점을 두고 볼 때 카길을 비롯한 곡물메이저의 개입이 적지 않았음을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는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체계에서는 농산물 협상이 의제로 올라온 적이 없었지만 가트의 마지막 회의랄 수 있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부터 농산물 협상이 주요 의제로 등장하면서 농산물은 가트의 후신인 WTO와 FTA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고, 제3세계 농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고파는 상품으로 인식되고 자리 매김 되었다. 이제 누구도 이런 강자의 질서에 순응하거나 복종하지 않으면 국제미아가 될 수밖에 없는 대세로 굳어졌고, 이에 거부하는 가난한 농민의 외침은 변화를 거부하는 외침으로 인식되어가고 있다.
사실 우리의 밥상에 쇠고기국 한 그릇이 올라오기까지 소가 먹는 농후사료에 들어가는 옥수수를 비롯한 대부분의 곡물이 수입된 것이고 각종 약품 역시 그렇고 심지어 조사료인 풀까지 수입해 먹이는 현실이고 보면 그 쇠고기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70~80%가 수입곡물 등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은, 쌀을 제외한 모든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의 모습이요 현주소다.
이를 역추적하면 한국의 소비자→유통업자→농민→사료수입업자와 정부→WTO와 FTA 등 국제무역기구→카길 등 다국적 기업이라는 순서로 나열할 수 있다. 이 구조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견고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카길 등 다국적 곡물메이저들은 수시로 국제기구와 자국(미국 등 식량수출국)의 정치, 경제, 관료들의 정책입안과 결정 과정에 개입하고 있다. 그들은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값싸고 질 좋은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선한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생명과 먹거리의 획일화라는 문제와 아직도 굶주림에 노출된 수십억의 인구가 있다는 사실에 애써 눈감고 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돈이 있는 곳에 자기들만이 공급할 수 있는 상품화된 농산물을 보내는데 매우 능수능란하다. 아무도 이런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며 우리의 밥상에 올라온 먹거리가 그런 과정과 방법을 통해 우리의 입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기억해도 거역의 몸짓으로 밥상을 물릴 수도 숟가락을 놓을 수도 없다. 그중 각성한 사람들은 자급을 말하고 생태를 망하고 토종을 주장하지만 풍전등화로 비치고 만다. 카길은 예리한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고 있다. 뛰어난 전략과 전술이 있고 돈과 굶주림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늘상 확인하고 시장화하는 능력을 카길은 지니고 있다. 이런 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무수하게 많은 식량공급 루트를 확보해온 카길만의 노하우라 쉽사리 무너질 수 없는 바위산처럼 다가온다.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한는가』는 책을 덮는 순간 우리의 밥상을 이대로 지속할 것인가, 거역할 것인가라는 선택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천과 대안이 무엇인지는 누구 한사람이나 부문의 일은 결코 아니고 누구 혼자 해결할 과제도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은 이렇다. 농민들이여 열심히 일하고 투쟁하라 그러되 전문성과 책임성을 키워 우리의 생명과 건강한 먹거리를 지켜라. 그것은 당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이요 과제다.
정치인, 관료들은 농업이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란 인식아래 박물관의 박제된 동물이나 동물원의 초점 잃은 동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식량생산도 늘려야 되지만 그 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자긍심을 갖도록 대접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먹거리, 생명을 지키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세계 어느 국가도 식량을 무기화 할 수 없으나 카길은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밥상을 지켜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자각하기를 원하는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는 쌀협상 종결과 농업위기에 직면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