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 | [문화와사람]
끄집어 내어 관계맺기,場에서 만나는 실험예술
행위예술가 군산대 이건용 교수(2005-01-07 13:50:04)
"場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실험미술의 선구자 이건용이 말하는 그의 예술세계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은 추상화를 그린 평면작업만으로도 난색을 표하는데 여기에 입체성이 가미되고 동작이 들어가는 행위예술(Performance)에 접하게 되면 두려움부터 생기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우리나라 실험미술의 선구자인 군산대학교 미술학과 이건용 교수와의 인터뷰는 비슷한 두려움으로 시작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고 기어이 " 행위예술은 무엇입니까?" 안이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역시 실험예술인이어서 그랬을까? '場에서 만나는 것', 명료한 대답이다. 실마리는 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장소는 크게 두 가지로 우리 인간세상에서 문화적인 의미를 가지고 부여되는 場, 여기에는 인위성이 들어있구요. 그리고 자연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자연의 場이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들로부터 끄집어내기
이건용이 말하는 場에서 구현되는 예술은 처음은 '끄집어내기'였다. 대학생시절 "회화란 무엇인가?" 상식에서 벗어나 근본부터 새로운 발상을 하고 싶었다. 졸업후에는 단순한 추상화적인 성격으로 회화를 전개시켜 나갔고 화면에 여러가지를 붙이거나 태우는 노력들을 했다.
그 후 그는 관객과의 만남 즉 소통(communication)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작가의 의도로만 관객을 이해해야 하는가'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場이 필요했고 이런 그의 노력은 69년 ST(Space &Time)展의 리더로 현장속으로 뛰어들게 한다.
신체항 그리고 관계항
70년대 초반 한국미술은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형식실험으로 풍성해지기 시작하면서 행위예술, 대지예술, 개념예술 등 다양한 미술들이 발표되었고 이러한 실험성은 주로 AG협회와 ST그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당시 AG가 화단의 중진으로 발돋움한 작가들로 구성되었던 반면 ST는 젊고 패기있는 젊은이들로 좀 더 실험적이며 학구적인 태도를 견지했는데 당시 그 최전선에 서 있던 이건용은 ‘신체항’이란 자신만의 새로운 시도를 한다.
1971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관에서 이건용은 ‘신체항’이란 제목으로 거목 한 그루의 밑둥치를 흙 입방체로 드러내어 땅위에 옮겨놓았다. 즉 자연속에 포함되어 있는 나무는 다른 것과 구분이 안되지만 작가의 행위를 통해 한 부분을 떼어다 전시관이란 공간(場)에 배치시킴으로써 구체적인 신체항에 포함시킨 것이다. 즉 끄집어내기다.
다음에 작가는 이 신체항의 개념을 또 다른 무수한 환경들과 결합시키는데 흐르는 시간, 바뀌는 공간, 인류의 역사, 서로 다른 문화, 끝내는 관객 개개인의 독특한 느낌에까지 전달시키려고 노력한다. 정답이 없는 자유스러운 다양한 관계맺기를 관계항이란 이름으로 선 보인 것이다.
"관계항 72란 작품이 있는데요, 옆으로 구멍이 뚫린 나무 궤짝 2개와 5개의 돌멩이로 재창조된 설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72년 당시 남북회담이 이슈가 되었을 때 남한과 북한이란 공간을 각각의 궤짝으로 상징시키고 한 개의 돌은 중심부에 또 어느 돌은 구멍을 통해 나아가려 하는 위치, 그리고 궤짝 사이의 돌멩이는 남북한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의미를 나타내려고 했죠"
이건용이 생각하는 생각의 정점에는 '관계'라는 것이 항상 자리하고 있는 듯 하다. 나와 대상, 시간의 흐름과 현실공간, 나아가 누구나 다 하나가 되는 관계성을 해체시키기까지 그의 관계맺기는 일상에서 생각하는 상식수준에서 이해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종교의 영역에까지 닿아 있는 듯 싶다.
場(공간)의 논리
그에게는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설치와 행위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아니! 한쪽은 움직임이 없는 고정이고 다른 한쪽은 천변만화 동작이 필요한 행위인데 다름이 없다니, 하지만 그의 설치는 靜으로서 動을 말하듯 이미 공간에 존재함으로써 다양한 이유와 변화가 가능해진다. 動을 主로 하는 퍼포먼스는 설치에 비해 오히려 솔직한 편이라 하겠다. 이건용의 공간에서는 그렇게 새로운 의미가 탄생한다. 7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발표한 '장소의 논리'가 있다.
이건용은 홀안의 중앙으로 걸어가 조용히 허리를 굽혀 일정한 크기의 원 하나를 긋고 원 밖에서 원의 중심을 향해 “거기”외치고 다시 원 중심으로 들어가 “여기” 외친다. 그리고 다시 원 밖을 걸어나가 자신의 등뒤에 있는 원을 향해 어깨 넘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하고 외친다. 이런 행위를 몇 번 반복하다 선을 밟으며 원을 따라 '어디 어디 어디'를 계속 외치다 홀연히 사라진다.
이 작품을 통해서 이건용은 장소는 공간이고 신체는 행위다 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는데 즉 공간이라는 장소는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개념이 달라지게 되고 그 결과가 '여기' '저기' 라는 언어개념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장소 -행위- 언어 間 새로운 관계설정을 해 놓은 것이다.
신체를 매개로 한 새로운 그리기
여기 또 '신체드로잉'이란 전혀 새로운 관계설정이 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그리기 드로잉은 보통 머리가 지시하는 대로 손이 잘 따라가는데에 있죠? 수동적으로 그리게 된다는 것인데요 저는 이렇게 '그린다' 라는 개념의 해체를 시도했습니다. 즉 그림을 그려지는 장소, 그리는 행위를 하는 신체, 눈 앞에서 그려지는 각도, 이런 모든 그리기의 개념 자체를 무시하고 새로운 관계맺기를 시도했죠.” 새로운 그리기‘신체드로잉 76-1’은 ‘지금까지 인류역사에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드로잉을 창출해냈다’는 극찬과 함께 리스본 국제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역사인식과 함께 하다
"처음에는 해프닝이라고 했다가 그 후 이벤트라고 했고 80년대 이후 들어서야 퍼포먼스라는 말을 썼죠. 70년대에는 이벤트를 사이비 전위예술이라고 취급했고 실제로 나한테도 국립박물관 관장 명의로 공문도 왔더군요! 내용요? 뻔한거죠. 사이비 예술 하지 마쇼. 이런 내용이었는데 물론 관장이 보낸 것은 아니고 당시 군부독재정권이 시킨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남산에 끌려가 고생을 한 적도 있었죠. 그래도 당시에 활동을 계속한 것은 새로운 예술을 지속시킨다는데 큰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실험예술에서 역사인식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앞에서 얘기한 관계항 72, 물고문 사건과 모계사회의 문화위기를 표현한 '무제90' 여성문제, 그리고 1999년도 IMF시절 한쪽에서 고통스럽게 갇혀 있는 사람과 한 여인이 옥상에서 웃고있는 장면을 대비시킨 모습 등 이건용의 예술에는 항상 사실이 있다.
퍼포먼스는 리허설이 없다
"옛날에 다빈치 같은 조각가는 행위자가 어떤 관념을 설정해서 이렇게 봐라 식으로 약간 강요하는 뜻이 있잖아요. 하지만 퍼포먼스 같은 현대예술에서는 일방보다는 다양한 효과를 얻기 위한 쌍방간 소통이 더 중요합니다. 즉 작가와 관객이 함께 창조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때로는 작가가 예상치 못했던 효과를 새로 만들어내기도 하죠. 바로 연극과 퍼포먼스가 다른 점이 그건데요, 연극에는 연출 대본 반복연습 등이 있지만 퍼포먼스는 리허설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용이 45살때 동경 사운드 팩토리 전문이벤트공연장에서 '나이세기'란 퍼포먼스를 했다. 행위자는 먼저 엄숙하게 하나부터 45까지 세고 멈춘다. 그리고 나서 이젠 관객들과 모두 같이 세자고 한다. 그럼 일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외국어 숫자들이 한 공간에서 들려오다가 45에 딱 멈추게 된다. 여기에서 관객들은 궁금증이 난다. 왜? 45란 숫자에서 멈출까? 행위자가 이유를 '내 나이가 45살이거든요' 알려주고 이젠 각자 자기의 나이만큼만 세기로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40즈음이면 몇 명 되지 않고 50이 넘어서 유일하게 한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단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 나이만큼에서 딱 멈추니까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한 공간에서 '나이'라는 매개를 통해 그들만의 새로운 관계맺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나이세기를 통해 앞으로 남은 생에 대한 각자의 희망이나 의지를 공감하는 새로운 관계, 대본 없는 퍼포먼스만이 가능한 창조성일 것이다.
실험예술도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이건용은 우리나라의 실험예술분야에 대해 우려하는 바가 크다. 너무 감각적으로만 치우치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인데 요즘말로 엽기성이 과하게 강조되고 있는 현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시시각각 문화가 변하고 사람의 사고들이 변하는데 행위예술도 금방 주제나 형식면에서 빠른 변화를 보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체계가 부실하니까 매일 외국의 것만 따라하는데 익숙해지고 있거든요, 자기검증이 부족하다고 할까요?"
현재 우리나라 대학교의 미술분야는 동양화, 서양화, 조각, 목공예 등의 전공분류가 되어있다. 여기에서 이건용의 전공나누기에 대한 고견을 듣는 것도 우리 현대미술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큰 갈래로 평면예술, 입체예술, 뉴미디어아트로 나눈 다음 평면은 동양화 서양화, 사진 쪽으로 세분화시키고 입체는 조각, 설치, 오브제 같은 전공으로 분화시킨다. 그리고 컴퓨터를 이용한 CG나 3D, 애니메이션 등 뉴미디어 분야 등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각자 전공교육을 확실히 시킨 다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서로 연계를 시키는 거죠. 예를 들어 설치를 전공한 학생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새로운 설치장르를 시도할 수 있고 또 평면을 한 학생들도 자신의 전공을 응용한 새로운 내용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실제 제가 아는 어느 미술가는 생태학에 남다른 조예가 있는 분인데 남들이 미술과 생태학이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면 그 사람은 작품을 보여주죠. 곰팡이나 이끼를 이용해 작품을 하는 분인데 살아있는 자연 전체가 그 사람의 작업공간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예술은 '우리' 안에 있다
난해한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와 행위예술가 이건용 사이의 관계맺기는 소박하고 솔직했다.
"행위예술가는 글쎄요 삶 속에 묻혀있는 것, 평소에 아무도 그 가치를 몰랐던 부분을 끄집어내어 예술적인 소품으로 현상 속에서 알게 해주는 사람? 그리고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앞쪽에서 힌트를 주는 사람 정도라고 할까요!"
이건용 교수의 작품은 오는 2월 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사유와 감성전'에서 회화중심의 측면 설치미술로 만나볼 수 있으며 1월 27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 물(水)을 주제로 한 회화와 설치가 준비되어 있다. 또한 같은 장소에서 1월 11일 오후 6시부터 물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가 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