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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 | [문화저널]
<테마기획. 점 > 이놈은 왼손을 쓰겠구먼
이승룡 전주시 정보산업팀장(2005-01-07 17:49:00)
몇 년 전 이야기다. 그때 나는 공학을 전공하고, 소위 잘 나간다는 IT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점집 같은 곳을 기웃거려본 적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웃지 못 할 일이 있었다. 둘째 아들놈이 막 태어나서 이름을 무엇으로 하느냐로 고민하던 때이니 5년은 족이 넘은 이야기인 듯하다. 항렬자에 따라서 이름을 짓지 않아 집안 모임이나 어른들을 뵈었을 때 어색함과 불편함을 아들에게 주기 싫어 항렬자에 따라 이름을 지워 주고 싶었는데, 자식 대(代) 항렬자가 구(求)자이고 보니 얼른 떠오르는 이름이 '영구' '맹구' 이런 이름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부모님 손에 이끌려 작명소라는 데를 갔다. 생년월일시를 적어주고, 연륜이 묻어나는 작명소의 도사 같으신 분이 책자를 이리저리 들춰보더니만 붓을 들었다. 이중에 몇 개 고르라고 이름을 서너 개 적어주고, 항렬자에 따른 이름이 있어야 족보에 올린다면서 족보용 이름도 하나 적어주시면서, 말을 이어갔다. “사주가 아주 좋아! 나중에 큰 인물이 되겠어!” 하면서 함께 간 아버지께 뿌듯한 한마디를 던지면서, 말을 덧붙인다. “이놈은 왼손을 쓰겠구먼, 그리고 서너 살 때쯤에 얼굴에 상처가 남겠어.” 허허 이게 왠 말인고. 집안에 왼손을 쓰는 사람이 없는데. 하여간 적어준 이름 중에 하나를 골라 출생신고를 하고, 알아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둘째 놈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 이놈이 왼손잡이인지 알아보려고 놀이개며 먹을 것을 가지고 시험에 들었다. 그 결과 작명소의 도사 같은 분이 잘못 집었다고 결론 내릴 즈음, 작은놈이 많이 아팠다. 보름을 넘게 입원해 있으면서 갑자기 오른손 마비 증세가 온 것이다. 가족은 물론 병원에서도 심각한 문제라고 난리가 나고 온갖 검사와 약물투여가 며칠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병세가 호전되어갈 즈음 이놈이 왼손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오른손 사용이 불편해서 부득이하게 왼손을 쓰기 시작한 것이리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 까지도 이놈은 왼손으로 모든 생활의 불편함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었다. 허참,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왼손을 잘 쓰는 사람이 머리가 좋다는 이야기들을 들은 적은 있었는데,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왼손잡이로 살아가기에는 불편한 세상이지 않던가.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옆 사람에 걸리적거리고, 세상의 많은 가전제품이 왼손잡이를 고려해서 만들었던가? 군대에서왼손잡이를 위한 소총이 있던가? 그때부터는 먹는 것부터 오른손 쓰는 것을 가르치게 되었고, 양손을 다 잘 쓰게 되었다. 하지만 순간순간 왼손이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서 문득 작명소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둘째 놈이 4살이 되었을 때에 놀이방에서 놀다가 넘어져 턱 밑에 6바늘을 꿰매었다. 그 상처가 가끔 내 아픈 마음을 찌르고 있다. 명절이나 가족들이 모여 앉을 때면 둘째 놈 이야기가 가끔 나와서 웃고는 한다. 언젠가는 작명소 도사 같은 양반을 찾아가 당신 말대로 아들놈이 왼손을 쓰고 얼굴에 상처가 남았는데, 이놈의 장래가 당신이 말한 대로 크게 성공할 것인지 되물어 봐야겠다. 어쩌면 보증서라도 하나 받아놓을 모양이다. 부모마음은 다 같은 모양이다. 이승룡 | 광운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전북대영상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전주시 정보산업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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