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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 | [문화저널]
<저널이 본다>왕궁 터, 그 비밀의 역사
김은정 편집주간(2005-01-07 17:27:04)
새해 아침 잘 맞으셨는지요. ‘2004’ 를 보내고 새로 만난 ‘2005’는 아직 낯섭니다. 이제 곧 익숙해지겠지요.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이 낯설고 익숙한 것의 교행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싶습니다. 새해 아침, 문화저널 독자들께 어떤 글을 올릴까 고민이 컸습니다. 그러다 문득 지난 연말 다녀온 익산 금마면 왕궁 터가 떠올랐습니다. 혹시 그 터를 가 본적 있으십니까. 허허벌판에 키 크지 않은 몇 그루 소나무 숲과 살짝 가려져 있는 오층석탑을 안고 있는 이 터의 존재. 왕궁 터는 백제의 천도설이 분분한 공간이지만 기록으로 남아있는 역사의 발자취는 희미합니다. 유물이나 유적까지도 제대로 확인되지 못한다면 왕궁의 역사는 더 이상 역사가 될 수 없는 처지지요. 사실 기록과 유적으로 존재하는 역사는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기록과 유물이 없는 역사는 야사로 묻히거나 설화로 남게 됩니다. 상상력은 실체로 이르는 매우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지만 역사적 진실에 상상력을 잇대는 것은 사실 무례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상력이나 추론이 때로 진실을 밝혀내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한낱 추론으로만 가능하거나 미미한 기록의 흔적이 실체로 드러나는 국면은 가슴뛰는 일일 터입니다. 익산 왕궁 터가 지금, 가슴 설레게 하는 감동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오층석탑의 비밀을 간직한 왕궁 터가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난해 연말 부여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왕궁 터의 흔적은 경이롭습니다. 남북으로 4백 92미터, 동서로 2백34미터의 석축성벽이 드러난 자리에는 대규모의 왕궁성 및 사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적과 유물이 뒤를 이어 발굴되고 있습니다. 성벽과 관련된 문지의 흔적이며 명문이 새겨진 기와와 도가니 등 3천여 점에 이르는 중요 유물은 역사의 실체를 더욱 새롭게 드러냅니다. 고대 궁성 관련 시설의 대지 조성과 축조, 공간 구획에 대한 새로운 자료가 확보되고 궁성의 계획적인 설계에 의한 축조양상도 확인됐습니다. 궁성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방지에서는 아름답고 정교함으로 마음을 뺏는 정교한 금세공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뒷간이 있었던 자리에서 나온 대나무 조각의 쓰임새도 흥미롭습니다. ‘王宮寺’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명문기와와 중국청자편, 철제 솥과 같은 유물은 도저히 묻어둘 수 없는 역사의 흔적을 전합니다. 궁성 관련시설의 대지조성과 공간 구획을 뚜렷이 보여주는 유적의 발견은 중요한 성과입니다. 궁성의 계획적인 설계에 의한 축조양상이 확인되면서 학계에서는 지금까지의 백제시대 왕궁의 어느 것 보다도 완전한 형태의 궁성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왕궁 터의 존재가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입니다. 익산 왕궁리는 백제인들에게 어떤 땅이었을까요. 백제중흥의 꿈을 실현하려했던 천도의 땅은 아니었을까요. 어두운 흙과 잡풀이 뒤덮여 있던 이 터는 지금 막 덮어놓은 듯 잘 다져진 황토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정방형으로 잘 정리되어 나뉘어있는 역사의 땅은 이제 더 이상 서러운 비밀의 땅이 아닙니다. 이 터에 서면 ‘시간’의 존재가 더 새로워집니다. 새해, 시간 내시어 왕궁 터를 한번쯤 다녀오실 것을 권합니다. 문화저널 이번호는 통권 200호입니다. 숫자의 의미에 자취가 제대로 실렸는지 뒤돌아보게 됩니다. 올 한해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 두루, 평안히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 김은정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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