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 | [파랑새를 찾아서]
진정 큰 사람이 되는 교육은
김찬곤 어린이 신문 굴렁쇠 대표(2005-01-07 14:14:10)
대통령 선거가 끝났습니다. 작년 12월 19일 저는 아내와 새벽 네 시까지 텔레비전을 봤습니다. 투표는 4번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한테 했지만, 아쉽게도 권영길 후보 표가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았지만.
기뻤습니다. 참 기뻤습니다.
저마다 기뻐하는 까닭이 다 다르겠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이 나라 공교육이 적어도 5년 동안은 별 탈 없겠구나, 그 때까지는 큰 변화가 없겠구나, 이것 때문에 기뻤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 공교육도 미국이나 영국처럼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되어 적어도 5년 안에는 본고사 부활은 없을 것이며, 자립형 사립 학교도 좀 미룰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교육에 희망을 걸지 않습니다. 공교육이란 게 말 그대로 정부에서 하는 교육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배 이데올로기'를 가르치는 것밖에 더 되느냐 하며 아주 무시하고 밖에서 다른 교육을 해야 한다 합니다. 뭐 밖에서 하든 안에서 하든, 저는 다 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 밖에서 대안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은 아주 특별한 교육을 하는 것인 양 우쭐거릴 까닭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뭐 특별히 나은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말이 대안 교육이지 이 나라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 농민 자식들이 가기에는 교육비가 턱없이 많지 않습니까?
그냥 솔직히 '엘리트 교육'을 하고 있다 하면 좋겠습니다. 모두 알 듯이 대안 학교에 보내는 집안은 그래도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이고, 부모들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공교육보다 좀 나은 '엘리트 교육'을 하고 있다 하면 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몇 곳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거의 다 이런 학교 아닙니까.
어찌 됐던 우리 공교육은 가장 싼 교육입니다. 그 교육이 비록 '지배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 나라 교육 가운데서 가장 싼 교육입니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 농민 자식들이 돈 걱정 없이 배울 수 있는 곳, 그런 학교가 바로 우리 공교육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교육을 살리는 일에 더 관심이 많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이 조합에서 했던 일이 그렇게 딱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있어 이 나라 공교육이 지금 이만큼이라도 살아 있는 것 아닙니까.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 집과 학교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라는 논문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한 사회가 큰 변화 없이 발전하려면 크게 두 가지 국가 장치가 필요한데, 그 하나는 군대나 법이나 경찰이나 정보 기관 같은 '억압 국가 장치'이고, 또 하나는 신문이나 방송이나 노동조합이나 집(가정)이나 학교 같은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라고. 그리고 이 두 가지 장치 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억압 국가 장치보다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가르치는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 중요한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 가운데서 집(가정)과 학교를 가장 으뜸으로 꼽습니다. 그리고 중세 시대에 신 중심의 '중세 이데올로기'를 가르치는 곳은 집과 성당(교회)이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당(교회)이 했던 노릇을 학교가 이어받았다고 합니다.
중세 시대에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 때 당시 기본이 되는 중세 이데올로기를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려는 사람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몸으로 익혀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왜 국가가 교육 장치를 손에 딱 움켜쥐고 놓지 않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왜 국가가 교육에 투자를 하는지, 그 속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대안 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공교육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 가운데서 집(가정)과 학교를 중심에 놓잖아요? 학교는 그래 그렇겠구나 싶은데, 집(가정)이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라니! 좀 이상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럴 듯도 합니다.
우리는 태어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든 것을 집에서 다 배웁니다. 부모한테, 형제한테 이 사회에서 기본이 되는 이데올로기를 몸으로 익힙니다. 물론 그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예절이나 효, 잘못을 인정하는 것, 힘이 없으면 져야 한다는 것(정글의 법칙), 질서나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 따위를 배웁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이데올로기죠. 더구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더 깊이 배웁니다. 집에서 배울 수 없는 갖가지 이데올로기를 텔레비전이 알뜰히 가르쳐 줍니다. 또 학교 가기 전에 하는 많은 학습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습지 문제도 거의 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전 우리 아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켜야 할 기본 예절을 거의 다 배우는 셈이죠.
먹고 싸고 치우는 것만 제대로 해도
이렇게 보면 집에서 하는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 알고 있듯이 한 사람의 성격이나 됨됨이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받는 교육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받는다고 합니다. 또 학자들 말에 따르면, 태어나서 세 살까지 부모가 어떻게 보살피는가에 따라 아이들 성격이 거의 된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하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 주는 대목입니다.
아버지가 집에서 아들 아들 하면 딸은 그만큼 상처를 입게 되고, 또 아들은 그만큼 아들 중심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살수밖에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함부로 하면 그 아이들 또한 그대로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말을 함부로 하면 아이들도 말을 함부로 합니다. 밥 먹다 여보 물 하면, 아이들도 엄마 물 줘 합니다.
지난 12월 말, 식구들끼리 모임이 좀 있었는데, 아이들이 밥 먹다 엄마 물 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제 자식이었으면 디지게 패 불 건데, 남의 자식이다 보니까 한번 째려보고 말았습니다. 언젠가 아이들한테 밥 먹을 적에 스스로 물 갖다 먹는 사람 손들어 봐라 했습니다. 그런데 한 절반만 손을 들더군요. 모두 열둘이었는데, 여섯만 자기가 물을 따라 마신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여섯 가운데도 거짓말을 하는 놈이 분명 있을 것이니, 거의 엄마가 물을 갖다 바치는 꼴입니다.
2001년에 저희 굴렁쇠는 먹을거리 문제를 아주 깊게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는 먹고 싸고 치우는 문제를 크게 다루었습니다. 너무 배불리 먹지 말자, 상에 음식 흘리면 주워 먹자, 쌀 한 톨이라도 함부로 하지 말자, 똥 싸는 곳을 더럽게 여기지 말자, 자기 방 청소는 자기가 하자……. 집에서 뭐 이 정도만 제대로 해도 나중에 자라서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했습니다.
다 알 듯이 사람은 밥 한끼 해 보면 그 사람 거의 알 수 있습니다. 또 회사에서 걸레질하는 것만 봐도 그 사람 어렸을 때부터 자기 방 청소 하고 살았나 안 살았나 바로 보입니다.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교육, 집에서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