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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 | [세대횡단 문화읽기]
감성과 과학으로 읽는 도시의 오늘, 도시의 미래
도시계획가 장명수 김병수(2005-01-07 14:02:51)
하늘, 가로수, 골목, 그리고 이웃. 자동차가 지배하는 도심 속에서 마음과 눈을 붙드는 것들이다. 도시는 사람과 사람들의 일상이 숨쉬는 삶의 공간이다. 분주한 일상 속에 경쟁과 분투가 다툼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정겨운 이야기가 속살거려지는 곳 또한 도시라는 공간이다. 도시계획, 도시정책. 다소 낯선 주제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여기엔 쾌적하고 살기 좋은 도시,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의 반듯한 삶의 공간으로 가꿔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담겨진다. 효율적인 도시 기능을 찾아내기 위한 치밀한 과학과 삶의 문화에 대한 따뜻한 이해가 맞물려야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도시를 연구하는 사람. 전주 성곽 연구를 비롯해 전주의 근현대사 속에서 도시 계획과 정책 분야에 오랫동안 지역 수장으로 역할해 온 장명수 전 우석대 총장과 서울 경실련을 거쳐 공공스튜디오 ‘심심’을 꾸려 도시에 대한 젊은 감각과 문화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김병수 대표가 만났다. 전주 한옥마을과 차이나타운 등(전북도청사 및 전북경찰청 이전 등)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전주 구도심권에 대한 새로운 개발 전략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요즘, 이 두 선후배의 만남은 전주라는 도시를 읽어내는 중요한 코드가 될 법하다. 도시의 역사와 의미, 사람들의 삶과 일상의 패턴들이 어떻게 변화해가며 도시를 움직여 왔는지 두 사람의 대화 속에 그 단서들이 풍성하게 어려있다. 김 : 선생님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 경실련 도시개혁센터에서 일하면서 구도심 전략이나 도시계획 분야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전주에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옥마을이나 화교 거리 등을 중심으로 구도심에 대한 문화·사회적 해석과 전략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름대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늘 문화저널에서 자리를 마련해 준 덕분에 선생님과 도시 계획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바람직한 방향 등에 대해 말씀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무척 기대됩니다. 장 : 예. 얼마 전 공간아카데미라는 좋은 기획을 열었다고 들었는데, 젊은 분이 쉽지 않은 일을 추진했어요. 이렇게 만나서 반갑고, 유익한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도시는 감성과 과학이 만나는 학문 김 : 예. 도시계획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다 보니 어떻게 보면 이 작업이 살을 많이 붙여가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계획은 토지이용계획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에서부터 출발하지만, 실제 사람들이 어떤 맥락 속에서 공간을 이루고 그 곳에 모여 살게 되니까 거기에 필요한 인문학적 접근이나 경제적인 부분 등 살이 많이 붙여지는 일 같아요. 장 : 그렇죠. 사실 도시라는 건 굉장히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접근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죠. 도시는 공간이라는 물리적인 개념과 인문사회학적 접근이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물리적 공간에 대해 공부한 사람들은 인문사회적 접근이 어찌보면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지만, 반대로 인문사회 전공자들은 이쪽 분야에서 활동하는 일이 그리 쉽지가 않죠. 도시는 기본적으로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하나의 과학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쨌든 사회학적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건 도시의 의미와 해석을 가장 예리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시 사회학이 별도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이고요. 김 : 예. 서울의 경우엔 지금 서울시립대에 도시사회학 과목이 개설되어 있고 특히 손정목 교수의 경우 1970년대 서울시 정책과 관련해 도시계획사를 일군 중요한 구성원으로 당대의 계획사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전에 몇 번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지도를 보여주면서 그 당시엔 실질적이고 계획적인 개발보다 깃발 꽂고 선점하던 방식이었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장 : 예. 맞습니다. 그 분은 직접 자신이 행정을 맡았던 분이라 뒷 이야기도 잘 아는 편이죠. 김 : 그 분과 이야길 하다 보면 70년대엔 특히 정치와 도시계획이 맞물려 있는, 그야말로 개발연대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 있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더라고요. 정치학이나 사회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도시 관련한 정책 발언을 할 경우엔 일반에게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고 파급이 되지만, 도시 전공하신 분들은 대부분 그저 엔지니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 부분에 대한 발언에 힘을 얻기가 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이공계 쪽에 계신 분들은 도시를 사회학이나 정치학과 관계없다고 보는 경향이 많은 것도 같은데, 선생님은 도시계획의 의미나 출발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장 : 사실 우리나라의 도시계획이 학문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고, 개발연대로 도시계획이 이뤄진 것도 60년대 중반정도였단 말이죠. 그 전엔 도시계획에 대한 용어 자체도 굉장히 낯선 시대였어요. 선친이 당시에 은행 지점장을 하셨는데, 실습을 나가게 되잖아요? 그러면 건축하는데 그게 왜 필요하냐고 물으세요. 도시계획에 필요한 일이라고 답을 하는데, 이해를 잘 못하시더라고. 선친도 당시엔 엘리트였는데 도시계획이 뭐냐고 물을 정도였으니까요. 김 : 최근에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들하고 영국이나 유럽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들이 많 은 편이고, 그 전엔 주로 일본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들이 많은 걸로 아는데요. 장 : 실제로 일본에서 도시를 전공하고 온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일본에서 정식으로 도시계획을 공부한 사람은 강병기씨라는 분을 꼽을 수 있는데, 그 분이 동경대 학부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했거든요. 일본의 도시계획을 배운 사람이고, 그 분의 지도교수 역시 세계적인 사람으로 일본의 도시와 건축을 쥐락펴락한 사람이에요. 김 : 예. 지금 강병기 선생님의 경우는 시민단체 활동도 열심히 하시고 최근엔 걷고싶은거리만들기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소프트한 도시계획과 설계 쪽으로 관심이 이동하신 것 같습니다. 이 분이 가장 많이 지적하시는 게, 미국 등지에서 스케일 중심으로 도시계획을 공부한 사람들이 좁은 국토 안에서 정치적이고 관료적인 시스템과 맞물려 도시를 급작스레 변화시키면서 하나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건데요. 그래서 영국의 경우처럼 소프트한 변화와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을 하시더라고요. 장 : 예. 맞는 말인데, 그 전에 전제돼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도시 형태의 대부분은 일본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용어마저도 일본에서 받아들인 것들이 대부분이죠. 일본의 도시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모델 케이스라고 할 수 있고, 그 다음엔 유럽의 도시 정도가 우리에게 참고가 되거나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모델로 삼을 만한 좋은 곳은 아니에요. 미국 도시에서 우리가 모델로 쓸만한 곳은 보스턴이나 뉴저지 등 두 곳 뿐이고, 나머지는 엉터립니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세계적인 도시계획과 경영 등 학문적으로 도움이 되긴 하지만, 도시 공간 자체는 그리 본받을 만한 곳은 아니죠. 김 : 한국 도시계획의 선두주자나 선구자가 될만한 분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선생님께서 활동하실 무렵 전주나 전북지역에서 함께 일한 동료가 있으신가요? 60대 중반 정도의 연령층에서 도시계획 쪽에서 활동하신 분들을 찾아보려고 해도 선뜻 드러나지가 않던데요. 장 : 없습니다. 있다면 지금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시는 분들 정돈데, 그 분들도 단위 건축에 대한 이야긴 할 수 있지만 도시계획 분야는 아니죠.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내가 도시계획사나 국토계획사 쪽 원로 중에는 전국에서 베스트 10 안에 드는 인물입니다. (웃음) 전주에는 나와 비슷한 연령층은 전혀 없고 전북대에 제자 몇 사람만 있어요. 김 : 전주나 전북지역의 경우엔 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도시계획이라는 용어가 생기고 진행 됐다고 볼 수 있는데요. 선생님은 그때부터 도시 정책 집행과정에 참여하거나 지켜볼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이셨을 줄로 아는데, 전북 지역 최초의 계획적인 도시 계획 작업이라고 꼽을만한 사업이 어떤 게 있을까요. 장 : 60년대에 국토건설종합계획이 발표되고 건설청에서 각 도시에 사업 내용에 대한 공문을 내려보냈어요. 전라북도에도 건설종합개발계획을 세우라고 공문이 왔는데, 용어 해석도 문제고 개념도 모른 상태니까 관계 공무원들도 난감했던 모양이에요. 그 때 누가 나를 추천해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도에 들어가 설명을 하고, 유럽과 일본의 경우는 어떤지 예를 들어 이야기 를 해나갔죠. 그 당시엔 국토계획이나 도시계획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을 때고, 내 강의를 듣고나서 어느정도 감이 잡힌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제1차 도 건설종합계획서를 만들게 된 겁니다. 그 무렵 타 도시들도 중앙에서 내려와 교육을 시켰는데, 교육을 시킬만한 사람도 몇 명밖에 없었습니다. 가르치는 일, 그러니까 개념 확산부터 시작을 한거죠. 구멍 뚫린 도심, 매력적인 공간으로 가꾸자 김 : 예. 제가 선생님이 쓰신 『전주의 성곽과 도시계획연구』라는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선생님의 인문학적인 지식이나 관심이 대단하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주 성곽의 발달사를 보면, 주거나 삶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도시라는 개념이 필요했을텐데요. 견훤성부터 무랑마을까지 일정한 주거지역 내에서 성곽이 발달되다가, 어느 시점에서 지금 현재의 구도심이 형성된 것 아닙니까? 대체적으로 역사학자들이 이같은 도시 형성이 전주천의 흐름과 연관이 있다고 말하는데요. 하천이 이동하고 그 이동 경로를 따라 도시가 형성된다고 하는데, 그 이동 기간이 약 1,000년 정도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주의 경우 그렇게 빠른 시간 내에 하천이 이동하면서 도시가 형성됐다는 게 다소 무리가 있지 않나 싶어요. 장 : 아, 물론입니다. 좋은 지적인데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는 거죠. 김 : 그렇다면 산성시대를 마감하고 현재의 터에 도시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이 언제부터라고 볼 수 있을까요? 장 : 고려 중엽이죠. 방위체제에 영향을 받기보다는 생활의 필요나 풍수와 관계가 있었던 겁니다. 고려는 왕건이 지방 영주인 토호와의 연합세력을 만들어 건국을 한 것이지만, 훗날 왕권 강화를 위해서 이 토호들을 대대적으로 토벌하잖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시대의 토호는 끝까지 존재하고 있었단 말이죠. 그러나 전주라는 곳은 당시 토호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1만명 정도의 인구도 모여 살 만한 곳이 없었어요. 역시 전주 구도심이라고 표현되거나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조선시대라고 볼 수 있어요. 도시가 형성된 것은 시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시장이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 광화문 주변의 육의전이라는 관설시장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다 없앴단 말이죠. 전주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성곽 내부에 관 공장이 있어서 그곳에서만 물품을 만들어 유통시킬 수 있었거든요. 그러다 조선 중엽이 되면서 기근이 일어나 사람들이 살기 위해 지역과 지역을 오가며 몰래 몰래 물물교환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시장이 만들어진 겁니다. 정부에서 시장을 엄격히 금지한 건 민란이 무서워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막은 거잖아요? 또 누군가가 이익을 남기고 차익을 챙기는 식의 상업행위 자체를 불합리하고 부도덕하다고 본거죠. 그러나 성밖으로 나온 시장을 하나의 민심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이때부터 시장을 허용하기 시작한 겁니다. 전주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한국의 성문밖 시장의 효시는 전주와 나주예요. 19세기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서양엔 도시가 있지만, 동양은 없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시장도 없고 시민도 없기 때문에 도시라는 개념도 없다고 본 겁니다. 우리나라의 도시는 지방에 있는 주민들에게 세금을 걷어들이기 위한 하나의 거점이었고, 민란이나 국가 위기 상황을 막기 위해 성곽을 만들어 군대를 주둔시킨건데요. 따라서 서울, 한성이란 개념만 있지 지방 도시라는 개념이 없었던 겁니다. 자료를 보면 서울의 도로관리규칙이나 건설규칙은 있지만, 지방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그 자료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지방을 도시로 보지 않았고 군대 주둔기지로만 봤기 때문이죠. 김 : 예. 한성은 태종 때 계획적인 개념을 갖고 도시를 건설한 경운데요. 전주는 객사나 전라감영, 또 지금의 전주 시청 자리를 중심으로 주요 관청과 시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말하자면 건물의 덩어리와 길의 형태에 따라 T자 형 계획으로 도시의 개념이 들어선 걸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게 전주 최초의 도시 계획이란 개념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장 : 예. 그렇게 볼 수 있죠. 김 : 전주 호반촌이나 진북동 공무원주택가 같은 경우가 상당히 큰 규모로 개발이 이뤄진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그 개발 시기가 대충 몇 년도였습니까? 장 :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중반이라고 봐야죠. 진북동 공무원주택의 경우엔 어떤 계획이나 계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구획정리 하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경우고, 호반촌의 경우는 좀 달라요. 70년대 중반 자본축적이 어느정도 이뤄지고 생활수준이 높아진 뒤에 부촌으로 형성된 경우죠. 김 : 예. 전주에서는 이제 막 구도심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70년대 중후반에서부터 최근까지 사대문 안 구도심에 대한 투자가 별로 없었잖습니까? 육지구 개발이나 호반촌 이후에 송천동이나 서신동 쪽으로 도시 확장과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데, 전주 구도심은 자본 투자나 본격적인 개발에서 벗어나 있었던 상태죠. 구도심은 역사적 향취나 느낌이 갖춰진 곳인데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을 읽고 일관되고 집중적인 재개발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우선 구도심의 성격을 소외나 개발에서 벗어난 지역만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생각인데요. 장 : 예. 맞습니다. 전주 인구가 60만 아닙니까? 유럽에서 보면 대도시인 셈이예요. 독일처럼 지방분권이 확실한 나라에서는 60만이면 대단히 큰 도시죠. 후진국일수록 인구가 많은 도시가 많아요. 물론 선진국도 그런 사례가 없는 건 아니죠. 앞으로 우리나라 도시 인구는 당분간 늘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먼저 60만 인구를 가진 도시의 수준 평가부터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원론적으로 쾌적한 도시, 시민이 살만한 생태도시를 지향한다면 우리나라 형편에서는 30만 내외가 가장 적절하다고 보는데, 사실 30만 가지고는 도시의 생산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한국적 현실에서는 적어도 100만명 정도는 돼야 재정자립도 면에서 살만한 도시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어쨌든 현재의 전주 60만 인구가 서울로 가지 않고 자기 만족을 누리며 전주를 살 만한 곳으로 가꿔가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 아니겠어요? 70년대엔 육지구, 80년대엔 서신지구, 90년대엔 아중지구 개발이 시작됐는데, 제한된 60만의 인구가 도시 팽창에 따라 이동을 하게 되면 자연히 어딘가 구멍이 뚫릴 것 아닙니까? 광주나 대전은 인구가 계속 늘어나니까 중심에 대한 개발이 이뤄진단 말이죠. 그런데 전주의 경우 중심에 있던 것이 자꾸만 밖으로 나가게 되니까 공동화현상이 빨리 와버린 겁니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는데, 개인적으로 전주 시장은 방향을 꽤 잘 잡았다고 봐요. 무엇이든 사람들에게 매력을 줘야 합니다. 가고 싶다, 걷고 싶다는 느낌을 줘야 한단 말이죠. 고사동 ‘걷고싶은 거리’는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아주 잘한 사업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죠. 아직도 이곳에 자동차가 씽씽거리고 다닌단 말입니다. 물론 상인과의 관계가 걸려있긴 하지만, 어쨌든 도시계획은 강제적 측면이 필요한 부분이니까요. ‘걷고싶은 거리’를 제대로 만들려면 녹지를 조성하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재정적인 인센티브를 줘야 합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토지나 주택에 있어 인센티브를 주고, 상점의 경우엔 전세비를 지원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지원책을 써야한단 말이죠. 쌈지공원 같은 녹지공원화 작업도 병행돼야 하고요. ‘걷고싶은 거리’를 포함해 최소한 4대문 안에 자동차 진입을 금지시키고 이 곳에 모범적이고 쾌적한 도심을 만든다면 구도심의 피폐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토착성과 휴머니즘에서 찾는 구도심의 활력 김 : 당장은 도심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나 공동화현상을 막아보려는 쪽으로 도시계획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 곳 주민들이나 상인들에게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혜택이나 인센티브 등으로 매력을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구도심 활성화에 필요한 중심 개념이 세워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전주시에서는 지금 구도심의 활력이나 매리트를 찾고 최근의 중국 관광객들을 겨냥해 남부시장 리모델링이나 차이나타운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데요. 우선은 구도심의 역사적 근거가 있어야 뭔가가 이뤄지는 것 아닙니까? 그런 부분이 충분히 파악되고 읽혀졌는지, 또 구도심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당면한 삶과 일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충분히 마련해 주고 있는지, 그리고 동질의 문화를 심어주는데 필요한 커뮤니티가 갖춰져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부시장의 경우도 재건축이나 재개발한다고 해도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마트와 경쟁하는 건 무리가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남부시장 고유의 맛과 멋을 찾아 이 점을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 발표되는 도시 정책이나 계획들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이유도 이런 폐해나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요. 장 : 예. 아주 잘 살피고 있습니다. 남부시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인데, 그런 역사적인 근거와 맥락을 짚는 일이 우선돼야 하죠. 남부시장을 재개발해서 이마트랑 대결한다? 그건 이미 불가능한 일이죠. 때문에 유럽에서의 구 시장 리모델링 방식을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대자본이 투자돼 시장 경쟁구도로 맞대결 하는 게 아니라 역사성이나 토착성에 주목해 가격도 저렴하고 상인과 고객이 서로 얼굴을 아는, 이를테면 휴머니즘이 살아 숨쉬는 게 구 시장의 매력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구도심의 활력소는 역사성과 토착성, 그리고 인정이 어린 휴머니즘을 간과해서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이죠. 사대문 안의 구도심 속에 있었던 멋쟁이 골목들이 이젠 거의 다 없어졌습니다. 그 골목길에는 오백년, 칠백년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건데 그걸 소홀히 하고 몇 미터 되지 않는 도로를 ‘걷고싶은 거리’로 만들어 놓으니 연계성도 없고 매력도 없는 겁니다. 김 : 예. 제 생각엔 구도심 안에서 만족시켜야 할 부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여러 사람들의 느낌과 감성을 공간 속에서 구현해 내야하고, 경제적으로 활성화되기 위한 여건 조성이 적절하게 결합돼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전라감영터인 도청 이전계획도 세워지고 실제 새 청사가 건립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불과 이삼년 안에 이곳의 활동인구가 현격하게 줄어들 거라고 보는데요. 그렇다면 이 공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할텐데, 지금 그 대안으로 나온 이야기가 전라감영 복원이잖습니까? 이게 복원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이 소요될텐데, 그동안 이곳이 이런 변화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장 : 예. 아주 예리한 지적입니다. 전라감영 복원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전라북도에서 정부에 도청 신축과 관련한 예산 지원을 신청한 적이 있었거든요? 정부에서는 지금의 도청터를 팔아 그 돈으로 새 건물을 신축하라고 이야길 했는데, 전북도가 고민한 게 어떤 재벌이 이곳에 들어와야 백화점 같은 큰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하는 거였어요. 구도심 전략이 겨우 그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단 말이죠.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전라감영 복원 이야기가 나와서 그나마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겁니다. 김 :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면, 도시 중심부가 쇼핑과 행정업무로 채워진 곳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인 흔적이나 유물을 그대로 복원해서 도심의 내용을 채운 곳도 있지 않습니까? 구도심이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늘 매력 있게 당기는 곳으로 활력을 찾아야 있는데, 전주의 경우는 예전의 역사가 복원되고 그런 구상들이 갖춰져 가고는 있지만, 지금 당장은 활성 인구나 도심의 활력이라는 측면에서 직면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을 끌고 갈 일관된 방향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장 : 예. 아주 잘 보고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 중세의 도시 경관이 그대로 잘 보전돼 있잖습니까? 그러한 중심 건축물이나 역사적 흔적이 바로 도시의 랜드 마크이면서 삶의 중심이란 말이죠. 그런데 우리 도시엔 이러한 기능을 맡아줄 중심 개념이 잡혀 있질 않아요. 결국 전주 역시 한국적이고 전주의 역사가 담겨진 흔적들을 보여줘야 하고 이 속에 전주 도시의 중심 업무가 함께 공존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요. 전주 중심 업무를 관장하는 곳이 도청과 시청인데, 도청은 밖으로 나가게 되고 전주시청은 여기서 조금 외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단 말이죠. 따라서 실질적인 행정이나 금융업무는 밖으로 빠져나가게 될 겁니다. 결국 이곳 구도심의 중심은 역사와 상업기능이 혼재된 공간으로밖에 만들 수 없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사대문 안에 성곽이나 감영, 부영이 있다면 분명히 세계적인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지만, 지금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단 말이죠. 풍남문 역시 중국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고요. 살아있는 문화재가 없다는 얘기예요. 그렇다면 전주적인 가치를 새로 만들어 내야만 합니다. 업무나 금융기능은 밖으로 내놓고 역사와 상업적 기능을 잘 가꿔 그 속에서 전주만의 새로운 가치를 재발견해 내야 한다고 봐요. 구도심, 인위적 재현과 재생 경계해야 김 : 역사적인 매력이나 컨텐츠, 그리고 상업적 활동이라는 두 가지 기능이 문화적인 자장 안에서 완성돼야 한다는 말씀이신데요. 전동성당과 경기전, 풍남문이라는 삼각축이 역사적·이념적으로 연계를 이뤄오면서 시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로 부각되고 있지 않나 싶은데요. 100년전에 만들어진 이 삼각축이 전주의 역사를 이끌어왔던 정신적 상징과 흔적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한옥마을 일대가 자산으로서 시민들에게 어필되면서 사업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곳 한옥 마을에 큰 한옥들이 신축돼 들어섰는데, 이 부분이 안착될 때까지는 상당한 갈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 집들의 경우 개보수비는 조례상 상정돼 있지만,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불만들이 터져나오고 있고요. 여기 새로 들어선 큰 시설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인원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요. 이 시설들이 뭔가 공식적인 활동을 하게 되니까 문화적으로 오히려 위축될 우려가 있지 않나 싶어요. 우리 역사나 전통 자산을 문화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장 : 맞는 말입니다. 교동 한옥마을과 객사쪽은 패턴이 조금 다를 수 있어요. 교동은 민 주도의 생활문화적인 공간이라면, 객사쪽은 관 문화가 있었던 곳 아닙니까? 어쨌든 한옥마을 개발은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자산을 활용하면서 매우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부족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집객 전략이라는 부분인데, 다시말해 손님을 끌어들이는 능력, 외지인이나 전주시민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사람을 끌어모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사업 아니겠어요? 김 : 선생님 말씀은 전주 구도심의 도시계획에 있어 경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그 경관 가치를 경제적 효과와 맞물려 발전시켜야 나가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장 : 예. 경관은 보기 좋은 것들을 모아놓는건데, 이 경관을 하나의 생활문화로 만들어놓고 누구나 감탄할 수 있게 하는 게 능력이란 말이죠. 일본은 대부분 훼손하거나 철거하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우리는 거의가 재현이나 재생으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단 말이죠. 일본은 있는 그대로를 보존 개발하면서 근본이 살아있는 개발정책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차이가 있는 부분입니다. 김 : 재생이란 개념 속에 역사적 표상이나 건축물, 자연이 가진 장점들을 살리고 활용하는 지혜를 곁들여야 한다고 보는데요. 한편으론 구도심에 대한 개발 전략을 세울 때 우리가 역사성이라는 부분에 과도하게 짓눌려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차이나타운도 의식적으로 역사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겨나면, 생활이나 문화 속에서 자연스레 녹아나는 게 아니라, 선도적이고 인위적인 형태로 건축물이 지어지거나 도시계획이 이뤄지지 않을까 걱정도 되는데요. 장 : 교동의 생활문화 재생과 차이나타운 개발 역시 패턴이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차이나타운은 중국과의 무역에 거점이 된 곳이기도 하고, 중국 상인들이 이주해 살았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이긴 하지만, 전주적인 프로젝트에 그리 부합하거나 구도심 전략에 비중 있게 활용될 만한 소재는 아니라고 봐요. 김 : 예. 전주 도심의 매력은 동서를 축으로 어느 위치에서든 녹지가 다 보인다는 건데요. 그래서 하늘이나 녹지를 도심에서 충분히 느끼거나 감상할 수 있는 정서적인 매력이 있는 곳이 아닌가 싶어요. 경실련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도시를 다니다 보면, 전주는 전주만의 아담하고 정감 있는 가로(街路)가 정서적으로 푸근하게 느껴지곤 했는데, 요즘은 도시계획이 외국이나 일본의 모델에 경도돼 있는 것 같아서 우리만의 정서나 방식을 찾는 것이 오히려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 : 예. 맞는 지적이에요. 옛 방식이나 외부의 샘플만을 고집하기보다는 보다 유연하게 전주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을 찾아내고 인간 친화적으로 개발해 내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전주가 갖고 있는 가능성인 녹색도시에 대한 배려가 분명히 있어야 할 겁니다. 김 : 예. 선생님과 말씀 나누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유익하고 진지한 말씀에 감사드리고, 앞으로 자주 만나뵐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장 : 예. 나도 즐거웠습니다. 자주 봅시다. | 진행·정리/김회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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