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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 | [문화저널]
[기획연재]생명이 살아숨쉬는 땅
김석환 문화를 사랑하는 정읍사람들 사무국장(2005-01-08 09:36:00)
지방자치화 시대가 열린 이후로, 각 지역 지방 자치장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지역 고유의 문화를 살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점은, 내가 살고 있는 정읍도 예외가 아니다. 그 지역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단체장이나 시민들이나 한결같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역 문화를 살리려고 하는 많은 행사들이 지역민들의 삶과 동떨어지는 것으로 인해 대부분 일회성 행사에 그치고, 계획한 것처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읍을 바라보며 井邑은 예로부터 샘골이라 불리며, 물이 많고 맑기로 소문난 고장이 아니던가. 물은 모든 생명의 始原이며, 샘은 생명의 근원인 물이 솟아나는 생명의 젖줄이며, 우리의 삶에서 샘터는 언제나 인정이 넘치고 사람과 사람이 정을 건네는 생활 문화의 터전이 되어왔다. 그토록 중요한 물이고 샘이기에, 정읍시에서도 물박물관을 짓고 물축제를 크게 기획하며 물을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물박물관을 짓고 물축제를 한다고 하여, 샘골이라 불리는 정읍의 특색이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못할 것이다. 지역의 전반적 특색으로서 ‘물’과 ‘샘’이 그 역할을 다하자면, 본래 ‘물’과 ‘샘’이 갖는 기능이 실제적으로 살아나서 움직여져야 한다. 하지만, 농약과 제초제의 사용으로 물의 생명력은 죽어가고 있으며, 물을 담고 있는 땅 또한 그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더군다나, 정읍의 상징인 ‘정해마을 샘터’근처에 들어서고 있는 방사선센타로 인하여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물줄기’마저 끊어질 위험에 처해있는 현실이다. 정읍에는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객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정읍시는 단풍나무를 더 많이 살리려 하는 동시에, ‘사계절(가을 한 철이 아닌)’ 관광지로 활성화하기 위하여 내장산 리조트 개발계획을 통하여 다시 관광객을 늘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정읍이 ‘사계절’관광지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안목이 필요할 것 같다. 첫째, 내장산에는 단풍외에도 조선왕조실록이 남아있게 한 ‘용굴’과 그 업적을 기린 ‘서보단’이 있다. 이러한 것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조선왕조 오백년 역사는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장산은 단풍만을 지켜온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도 지켜온 것이다. 둘째, 정읍에서 내장산이 물론 중요하기는 하지만, 내장산이 내장산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다 하려면, 정읍을 둘러싼 다른 산들 두승산, 칠보산, 입암산, 방장산 모두 제 역할을 다 하면서 살아나야 한다. 이렇게, 내장산은 내장산대로 다른 산들은 다른 산들대로 모두 살아날 때, 정읍은 모든 사람들이 사계절 내내 찾아와 머물고 싶은 터전이 될 것이다. 장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백제의 한 여인이 1300여년 전에 지은 정읍사는, 백제 가요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으며, 수제천(壽齊天)이라는 이름으로 궁중연악으로 연주되기도 하였고, 1970년 파리에서 열린 제 1회 유네스코 음악제 전통음악 분야에서 ‘천상의 음악’이라고까지 극찬을 받으며 최우수악곡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한 정읍사는 무고(舞鼓)라 하여 춤과 연기(演技)까지 같이하기에 그 생명력을 길게 같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도 보여진다. 즉, 정읍사는 문학·음악·춤 등의 예술적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우리나라 종합예술문화의 토대가 되어왔다. 때문에, 정읍시에서도 정읍사 문화제라 하여 매년 정읍사를 기리는 행사를 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 행사 내용을 보면, 정읍사가 갖추고 있는 종합적인 예술로서의 면모들이 연계적으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읍사의 본질과 거리가 먼 일반 다른 행사와 다르지 않은 프로그램들이 어지럽게 섞여있기까지 하다. 정읍사가 갖고 있는 종합예술문화의 가치에 부응하지 못하는 지금까지의 정읍사 문화제 형식으로는, 천년을 넘어 흘러온 우리의 예술혼의 불씨를 찾고자 하는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일반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의 발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정읍 땅을 생각할 때, 동학을 비롯한 여러 민족 종교의 발생과 민중의 자발적 봉기를 빼놓을 수 없다. 동학과 증산 그리고 보천교 등의 중심 지역이었던 정읍이다. 그러기에, 정읍시와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에서는 東學祭(동학제) 등의 행사를 해마다 벌이며, 동학의 땅으로서의 정읍을 자리매김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행사 내용을 살펴보면, 동학의 한 쪽 면에 치우친 감이 있다. 동학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의 발발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최수운 선생의 ‘侍天主’로 대표되는 우주적 깨달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아니, 그 보다 더 이전, 이 땅에 살아온 이 나라 사람들의 얼에 깊이 자리한 상생상화(相生相和)의 마음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다. 이것은 ‘산 것을 좋아하고 죽이는 것을 싫어하며,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서로 다투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죽지 않는 군자의 나라(산해경:중국경전中)’라고 일찍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표현한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동학의 전반적 면모와 그 본질을 되살리는 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표피적인 상품 개발이나 갑오농민전쟁 그 단일사건에만 매달리지 말고, 동학이 갖고 있는 생명정신(모든 것을 하늘로 모시고 살리는 정신)이 오늘의 우리 자신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고, 삶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영적 깨달음이 이어지도록 하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 생명문화가 살아 숨쉬는 정읍땅을 바라며 정읍의 샘은 백두산 천지의 물이 물줄기를 타고 내려와 그 백두산의 정기를 품고 있는 것으로서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마르지 않고 흘러넘치며 이 땅에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문화의 싹을 틔우고 있는 생명이며, 정읍이 정읍이게 하는 작지만 큰 의미이다. 샘과 함께 이 땅을 지켜온 정읍을 둘러싼 산들도 이 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숨결이 담겨있는 이 터의 심장이다. 샘과 산이 있어 생명이 펄떡펄떡 뛰는 터였기에, 이 터에서 일구어진 문화도 생명 있는 내용과 표현이었고, 그러하기에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생명이 있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기에 생명을 억누르는 ‘사회 구조’와 ‘외세 압력’에 대항하고 일어설 수 있는 ‘하늘 모시는 마음’을 향한 깨달음과 ‘자신의 목숨도 내놓아 큰 생명을 지켜내는’ 자발적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서는 상상이상의 삶과 문화의 다양함과 풍요로움이 펼쳐진다. 따라서, 지역문화 활성화의 시작은 생명을 지켜내는 일이 될 것이며, 그 생명의 다양한 활동 영역에서 일할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이 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생명의 땅 정읍에 ‘생명문화학교(가칭)’가 세워지길 기대한다. ‘생명문화학교’와 여러 ‘생명’ 살리기에 주력하는 단체들과의 ‘생명연대’를 통해 교육·문학·예술·생활 전반에 걸친 생명문화가 꽃피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밖으로 물질적 안정 외에 다른 가치를 기대할 수 없는 생명이 죽은 땅, 도시로 나가던 젊은이들이 이 터를 지키게 될 것이며, 다른 지역의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뜻있는 이들의 발길도 줄을 이어, 정읍은 생명의 땅위에 생명력 있는 사람들이 생명을 지키는 삶으로 생명의 문화를 피워내는 ‘생명이 살아 숨쉬는 땅’이 될 것이다. 김석환 | 1969년 정읍에서 태어나 호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문화를 사랑하는 정읍사람들’ 초대 회장과 사무국장을 지냈다. 현재는 ‘문화를 사랑하는 정읍사람들’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면서, ‘하늘땅 우리몸짓’ 택견 전수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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