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 | [특집]
맹목적 기피증과 저항감,그리고 문화적 저력
김남규 전주시의원(2005-01-08 09:21:47)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에 맞추어 전주한옥마을에는 전통문화센터, 공예품전시관, 한옥생활체험관, 술박물이라는 새로운 양식의 문화시설이 개관되었다. 최근에는 민간 문화시설인 부채 및 목공예전시장, 한지체험관, 한방문화센터, 테마민박시설 등도 들어왔다. 종래의 유물전시형 박물관이나 향토민속촌에 비교하면 동적이면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체험거리가 풍부해졌다. 그러다보니 문화시설의 프로그램과 서비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새로운 문화시설들이 제공하는 전통생활 문화양식의 체험프로그램이나 전시 등 , 그 기능 과 역할의 기대치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위탁 4년차인 올해 수탁기관들은 이러한 시민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2004년 11월, 일본의 4대 전통문화도시인 가나자와시를 비롯하여 교토, 나라, 오사카 등 문화시설 탐방은 한옥마을의 문화시설과 비교해보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주시와 문화, 행정, 스포츠분야 등 많은 교류를 하고 있는 일본 가나자와의 문화시설 탐방이었다. 두 도시는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도시로서 문화콘텐츠와 인력인프라가 풍부해 미래를 향한 지향점을 서로 연구하고 배워야 할 점이 많을 뿐 아니라, 시민들의 자긍심이 대단하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은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의 관람은 시사점이 많았다. 보수적인 전통문화도시가 새롭게 용트림하는 기획이었다. 법고창신, 전통을 기본 컨셉으로 창조적 계승을 향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건축설계에서 시공까지 건축비용은 1300억원 규모인데, 1450억이 투입된 전주월드컵 경기장과 용도와 다양성에서 비교되었다. 한 달 동안 열리는 미술관의 개관전시전은 작품 구입비만 해도 150억원 이었다. 물량의 규모만이 아니라 꼼꼼한 부분까지 질적인 다양성이 부러웠다. 또한 미술관은 14개의 전시갤러리를 갖추고 있는데 소리·빛·영상체험의 예술적 감각이 집약 되어있었으며, 건축의 재료도 신소재와 투명한 유리를 사용하여 건물 밖에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경계를 구분하지 않았다. 자연 채광을 이용한 현대적 건축물이었다.
몇 백년 전의 과거와 몇 십년 전의 엊그제와 미래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인간의 창조성·예술성·실험성의 메시지를 충분히 느꼈다. 살아있는 공간, 느낌이 있는 공간, 시민이 참여하는 참여형 공간인 21세기 미술관은 상상력을 키우는 실험실 같았다. 전통공예에서 디지털 영상까지, 색조에서 음향까지 ‘오감체험’의 스릴이 있었다. 360˚ 전체를 느끼는 신기한 공간체험, 해저생활을 영상화한 수족관의 입체감, 그리고 실험성이 강한 색의 터치와 디자인, 식물의 생리와 생태조건을 이용한 회화적 구성, 기존 회화의 장르를 뛰어넘어 심리적 영역까지 확대하는 미술의 세계를 체험한 기회였다.
글로 인식하며 말로 듣던 오감체험현장, 물이 스폰지에 스며들 듯 빠져들어 갔다. 이러한 21세기 미술관이 시내 중심부에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토론과 성찰이 있었다. 가나자와시도 도시화과정에서 학교나 주택가 등 각종 근린 편익시설이 교외로 빠져나가면서 시내 중심부는 전주와 비슷한 공동화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고민 끝에 구도심 공간의 활성화와 문화시설 역할이라는 윈-윈 기능을 충족하기 위해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개관되었다. 거기에는 기존의 전통문화 중심에서 새로운 문화의 지향을 담아내는 미래 지향성 또한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미술관을 통해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고 시민들 스스로가 소통·교류·만남의 공간을 형성하게 만드는 일이다.
재정운영은 시에서 보조금을 받고 있으나,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해서 경영적 계획을 하고 있었다. 기업의 협찬, 작품의 교환전시, 상설전, 기획전, 순회전을 통한 다양한 프로그램개발을 기획하고 있었다. 미술관의 전략은 좋은 것들과 세계 첨단의 문화를 흡입하여 문화가 미래를 추동하는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는 문화상품과 산업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문화에 디자인, 과학기술 경영 기법을 도입하는 과감한 모험은 전주시가 배워야할 문화저력이었다.
오사카 역사박물관
1945년 2차대전 종전 무렵 오사카는 도시 전체가 전쟁의 폭격으로 옛 주거지뿐만 아니라 문화재 등이 잿더미로 변했다. 폐허의 악몽을 잊는 숲과 고층빌딩의 신도시가 되기까지 60년의 시간이 흘렀다. 바다로 흘러가는 강을 거슬러 도심 한복판에는 한국 관광객이 단골로 가는 오사카성의 천수각이 보인다. 다시 오사카성 부근에서 5분만 걸어서 가면 오사카 역사박물관이다. 밖에서 보면 현대식 빌딩에 불과하나 박물관 내부를 관람하면 역사전시물의 다양한 콘텐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83m 높이, 10층 건물인 박물관은 오사카 역사가 한 눈에,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연출되었다. 마치 백화점을 아이쇼핑하는 것처럼 그 시대의 유물과 문화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이해하면서 문화를 접근하는 갤러리 같았다. 멀고 무겁게 느껴지는 역사와 그 시대의 특징을 아주 편안하게 감상하고 이해하도록 했다.
박물관의 층별 전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층은 방문객의 안내와 정보를 알려주는 호텔 로비식 프론트 기능이 있고, 2층은 학습정보기능, 4층은 회의 연구 강의실 기능, 6층은 특별전시관, 7층은 상설전시관, 8층은 고대사, 9층은 중세에서 근세, 10층은 전망대를 비롯하여 근대에서 현대까지 시대별로 여러 도구들을 이용한 모형물, 그림, 사진이 폐허의 유물을 대신했다.
처절한 폐허의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대특징, 생활문화 등도 영화세트장처럼 설치되어 있었으며, 항시적으로 시민들을 향해 문화, 역사, 교양강좌가 심층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눈에 번쩍 띈 인물강좌는 안내포스터에 붙어있는 ‘연개소문과 대조영’에 대한 한국 고대인물 강좌였다. 백화점의 아이쇼핑을 반복하듯 1층에서 10층까지 2~3번을 관람하면서, 오사카의 숨은 역사를 쉽게 이해하도록 문화전반에 원스톱 서비스를 받는 묘한 감흥을 받았다. 문화시대에 정보교환과 소통, 문화콘텐츠 개발, 디지털화 된 문화서비스 등을 다양하게 제공해야하는 공공 문화시설의 향후 과제를 제시하고 있었다.
각 층의 입구에는 문화해설사들이 배치되어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을 비롯한 방문객들에게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모형 도구를 비롯하여 시뮬레이션, 퍼즐, 블록 같은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가이드와 해설을 쉽게 했다. 문화전달 매체의 연구개발도 눈여겨 볼 점이었다. 호기심과 기대감이 충족되다보니 그들의 스케일에 질려버린다. 가령 8층의 고대사 전시관은 고고학의 연구실 같았다. 유물 발굴현장의 생동감을 체험하도록 유물 발굴 순서별 단계와 측량기기, 현장 추리의 모니터링조사 서류 등을 배치해 두었고, 영상물을 통해 발굴현장을 다시 보여주면서 현장 추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역사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학습현장이었다. 전시관의 통로를 오르다보면 꼭대기 층의 전망대에서 오사카의 시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박물관에 전시 된 역사 공간을 떠올리며 현재의 삶까지 이어지는 규모의 거대성와 미래의 가상공간이 그려진다. 문화의 저력만큼 문화서비스는 확장되고 있었으며, 바로 그런 문화의 힘이 오사카의 크기와 장래를 보장하는 듯 했다. 일본문화에 대한 맹목적 기피증과 저항감속에 살아온 짧은 판단과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했다.
김남규 | 전북대학교 졸업를 졸업하고, 전주시 공공시설등의 명칭제정위원회 위원과 전주시 공직자 윤리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전주시의회 의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5.18민중항쟁 전북동지회 운영위원, 새천년민주당 덕진지구당 정책실차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