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5.1 | [문화저널]
<최승범 시인의 풍미기행>집장,그 새큼달큼함 맛
최승범(2005-01-07 17:26:15)
그동안 잊고 있었던 ‘집장’ 맛을 얼마 전 다시 챙길 수 있었다. 방송통신대학 김광운학장과 전북대학교 김무기교수와 자리를 함께 한 점심상에서였다. ‘돌솥에 지어 나오는 밥이 맛있고, 몇 가지 반찬들도 깔끔한 솜씨더라’는 김학장의 말에 우리는 저 날의 점심을 「흙집」(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663-3, 전화 227-0987, 5천원)의 백반으로 정하였다. ‘몇 가지 반찬’이라고 하였으나, 상차림을 보니 14~5종에 이른다. 청국장·계란찜이 상의 중심에 놓이고, 장류(醬類)만도 된장·게장·파간장에 집장까지 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음식 맛은 장맛이다’ ‘장맛이 단 집에 복이 많다’는 예로부터의 상말도 있거니와 백반 찬을 즐기자면 장맛이 제일이다. 먼저 집장에 마음이 끌린다. 집장을 한자로는 ‘즙장(汁醬)’이라 쓰고 읽기는 집장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시금장·시큼장·거름장·말똥집장으로 일컫기도 한다. 앞 두 사투리는 그 맛으로, 뒤의 두 사투리는 제조과정으로 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항아리에 담은 집장을 익힐 때엔 흔히 풀 두엄 속에 넣거나 마분(馬糞) 속에 묻어서 익혔던 것이다. 한복진의 《팔도음식》(1984)에는 ‘나주 집장’을 들었으나, 이성우의 《한국식품문화사》(1984)에는 전주의 집장을 으뜸으로 꼽았다. -‘집장으로는 전주 남문(南門)집장이 유명하다. 이것을 유일하게 전승시키고 있는 전주 백씨가문(白氏家門) 때문에 <백씨장>이라고 속칭하기도 한다.’ 고 했다. 백씨가문의 집장을 맛본 일은 없다. 내가 맛본 것으로 때로 떠오르는 집장은 1950년대 전주 고사동에 자리하였던 「옴팡집」의 것이 으뜸이다. 이것이 백씨가문의 전승 조리법에 의한 것인지는 이제 확인해 볼 수 없는 일, 그 후에 맛본 집장으로는 1960년대 고창의 읍내리 「조양관」에서의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조양관」도 이제 「조양식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니, 집장 맛의 전승여부는 모를 일이다. 아무튼 때로 떠오르던 「옴팡집」·「조양관」의 집장 맛을 「흙집」에서 되챙겨 볼 수 있었음은 즐거움이었다. 다만, 담아낸 그릇과 집장의 빛깔이 달랐다. 접시였던 게 종발이고, 누룩빛이 승하였던 것에 비하여 고춧가루빛이 더하였다. 우선 보기에 입맛을 당기게 하는데엔 후자가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집장을 상에 올릴 때엔 종발 보다는 접시가 좋을 것 같다. 헤적거려 살피지 않아도 고춧잎인가 무청인가 가지인가 오이인가를 곧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집장은 바로 이러한 재료를 찰밥에 섞어 넣어 항아리에 담기 마련이다. 그리고 간은 소금이나 간장으로 맞추면 된다. 뜨끈뜨끈한 돌솥밥을 파간장으로 비벼 먹으며 집장의 저러한 재료들을 번갈아 맛을 보자니, 입안이 온통 즐겁기만 하다. 새큼한 맛인가 하면 달큼한 맛이 돌고, 달큼한 맛인가 하면 매옴한 맛이 돋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새큼달큼한 맛이라고나 할까. 「흙집」을 나오면서 주인과 인사를 나누었다. 주인 김만수씨는 고향이 고창이라 했고, 집장은 부인 조춘옥씨의 솜씨라고 했다. 조씨는 나주가 고향이란다. 이로써 보면, 저날 「흙집」에서 즐긴 집장의 맛은 나주집장·고창집장·전주집장의 맛을 하나로 아우른 맛이었다고 하여 좋을 것 같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