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 | [시]
<내마음을 울린 시> 나는 그의 시를 지금도 떠나지 못한다
김용택 시인(2005-01-08 09:48:08)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漢江水나 洛東江上流와도 같은 隆隆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골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 딸년이나 그 조카 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질거룬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 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둥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네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팩이뿐만이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굼치까지도 이뿐 꽃숭어리들을 달았다. 맵새, 참새, 때카치, 꾀꼬리새끼들이 朝夕으로 이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數十萬마리의 꿀벌들이 왼종일 북치고 소구치고 마짓굿 올리는 소리를 허고, 그래도 모자라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 자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當然한 일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할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무쳐서 누어있는 못물과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비취고 우어서, 때로 가냘푸게도 떨어져네리는 저 어린것들의 꽃닢사귀들을 우리 몸우에 받어라도 볼 것인가. 아니면 머언 山들과 나란히 마조 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油頭粉面과, 한 낮의 춤과, 황혼의 어둠속에 이것들이 자자들어 돌아오는-아스라한 沈潛이나 지킬 것인가.
하여간 이 한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微物하나도 없는곳에서,
우리는 서뿔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서름같은 걸 가르치지말일이다. 저것들을 祝福하는 떼까치의 어느 것, 비비새의 어느것, 벌나비의 어느것, 도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 것에 대체 우리가 행용 나즉히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어 있단 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完全歸巢가 끝난 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山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때가 되거던,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가운곳의 별을 가르쳐뵈일일이요. 제일 오래인 鐘소리를 들릴일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읽은 시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교과서에 나온 시였을 것이다. 교과서에 나온 시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나중에 시에 대해 관심이 일었을 때 나는 동생들의 국어 책을 보았다. 거기 시들이 있었다. 내 기억 속에 남은 가장 오래 된 시 구절은 김 소월의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다. 중학교 때였는지 고등학교 때였는지 모르지만 순창 읍내 영화 포스터에서 나는 그 구절을 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시 구절은 김소월의 '초혼'이라는 시였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유일하게 기억한 시인은 김수영 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그 신문에 김수영 이라는 시인이 죽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가 왜 그렇게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았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모를 것이 사람의 일이어서 나는 나중에 김수영 이라는 이름이 붙은 상을 받았다.
언제였을까? 나는 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시를 보기 시작했다. 그 때도 나는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한 기억이 없다. 아마 22살 무렵이 아니었을까? 그 때 처음 일기 시작한 시가 아마 박목월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김소월이나 조지훈 그리고 서정주였다. 서정주는 나를 오래오래 사로잡았다.
그 뒤 나는 민음사에서 나온 시 선집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나를 가장 오래 잡고 놓아주지 않은 시인들이 고은, 김수영, 황동규, 박용래였다. 그 중에서도 내 시퍼런 청춘의 목 메인 사랑을 가장 많이 적셔 준 시인은 황동규였다. 황동규의 시집<삼남에 내리는 눈>은 거의 너덜너덜 거덜이 날 지경이었다. 그의 처 시 '十月'을 처음 읽었을 때, 세상으로 한없이 깊어져 흐르는 동네 앞 강물 소리를 내 어찌 잊을까.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수많은 시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내 머리맡을 오래 동안 지킨 시인이 서정주와 김수영 이었다. 이상하게 들리고, 앞뒤가 안 맞는,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시인으로써는 김수영을 최고로 치고, 시로는 서정주를 최고로 친다. 한사람의 시인으로 김수영만큼 치열한 삶을 산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낡아도 식지 않은 사랑을 나는 짐작할 뿐이다. 지금도 나는 그 두 분의 시들을 가장 가까이에 놓고 읽는다. 그 두 분 중에서 나는 서정주의 시를 많이 읽는다. 그의 행적이야 내가 말을 안 해도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알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시를 지금도 떠나지 못한다. 그의 시 앞에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시는 습작 시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쓴 수많은 시들 중에 지금 읽어도 새로운 면이 눈에 띄어 나를 놀라게 하는 시는 '上理果園'이다. 이 시는 읽을수록 늘 새로운 말들이 맛이 있게 씹혀 단물이 나와 목을 타고 넘어간다.
김용택 | 1946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1’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섬진강』, 『밝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그대 거침없는 사랑』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등이 있다. 1986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고, 지금은 임실 덕치국민학교의 교사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