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 | [문화저널]
<테마기획. 점 > '점'이라는 '지푸라기'
김수봉 한국니트산업연구원 근무(2005-01-07 17:50:31)
한겨울인데도 눈이 아닌 비가 내리는 수요일 저녁, 내 마음도 비 내리는 하늘처럼 낮고 어두웠다. 이제 사회에 발을 디딘지 일년여가 넘는 시점에서 직업의 장래성, 인간관계, 진학, 결혼등과 같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문제들로 인해 마음에 큰 짐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평소 친한 직장 동료의 부인이 사주나 점을 보는 것을 좋아해 그 친구로부터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가 답답한 마음에 직접 ‘점(占)’을 보기 위해, 용하다는 점쟁이가 있다는 완산동을 찾아갔다.
어린시절부터 귀신이나 신령과 같은 영적인 존재를 완전히 부정해왔었던 건 아니지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함에 있어 미지의 것에 의존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해서 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얼마 안 되는 인생에 큰 고민이 없어서 인지, 특별히 사주나 점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또한 주위에서 사주나 점을 보고 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특별히 잘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뿐더러, 어떤 경우에는 그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사건을 예언하는 경우도 봐왔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라고, 막상 내 앞날이 답답하니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용하다고 소문난 점집을 찾아갔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하루일과를 마치고 산에 기도하러 가는 점쟁이에게 전화로 억지를 부려 점을 보게 됐다. 사실 별 기대 없이 찾아갔는데 나의 직업, 인간관계, 가족사 등을 맞추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랜 마음으로 점을 보게 됐다. 어찌 생각해보면 명확하게 맞춘 것은 아니지만, 남들은 쉽게 짐작할 수 없는 가족사를 말할 때에는 진짜 신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대화가 오고가다 내가 가장 갑갑해 하던 인생의 진로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대답은 간단했다. 마음속에 이미 정해진 길이 있는데 혼자 괴로워하고 있다면서 그 길이 괜찮으니까 마음먹은 곳으로 가라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어느 누구나 내 고민을 듣는다면 쉽게 해줄 수 있는 얘기고, 한편으로 내가 가장 듣고 싶어 했던 말이었었다. 물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만약 내 인생이 잘못됐을 경우 도의적인 책임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내게 쉽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닐지 모른다. 아무튼 그 말 한마디로 묘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끼면서 사람이 참 나약한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조상들이 공을 닦아 놓아 내 인생에 도움이 많이 되리란 말도 듣고, 결혼 초기에 고생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좋을 것이라 하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점집을 나서면서 점쟁이가 했던 이런저런 말들을 생각해 봤다. 사람의 인생에 정해진 길은 없고 노력 여하에 따라 인생이 바뀌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지만, 나약한 나의 마음에 다소나마 위안을 얻어 편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김수봉 |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졸업했다. 현재는 (재)한국니트산업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