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 | [특집]
전주의 선택, 전통문화중심도시로 가는길
이현웅 전주시 문화경제국장(2005-01-07 17:54:31)
지난 2004년 11월 초 문화관광부와 전주시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전통문화중심도시 TFT가 구성되면서,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의 실현이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2005년 예산에 1억원의 용역비를 세웠고, 전주시 역시 1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전통문화중심도시 기본계획을 완성할 계획이다. 사실상 전통문화중심도시로서 전주의 역할이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번 호 <특집> ‘전주의 선택, 전통문화중심도시로 가는 길’은 전주가 선택하고 추진해오고 있는 ‘전통문화중심도시’가 어디까지 진전되었는지 알아보았다. ‘문화중심도시’를 선포하며, 각 도시의 특성에 맞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 광주·부산·경주의 상황도 함께 알아보았다. 광주의 김경주 민예총 회장과 부산의 김상화 부산독립영화협회 대표, 경주의 박임관 신라문화동인회 교육위원장이 문화중심도시를 추진하게 된 배경과 진행상황, 문제점 등을 설명해준다.
지난 2004년 11월, 일본의 4대 전통문화도시를 탐방하고 돌아온 전주시정발전연구소 원도연 연구원과 김남규 시의원은 일본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전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전통문화중심도시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다
2004년 8월 30일, 그날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전주한옥마을에 쏟아지는 시선이 뜨거웠던 날이었다.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이 한옥마을을 직접 둘러보며 전주문화의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긴장한 건 한옥마을안에서 문화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 전통문화센터와 한옥생활체험관, 공예품 전시관, 술박물관 등 공공문화시설은 물론이고 예술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작업공방부터 향교며 경기전, 오목대 등 문화유적관계자들까지 전주를 방문하는 문화관광부 장관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전주는 풍요로운 호남들녘을 기둥삼아 넉넉한 살림이 가능했던 덕에 문화예술적인 성취도가 높았고, 그러한 예술의 흥취에 젖어서 이곳으로 모여드는 문화예술인 또한 많았다. 하지만, 전주사람들은 문화예술을 즐기며 누리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그것을 내보이고 멋지게 포장하여 산업화하는 일에는 아직 낯설다.
정동채 장관은 일상생활공간인 주거지역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전통문화시설을 둘러보며 전통문화의 도시 전주의 저력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 결과 전주시는 문화도시조성법이 완성되면 관련 규정에 따라 전주를 전통문화중심도시로 지정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전주문화에 대한 자부심의 출발선
전주 전통문화중심도시사업은 오랜 역사 속에서 키워온 전통에 대한 자부심에서 출발했다. 전주사람들의 전통예술에 대한 선호도는 전국평균보다 월등히 높다. (전주시에서 가장 발전한 예술분야 - 전통예술 86.7%, 전국 평균 39.4%, 현대 리서치,2001) 일상 속에서 전통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려는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그러한 문화적인 저력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인 계기는 한옥마을 조성사업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주 한옥마을은 전주 교동과 풍남동을 아우르는 한옥밀집지역을 일컫는 곳이다. 이곳에 한옥이 밀집되기 시작한건 어림잡아 1900년대부터였고 도심속 기와집 풍경들이 인상적이라는 여론에 따라 미관지구로 지정, 함부로 고치거나 양옥집으로 신개축하는 하는 행위는 금하게 되었다. 그렇게 보존위주의 정책은 급변하는 주거공간의 편리함과는 동떨어진 것이었고, 부의상징으로 거론되던 이곳 일대는 6,70년대를 넘기면서 차츰 슬럼화 된 주거지역으로 쇠락하기에 이른다.
민선 2기에 접어들면서 한옥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개발욕구는 드높았고, 전주시 역시 언제까지 사유재산을 침해하면서 미관지구지정을 고집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때 전주시는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데 도심속 전통한옥의 풍경을 지키되 지역주민 스스로 참여하여 개선해 나갈 수 있는 활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포기할 수 없는 전통문화의 유산을 슬기롭게 이어나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 것으로 전주시 정책 중의 역작으로 평가될 만 하다.
전주한옥마을-지역혁신 성공사례로 선정
우선 전주시는 한옥보전지원조례를 제정했다.
전주시 한옥보전 지원조례의 큰 틀은 전통한옥지구와 향교지구에서 전통도시한옥으로 대수선하거나 전통도시한옥을 신축·증축·개축하는 경우 공사비의 3분의 2범위 안에서 최고 5천만 원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었다. 거기에 만약 단순 주거공간이 아닌 문화시설로 운영될 경우 최대 2천만 원까지 추가지원을 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한편으로는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한옥마을 곳곳에 공공의 전통문화시설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주거공간속으로 문화시설을 배치하면서 한옥마을에 유입되는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게 되었다. 특히 새로이 급격하게 증가한 문화시설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민간위탁을 도입한 것은 매우 특이할만하다. 전주시는 문화시설을 민간들이 운영하면서 문화정책의 기본 틀거리를 시민 스스로 만들어가는 풍토가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내부적인 혁신의 성과 덕에 사업을 시작한지 3년 만에 전주 한옥마을은 슬럼화된 주택지역에서 전통문화가 생산되고 유통되며 소비되는 공간으로 거듭난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지역혁신 성공사례로 한옥마을 사업을 선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마침내 2004년 1월 29일 대통령과 함께한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문화관광자원을 활용한 문화관광산업육성전략으로 한옥마을 성공사례가 소개되기에 이른다.
전통문화, 새로운 가능성에 눈 뜨다.
그동안 우리 뇌리에 있던 전통문화란 고루하고 낡아서 요즈음의 일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 무엇정도로 치부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전주시는 한옥마을을 통해 전통이란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를 통해 몸으로 익힌 생활양식이며 이를 바탕으로 현대적 삶을 구현하는 도시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전통문화중심도시는 막연한 이상이 아니라 경험으로 익힌 참으로 값진 결실을 통해 구축한 구체적인 비전이었다.
지역혁신 성공사례 선정을 계기로 전주시는 발 빠르게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 지정을 위한 노력에 돌입한다. 전주시 지역혁신 협의회를 창립하고 전통문화중심도시화 추진을 대내외적으로 선언했으며 전국의 문화전문가들이 모이는 참여정부 문화정책관련 토론회와 일본 가나자와시의 사례를 분석하는 세미나를 전주에서 개최하면서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로서의 포부를 전국에 알리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7월 28일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을 발족했다. 추진단은 전국의 문화관련 전문가들을 초청해 전주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한 전주 전통문화자원의 가치에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문화관광부의 정책적인 배려도 중요하지만 문화인들의 자발적인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나름의 철학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2004년 가을 추진단은 매주 이어지는 각계 전문그룹들의 팸투어를 쉼 없이 치러냈다. 그것은 한옥마을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컨설팅의 자리이기도 했다.
그와 함께 천년전주 사랑모임이 발족된다. 그것은 천년 전주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의 천년을 준비하는 야심한 기획이었으며 개인개인이 전주 문화를, 천년의 역사를, 우리의 전통문화를 아끼고 계승하자는 정신의 발현이기도 했다. 아마 전통문화를 민간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고민하며 그 기금을 모금하는 사례는 천년전주사랑모임이 처음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전통문화중심도시 T/F/T 발족
2004년 11월초 문화관광부와 전주시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전통문화중심도시 T/F/T 가 구성된다. 한번은 서울에서, 한번은 전주에서 열리면서 전통문화중심도시의 비전을 토론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사실상 전통문화중심도시로서의 역할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화관광부는 2005년 예산에 1억원의 용역비를 세웠고, 전주시 역시 1억원을 확보해 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 주축이 되어 전통문화중심도시 기본계획을 완성할 계획이다.
이성계가 황산벌 전투의 대승을 축하하기 위해 자신의 본향인 이곳 전주를 찾아 조선왕조 창업의 포부를 밝혔다는 곳이 오목대다. 오목대에 오르면 900여 채의 한옥이 부드러운 기와선을 맞대고 있다. 전주시는 이곳을 중심으로 이제 도시전체의 발전원동력으로서 전통문화의 현대적 계승에 몰두하고 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단절된 전통문화를 이처럼 혼신을 다해 연구하고 계승하며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노력이 일찍이 있었던가. 훗날 역사가들은 지방 소도시의 신념에 전통문화중심도시 정책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얼마나 활발하게 일으켰는지를 연구하게 될 것이다.
우리 전통문화의 저력이 지금 전주에서 전통문화중심도시사업으로 발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