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 | [문화저널]
<테마기획. 점 > 순리대로 살라
문화저널(2005-01-07 17:53:11)
문화와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점, 무당과 같은 무속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한국 역술인의 모임인 ‘한국역술인협회’에 따르면 현재 이 조직에 속한 정규 회원만 해도 10~15만 여명에 또 하나의 무속인 조직인 ‘대한승공경신연합회’에 속한 무속인들이 20~25만 여명. 두 조직의 회원수만 합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의 역술인들 수는 최소 30~40여만 명에 달한다는 셈이 나온다.
게다가 통신매체가 발달하고 생활패턴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점을 보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사주카페가 밀집한 지역은 젊은이들 사이에 명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고, 700이나 060 등의 번호로 시작하는 ARS전화 운세서비스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운세’라는 단어로 검색되는 사이트는 약 200~300여 개. 인터넷상에서도 역술은 게임과 더불어 가장 잘 팔리는 문화 콘텐츠의 하나로 대접받고 있다. 사이버 상에서 역술이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동통신업체들도 이에 뒤질세라 온라인과 오프라인 역술업체와 제휴해, 부적을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유료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과거의 미신으로 치부되던 점술업이 디지털과 결합하면서 또 하나의 문화산업이자 여가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역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도 장난스러움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수많은 젊은이들이 인터넷 운세 게시판을 통해 꿈 해몽을 요청하거나 고민거리를 토로하며 상담 요청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의 태도에서는 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무엇이든지 안정의 수단이 될 만한 것이 있다면 붙잡으려는 절박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역술인들이 제공하는 예언이나 처방의 신통력을 믿고 있고, 실제로 이를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설명은 역술을 그냥 미신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뭔가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기게도 한다.
겨울바람이 매섭던 지난 12월 22일 전주 완산동 전주천 옆에 위치한 ‘칠성선녀’집을 찾아보았다. ‘칠성선녀’집이 있는 곳은 금암동 모래네시장 근방처럼, 완산동에서도 점집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작명’, ‘사주’, ‘역술’ 등을 본다는 간판이 이곳저곳에 걸려 있다.
점집을 찾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긴 대나무에 붉은 천과 흰 천을 매달은 깃발. 무당들이 ‘천황기’ 또는 ‘서낭기’라고 부르는 이 깃발의 하얀색(하늘)은 점을 볼 수 있다는 뜻이고, 빨간색(땅)은 굿을 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무당집이 하늘과 땅에 제사(굿)를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향냄새가 진동하고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탱화 앞에 양초들이 켜져있다. 탱화가 그려져 있는 벽을 마주보고 있는 앉은뱅이 책상에 칠성선녀(43)가 앉아있다. 그는 ‘33살 때부터 무병을 앓다가 지난 2002년에 내림굿을 받아’ 칠성선녀라는 점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은 어떤 결정을 짓지 못하거나 앞일이 막막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곤 해요. 팍팍하고 답답한 사람들이 혼자 결정짓기 힘든 상황에서 주로 찾아온다는 얘기죠. 특히, 부부간이나 아주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못할 얘깃거리를 안고 오는 사람들도 많아요.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상담원 역할을 해주는 것이죠. 아무래도 우리가 미래를 좀더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동안 답답했던 얘기도 들어주고, 그때그때 나오는 점괘를 풀어주면서 얘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속이 좀 시원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는 점집을 ‘인생상담소’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모든 일을 다 알아서 척척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다리’역할 정도는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점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이나 고민거리들도 사회의 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설명이다.
“전엔 여성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요즘은 오히려 남성분들이 더 많이 찾아와요. 특히, 40대 남성분들이 진로문제나 사업 성공여부를 많이 묻습니다. 경기가 워낙이 나빠서 그런가봐요. 그래서인지 가정파탄 등 가정문제를 상담하는 비율도 전보다 더 높아졌구요.” 요즘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파생된 문제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는 무속인들이라고 피해갈 수는 없었다.
“IMF가 막 터졌을 때 점집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때는 점집에 사람들이 미어터질 정도로 많이 몰려들었다고 해요. 세상이 너무 어수선하고 힘이 드니까, 불안한 마음에서 점집을 많이 찾았던 것이겠죠. 하지만, 요즘엔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손님이 없어요. 복채 3만원을 쓰기 힘들 정도로 경기가 너무 어려워져서 그런가봐요. 아예 ‘굿’을 한다는 것은 요즘엔 거의 생각도 못할 일이죠. 손님들 찾아오는 것이야 그날그날 차이가 심하지만, 어떤 날은 한명도 찾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여기에는 하루가 다르게 수많은 점집들이 생겨나고, 점을 보는 행위가 디지털과 결합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변모해가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분들은 점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렇게 산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점괘로 나온 결과들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예를 들면,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궁합이 맞지 않는다면 나중에 분명 문제가 생기더라구요.”
하지만, 그 조차도 결국 세상살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순리대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가 모시고 있는 신장님들도 항상 하시는 말씀이 ‘순리대로’ 살라는 것이에요. 순리대로만 산다면 조상신들도 돌봐주시고 모든 일은 결국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수백 번 ‘굿’을 한다고 해도, 안될 일이 잘되진 않아요.”
연말연시를 맞아 이제 점집들은 또 한번 신년운세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문턱이 닳고 닳을 것이다. 대책 없는 경기 침체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그들은 점을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새해에 대운이 올 점괘를 받던 삼재가 겹칠 점괘를 받건 간에 모든 점괘는 이 한마디로 집약되는 지도 모른다.
‘순리대로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