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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 | [특집]
역사문화도시로 거듭나기
박임관 신라문화동인회 교육위원장(2005-01-07 18:11:25)
흔히들 부산은 우리나라의 제2의 도시라고도 하고, 국제항구도시라고도 한다. 더불어 을유년 새해가 열린 벽두에, 경주를 찾는 이들을 반기는 것은 황량한 겨울색을 하고 있는 들판사이로 듬성듬성 고개를 내미는 고분(古墳)의 곡선과 한옥 골기와의 정겨움이다. 이 경주다운 정경에 거리마다 가로로 내 걸린 ‘태권도공원 경주유치’를 외치는 현수막은 바람에 나부끼어 그 주장이 더욱 애절하게 다가온다. 이것이 오늘의 경주가 안고 있는 영원한 숙제와 가장 절박한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인 경주요, 한국인의 마음의 원향(原鄕)인 경주의 역사성을 제대로 보존 하면서 시민들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자는 것이 곧 ‘경주역사문화중심도시’ 추진의 발원이자 지향하는 목적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이처럼 어느 누구나 다 인정하고 알고 있으면서 또 추구해야 하는 유치한 이름의 엄청난 프로젝트를 갑작스럽게 내 건 사연은 무엇일까? “신라고도(新羅古都)는 웅대(雄大), 찬란(燦爛), 정교(精巧), 활달(豁達), 진취(進取), 여유(餘裕), 우아(優雅), 유현(幽玄)의 감(感)이 살아날 수 있도록 재개발 할 것(1971.7.16)” 지금부터 30여년 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로 남긴 지시사항이자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책자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문구이다. 당시의 계획은 대통령의 명운과 함께 절반의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의 정비와 불국사 복원 정비, 황룡사지 발굴, 보문관광단지 개발, 도로망 확충 등의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긴 시간은 신라 천년의 역사를 담은 문화유산의 멍에를 오로지 경주사람의 의무요 책임으로 지우고야 말았던 것이다. 문화재 지정이나 국립공원지정,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과 같은 자랑거리가 도리어 경주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생활을 뒷걸음질치게 만드는 근간으로 인식되면서 보존과 개발의 대립은 경주의 내홍을 넘어 심각한 나라 안의 이슈로 시달린바 있다. 경주경마장 문제를 비롯하여 고속철도 경주노선 문제에 결사의 배수진을 친 것도 다 경주가 먹고 살려는 꺼리를 만들자는 궁여지책이었다. 내가 가진 땅에 집을 지을 수도 밭을 제대로 일굴 수도 없는 심정, 비가 새는 지붕을 고치거나 담장 하나에도 손을 못 대는 심정, 재래식 화장실을 개조하거나 장작을 때는 아궁이를 손볼 수 없는 처지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경주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경주사람은 이것을 숙명이라 여기고 묵묵히 감내하여 왔다. 사실은 관련 법제도에 따른 대응방법이 없었기에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다는 것이 표현이 바르리라. 붙박이 문화유산이 자랑거리 이전에 삶을 옥죄는 애물단지라는 생각이 시민들 생각의 밑바탕을 지배하면서 보존논리는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드러내어 놓지 못하는 일이 되었으니 경주가 참 서글퍼진 것이다. 그러나 경주는 경주답게 세계인류가 지켜나가야 하는 역사도시 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토의 지역적 특성에 맞는 몇 가지 큰 국책사업을 구상하였다.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기고 광주를 문화예술중심도시로 만들며, 부산을 영상문화중심도시로 만들자는 것이 대통령 공약이었다. 여기에 경주시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경주를 역사문화중심도시로 만들자는 계획이 추가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먼저 광주는 지난 2003년에 본격적으로 TF가 구성되어 계획서가 완성되고 지난해부터 25년여의 장단기계획아래 우리나라가 자랑할 문화예술의 도시로 나아가는 첫발을 내 디뎠다. 경주는 문화관광부의 주도아래 지난해 초기에 문화유산분야, 관광분야, 도시계획분야, 공공미술분야, 도시경영분야 등 5개 분야별로 TF위원회가 구성되어 40여명의 위원이 여러 가지 의견과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전체 회의와 분야별 회의를 거듭하고 서울과 경주를 오가면서 이상과 현실의 벽을 좁히는데 모든 초점을 모았다. 경주시에서도 아예 5월부터 역사문화도시조성추진단이라는 부서를 만들고 8명의 직원이 이 프로젝트 지원에 매달렸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연구용역을 맡아 TF를 운영하고 연구진을 가동하여 경주역사중심도시의 윤곽은 7월의 경주시 중간보고회, 9월의 시민공청회를 거쳐 드디어 10월에 ‘경주 역사문화도시 조성계획’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간행하였다. 이처럼 경주를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간직되고 경주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이를 터전으로 풍요로운 삶을 안겨주자는 가장 기본적인 꿈을 만들어 가는 틀을 완성한데는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의 간절하리만치 애절한 사랑과 경주시의 몰입에 가까운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2034년 말까지 30년 동안 진행되는 이 계획은 1단계로 2009년까지 추진기반을 조성하고 계획착수에 들어가 2단계인 2014년까지 도시의 생동성 확보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3단계인 2024년까지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한 다음 마지막 단계인 목표연도까지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3대 목표 가운데 먼저 ‘2천년 역사를 체감하는 역사도시 만들기’를 위하여서는 역사·문화적 환경의 정비와 보전을 꾀하고 문화유산의 정비와 복원을 병행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안을 담고 있다. 둘째, ‘활기와 생동감 넘치는 문화도시 만들기’란 목표에서는 문화기반시설을 정비하고 확충하여 시민주도형 문화활동의 진작을 도모하며, 지역축제와 문화예술을 활성화하고 도심의 생동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거리 특화를 꾀함과 아울러 전통과 정신문화의 계승 및 활용을 과제로 삼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잘사는 도시 만들기’라는 목표에서는 관광 정보와 해설의 체계를 개선하고 외래 관광객의 전략적 유치와 관광단지 정비 및 해양관광단지 개발, 그리고 문화산업 클러스터(cluster) 조성과 농어촌의 1.5차 산업 육성을 과제로 담고 있다. 옛 속담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는 말이 있듯이 경주는 이제 막 구슬을 가지런히 하여 꿸 방법을 찾은데 불과하다. 2035년에 펼쳐질 원대한 경주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약 3조3천억 원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계획이 사상누각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로부터의 재원지원과 지방정부의 의지가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앞으로 정부가 경주와 광주, 그리고 부산과 공주·연기 등 네 묶음의 무거운 짐을 어떻게 한꺼번에 짊어지고 갈 것인가에 대한 회의론이 벌써부터 고개를 드는 것도 재원마련의 불확실성에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 이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을 근원으로 삼는 민주국가의 실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꺼번에 성과를 바라기보다 차근차근 내실 있는 이행을 기대해 본다. 이제 연초가 되면 경주에서는 ‘경주 역사문화도시 조성계획’ 발표회가 열린다. 시민들은 벌써부터 그 기대에 설렌 가슴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듯이 가장 경주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 무게 중심에 있는 경주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경주만의 숙제가 아닌 겨레의 과제를 풀어가는 지혜를 모을 때 역사문화의 중심도시는 저절로 만들어 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부푼 감정을 삭인다. 박임관 | 1963년 경주에서 태어나 동국대 영문학과, 동 대학원 경영학과, 경주대 대학원 문화재학과를 나왔다. 현재는 신라케이블방송 관리부장으로 있으면서 신라문화동인회 교육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주 역사문화중심도시 TF에는 문화유산분야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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