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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 | [문화저널]
<테마기획. 점 > 세상은 순리대로 사는 것
홍태한 경희대 민속학연구소 연구원(2005-01-07 17:45:37)
서울의 미아리 고개에는 많은 점집들이 성업 중이다. 그리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사주카페가 등장하여 젊은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 쌍의 연인이 진지한 자세로 점복자가 풀어주는 사주를 듣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 낯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우리 민족과 점복이 오랜 세월 함께 흘러왔기 때문에 낯설지 않은 것이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단골 무당이 있어 마을 사람들의 상담자 역할을 해왔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단골을 찾아가 하소연하고 문제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무당은 그냥 말없이 사람들의 넋두리를 들어만 주고 맞장구만 쳐주어도 사람들의 얼굴은 밝아졌다. 여기에서 우리는 점복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기능인 넋두리와 한풀이의 기능을 본다. “굿하고 싶어도 춤추는 며느리 보기 싫어 굿 안한다.”라는 말은 굿이 여인네들의 쌓인 한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굿이 춤이라는 동작을 통해 한을 풀어주었다면 점은 말하고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쌓인 한을 풀어주었던 것이다. 지금과 달리 80년대까지 점복집의 주 고객층이 여성 중심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남편과의 불화, 자식 교육의 어려움, 가정 내의 갈등 등 남에게 말하기 쉽지 않은 내용을 처음 보는 낯선 이-그는 보통 사람이 가지지 않은 예지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에게 털어놓기만 해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그래서 점복자는 정신치료사와 상담사의 역할을 함께 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점집을 찾는 고객에 남성, 특히 한 가족의 경제를 짊어진 40대 이상의 가장들이 많아진다. 그들은 사회에서 치이고, 경쟁에서 힘들어하면서도 가족에게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어도 풀리지 않는 가슴의 응어리를 넋두리조로 이야기하면서 풀었던 것이다. 여기에 미래에 대한 희망과 확신을 얻는 것은 덤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에 확신과 희망을 불어넣어 줄 무언가를 찾는다. 그것이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라면 더더욱 좋을 것이고, 이미 미래가 잘 풀리게 결정되어 있다는 말은 자신감까지 불어넣어 줄 것이다. 용한 점복자라면 미래를 잘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온 의뢰자에게 희망과 확신을 불어넣어 주는 능력을 우선적으로 가져야 한다. 그래서 점복자들은 부적과 예방책이라는 비법을 활용한다. 지금 볼 때 운이 안 따라 미래의 일이 안 풀릴 수 있으니 그를 막아내고 좋은 쪽으로 돌리기 위하여 부적을 그리고 예방을 한다면 점집을 찾아간 사람은 자신의 결정에 확고한 신념을 얹을 수 있다. 다만 여기에 따르는 과다한 비용은 문제가 된다. 올바른 점복자와 그렇지 않은 점복자를 가려내는 기준에 돈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잣대가 된다. 훌륭한 점복자는 그래서 돈이라는 유혹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마음이 움직이면 사물도 따라 움직인다. 점집을 다녀온 사람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쪽으로 모든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집합시킨다면 결과는 좋아진다. 숨겨진 능력을 배기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또한 점이다. 궁합을 예로 들어본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살아가는 것이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이때 궁합을 보아 두 사람이 천생배필이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은 한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또 궁합이 조금 안 좋지만 이러저러하게 마음을 쓰면서 살면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다는 말은 살아가면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좀 더 가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궁합이 나쁘다는 것을 두 사람의 인연이 맞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점에게 사람이 지는 것이다. 궁합이 나쁘므로 조심하며 살아라는 경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슬기롭게 점을 극복한 것이다. 점은 믿는 만큼 믿는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다.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 해석하여 따르고 부족한 것은 늘 경계하며 살면 되는 일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점복이 가진 또 하나의 기능, 오락의 기능을 본다. 즐기기 위해 점을 치는 것이지, 거기에 마음 얽매여 웅크리고 살라고 점을 보는 것은 아니다. 정월이 되면 많은 지역에서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줄다리기를 비롯한 여러 민속행사가 열린다. 사람들은 그러한 민속행사를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고, 그것을 하나의 놀이로 바꾸어 즐겼다. 놀이의 결과에 아무도 연연하지 않는다. 정초에 가족이 둘러 앉아 토정비결을 본다. 그것은 하나의 놀이고 살아가면서 가질 기본적인 자세를 알려주는 것이지 모든 것을 거기에 붙들어 매라는 것은 아니다. 신라말의 도선국사에 대한 짧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길을 가던 도선은 초상을 당한 가족을 위하여 천하 길지를 잡아주었단다. 삼년 내 발복할 터를 잡아준 도선은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며 다시 그곳을 찾았는데 결과는 전혀 달랐단다. 그 자리에 묘를 쓴 가족은 모두 패가망신하고 겨우 유리걸식하고 있더란다. 도선이 자신의 눈이 모자람을 탄식하고 묘를 잡는 데 필요한 패철을 부셔버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나타난 산신이 하는 말씀. 이 자리는 분명 명당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묻힌 사람이 살아서 악행을 많이 했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하고 그 화가 후손에 미친 것이라고. 그런 것이다. 자신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고 있는지는 따지지 않고 모조리 요행수에 의지하는 것은 점복의 기능을 잘 못 이해한 것이다. 점복은 우리에게 말한다. 선하게 살고 남에게 베풀며 살면 미래는 분명 밝아지고 열린다.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결과도 따라오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점복이 왜 지금도 살아있는지를 알 수 있다. 점복은 열심히 성실하게 산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를 확인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점복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만능의 열쇠였다면 지금 점복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대박을 터트렸을 것이나 사정은 그렇지 않다. 결국 점복은 우리에게 세상은 순리대로 사는 것임을 알려준다. 만약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순리를 말하는 것이지 고정된 우리의 운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순리대로 살다보면 운명도 순리에 맞게 바뀌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복을 받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업 중인 점복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꿈을 이루려면 노력하라. 그리고 미래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가져라. 가슴에 쓸 데 없는 것 담지 말고 밖으로 쏟아내면서 열심히 살아라. 그래도 불안하면 점을 재미로 치고 자신의 운명이 긍정적이고 밝은 쪽으로 흘러갈 것임을 예상하라.” 지금 우리는 점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해서 가슴에 답답함이 쌓일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점은 사회 흐름의 반영이고, 점집이 성업 중인 것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다. 홍태한 |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여대, 서경대, 경희대 등에 민속학 강의를 나가고 있으며, 경희대 민속학연구소 연구원과 한국무속학회 학술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사무가 바리공주연구』, 『서사무가 당금애기연구』, 『한국의 점복』, 『한국의 굿』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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