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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6 | [시사의 창]
[전북의 땅과 문화, 사람들 - 남원] '판소리 DDR'을 꿈꾸는 별난 공무원 판소리 연구가 김용근씨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4-07 14:08:14)
씩씩한 남성의 소리, 동편제의 탯자락이 되어온 남원. 그 곳에 '판소리의 디지털화'라는 다소 엉뚱한 주장을 풀어놓는 이가 있다. 남원 주천면사무소에서 일하는 김용근(42)씨. 전통에 대한 현대화 작업을 '디지털'이라는 초현대적 개념으로 끌어와 지역민의 미래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그가 얘기하는 '판소리 디지털화'의 핵심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작된 판소리 연구는 20여년을 이어온 실로 끈질기고도 집요한 것이었다. 그의 연구 분야는 단순히 발생학이나 계보학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판소리 안에는 한국의 집약된 문화와 미래가 있다"는 것이 판소리에 대한 그의 남다른 지론이자 놓을 수 없는 화두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향한 판소리', 오랜 시간과 단계를 거치며 숱한 고생과 아픔을 이기게 한 힘이 바로 그 속에 있다. "남원 토박이로서 남원이란 도시가 오랜 세월 후에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인식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남원의 경쟁력은 뭐고 정체성은 무엇인지 그때 혼자서 설문 6백부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이 꼽은건 단연 '판소리'였죠." 그때부터 그는 지리산 판소리 유적지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공무원인 그에게 시간은 금쪽같은 것이었고, 순전히 발품을 팔아가며 토요일과 일요일은 고스란히 판소리 연구에 투자했다. 그렇게 해서 『동편제 판소리 답사기』를 비롯해 『판소리 사전』 『주천고을 천년의 발자취』등 모두 5권의 책을 펴냈다. 그에겐 모두 소중한 땀의 결실이지만, 특히 8년여의 시간을 투자해 완성한 『판소리 사전』은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 작업이자 가슴 뿌듯한 결과물이다. "춘향가나 심청가, 흥보가 등 흔히 듣는 판소리임에도 무슨 내용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판소리 사설이 대부분 고사성어나 고어 등으로 이뤄져 그 내력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판소리 창본집을 뒤지고 일본에 있는 자료들을 모아 사전을 만든 겁니다." 그렇게 하루 한시간씩 8년을 투자한 덕에 사전에 올려진 단어만 총 13만 단어에 7백 페이지 분량. 『판소리 사전』에 공력을 쏟아 부은 것은 무엇보다 이 작업을 통해 남원이 판소리의 역사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각계 인사들의 네트워크 형성이 판소리의 미래를 가늠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외국 관광객들을 안내하면서 절실히 느꼈다고 말한다. "국어학자, 음악치료사, 실버 산업자 등 다양한 직업의 일본인들이 남원을 찾고 판소리에 관심을 갖는데에는 분명 무슨 목적이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일본어를 독학한 것도 그 때문이였어요. 귀가 좀 트이면서 그들이 우리 소리인 판소리를 적극 연구하고 상품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우리는 지금 우리것을 빼앗기고 있구나 싶어 위기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는 전통을 고수하거나 지켜나가는 것 이상으로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상품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청계천을 돌아다니며 판소리 DDR에 매달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것은 실버산업 가운데 하나예요. 노인들의 여가생활과 운동을 겨냥한 것인데, 지금 거의 완료가 된 상태고 특허만 내면 되는 상황입니다. 일본은 벌써 우리 국악을 가져가 상품화에 돌입한 상태인데 전통만 고집하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기본적으로 음원에 대한 저작권 확보 작업이라도 시작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불과 몇 년 후에 우리가 우리것을 일본에서 수입해야 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릅니다." 공무원의 갈 길은 지역민에게 뭔가 돌려주는데 있다고 말하는 그. 개인적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조사해온게 지금까지 8만여장에 이른다고 하니, 그는 분명 우리시대 별난 공무원임에 틀림없다. 그의 노력 덕분에 민요와 판소리가 흘러나오는 DDR 발판에서 흥겨운 '발림'을 하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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