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 | [문화저널]
문화의 시대를 읽는다
특별대담-2003 문화희망(2005-01-07 13:40:26)
새해 새 아침, 아주 특별한 메시지를 담았다.
전북지역에서 활동하다 서울로 올라간 화가 임옥상씨와 서울대 사회학과 박명규 교수를 문화저널 편집위원인 전북대 영문과 이종민 교수가 만났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이루어진 새해 대담에서 참석자들은 구호와 선언처럼 떠돌고 있는 '문화의 시대', 그 허실을 짚어가며 눈에 보이는 '문화 상품화'의 강박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일상과 삶이 담긴, 내용에 충실한 문화의 시대를 열어가자고 제안했다.
문화의 지형을 바꾼 디지털과 인터넷 문화 역시 중요한 화제였다. 아날로그의 감성과 직접 소통, 그리고 광속에 가까운 디지털의 파급력이 조화를 이뤄 문화를 변화시키고 다양한 문화적 양태를 창출해 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이들은 전시행정과 국가 홍보 차원에서 문화의 범주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획일화 된 문화 상품을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고 있는 지자체의 문화 행정을 비판하고, 이러한 비문화적 행태는 문화 압력 단체의 활성화로 막아내야 한다는 주장은 새로운 화두다.
사람과 사람의 삶 속에서 자유롭게 형성되고 깊이 있게 전파되는 진정한 문화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 '2003 새로운 문화의 해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묻어난다.
이 :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주에서 활동하다 지금은 서울에 계시지만, 지역 문화와 <문화저널>의 활동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계신 두 분을 모시고 오늘 '2003 문화 희망'이라는 다소 벙벙한 주제로 말씀을 나누게 됐는데요. 화가로서, 또 사회학자로서 문화를 보는 시각이나 21세기 문화의 전망 등에 관한 견해를 풍성하게 제기해 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신년호를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문화에 대한 이해와 전망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요즘 지방분권의 당위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지방 분권화 시대를 대비한 <문화저널>의 방향, 그리고 세계화와 지방화라는 대립된 구호가 공존하는 시대에 '문화의 시대'가 지니는 의미와 방향을 중심으로 말씀 나눠볼까 합니다. 또 21세기 '새로운 시대'에 돌입한 우리나라의 문화 지형이 어떻게 변화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도 함께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임 선생님은 올해 매향리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벌여 주목을 받으셨는데요. 다음 화두는 무엇인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임 선생님께 지방 분권을 주제로 본격적인 작업을 벌여보시면 어떨까 제안을 드린 적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임 : 저에겐 그게 간단치 않은 문제인 것 같아요. 지방 분권에 대한 주제를 작품으로 어떻게 형상화 해 낼 것인가가 만만치 않은 고민거립니다.
이 : 지방분권의 문제는 주제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예술활동 자체의 '지방분권화'가 더 시급한 게 아닌가 해요. 말하자면 지난번 전시회에서 전남에서 온 한 여학생이 제기한대로 지방에서도 선생님 전시회나 작품활동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지요. 임선생님 스스로 대중적인 퍼포먼스 등을 통하여 메시지나 사회의식을 일반에 확산시키기 위해 애써오셨는데요. 이런 활동을 서울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도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요, 요즘 문화의 시대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고 있는데, 우선 임 선생님이 생각하는 오늘날의 문화, 어떻게 보십니까?
문화의 시대, 문화 상품화만이 능사 아니다
임 : 우선 문화의 시대라고 했을 때, 오늘날 이야기하는 문화와 과거의 문화는 그 의미가 달라져야 할 걸로 봅니다. 과거엔 근대 이후 개인을 존중하면서 개인에 대한 전문성이나 고급문화 쪽에 포커스를 맞췄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오늘날 문화의 시대를 얘기
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개개인 각자가 갖고 있는 생각과 뜻을 담기가 어렵단 말이죠. 세계는 다변화 다양화되고 있는데, 과거에 있었던 문화에 대한 개념만으로 이런 변화들을 담아낼 여지가 협소하다는 겁니다. 왜냐면 그것에 대비하거나 준비해오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지금 고급한 문화 향수나 특수 계층의 향유거리를 일반인들에게 보편화해 적용시키면서 그걸 누리지 못하면 비문화적이라고 비난을 한단 말이죠. 이건 오히려 문화의 시대를 역행하는 비문화적인 행태라고 봐요. 얼마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달에 미술 전람회에 몇 번 가느냐고 물었더니, 1년에 한 두 번 가는 사람도 가뭄에 콩 나듯 하고 평생 전시장 한 번 못 가본 사람이 80~90%라 해도 과언이 아니더란 말이죠. 그렇다고 문화 전문가들이 이런 사람들과 어떻게 일하느냐면서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야깁니다. 작은 단위의 목적 지향적인 모임, 공통의 커뮤니티를 가지면 그 나름의 문화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고 보고,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문화의 시대가 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전문가가 아니면 문제 해결이 안된다는 식은 곤란하다는 겁니다.
이 : 어찌 보면 문화의 시대라는 말은 구호적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 아닌가 해요. 문화가 돈이 될 수 있다는, 말하자면 문화산업이나 문화의 상품화 등을 강조하면서 부각되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헐리웃의 <쥬라기 공원>처럼 좋은 영화 한 편이 자동차 수 백대를 판 것보다 더 큰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문화의 시대라고 규정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임 : 문제는 문화와 문화 상품이라는 영역을 과연 접목시킬 수 있느냐 하는 건데요. 말은 되지만 사실은 접목시킬 수 없는 부분이라고 보거든요. 결국 자본주의 말기 상황이 그런 말을 만들어 낸 것 같아요.
이 : 정부에서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정책적으로 문화산업이나 문화의 상품화에 많은 예산을 쏟아 붓고 있는데요, 문화의 시대를 가꾸자고 하지만 속내는 상업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가 해요. 전통문화의 상품화, 관광 등 문화를 팔아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임 : 그래요. 한마디로 문화는 곁가지고 '돈벌자'가 목표란 말입니다. 문화적 성숙도가 자연스레 생활이나 상품으로 흘러 들어가 구매력을 갖게 되는 게 아니라, 팔 목표를 우선 내세우고 거기에 자꾸 짜 맞추려고 한단 말이죠. 애니메이션도 일본을 넘어서자고 목청을 높이지만, 사실 우리는 토양이 안돼 있거든요. 우리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저급문화로 눌러놨으면서도 이제 상품이 되는 시대가 오니까 갑자기 일본 만화 따라잡자고 나오는 거예요. 우리는 한다면 하는 민족이니까 (웃음) 자본을 투자하면 빠른 시일 내에 일정 궤도에 오를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그 속에서 시행착오와 문제점이 발생되는 건 너무도 당연합니다. 한마디로 선후가 바뀐거죠.
박 : 문화의 시대가 제기된 배경에는 두 분 말씀대로 우선 상품화하려는 의도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 같은데, 그 배후에는 무거운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났다는 의식도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봐요. 탈냉전 이후 비정치적인 부분이 주목되면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해 활발히 제기된 영역이 문화라는 건데, 무겁고 거시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욕구가 문화의 시대를 끌어당긴 중요한 요소라고 봐요. 여기에 임 선생님이 말씀하신 상업화 논리가 결합한 것이 최근의 문화산업논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본주의의 상품논리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탈냉전 상황에서의 새로운 문화욕구가 문화 영역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데 긍정적인 조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여가 시간이 늘어나고 경제적 여건이 향상되면서 일반인들의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가 크게 증대했다는 것도 또 하나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했을 것이고요.
임 : 문화상품의 시대적 요구는 틀림없이 있었고, 고급한 문화라 해도 문화가 늘 상품이 되어왔긴 해요. 그러나 문화가 상품화되는 건 극소수의 일이고, 상품이란 게 결국은 생산자와 감상자를 연결하는 매개거든요. 얼마나 조직화된 매개를 만드느냐가 관건이죠. 그래서 그 시스템을 잘 이용하면 상업적 성공을 넘어서서 얼마든지 문화로서의 가능성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음반시장은 복제 시대를 만나면서 대대적으로 유통 가능한 상품으로 자리잡을 수 있지만, 미술은 상황이 좀 다르잖아요. 미술 작품은 복제를 통해선 감상이나 소장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품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단 말이죠. 상업적 시스템에 의해 대중화를 성공적으로 일궈내기 위해선 대중의 요구를 잘 읽어낼 수 있어야 하겠죠. 상품의 경영이나 유통시스템은 문화 통로로서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고 봐요.
박 : 상품유통이라해도 재래시장 형도 있고 인터넷 마케팅형도 있어서 구분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시골까지 대형할인마트 등이 들어서면서 모든 상품 정보가 통합되고 있어요. 앞으로 이런 현상들이 더 가속화될텐데, 그 속에서 제래시장은 다 망할 수도 있지요. 그렇게 되면 문화 상품 역시 획일화된 시장에 완전히 먹혀 버릴 것 같은데, 음악도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CD 제품이 전국을 휩쓸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문화 쪽에서 시장과 상품 논리를 활용하면서도 일원적인 가격 매커니즘에 의해서 지배당하지 않는, 각 장르나 각 부분의 자율적인 유통망을 찾거나 만들어가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임 : 상품 논리에 문화가 복속돼 획일화될거란 우려가 없지 않아요. 신자유주의 논리와 비슷하게 말이죠. 하지만 문화가 상품 논리와 어떻게 긴장관계를 갖고 경계해 나갈 것인가가 과제입니다. 상품 논리를 되받아치거나 역이용해 어떻게 문화적 방식을 구현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온 거죠.
21세기 문화지형을 바꾼 디지털과 인터넷
이 : 그 대목에서 문화 지형의 변화가 읽혀지는 부분인데요. 예전 같으면 문화 예술을 생성해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단 말이죠. 소비자와 만나는 일 역시 쉽지 않은 부분이었고요. 예를 들어 옛날 같으면 음반 제작은 제작사를 통해야만 가능했지만, 지금은 언더그라운드라 해도 일정한 수준이나 의지가 있으면 얼마든지 제작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잖습니까? 특히 인터넷을 통해 유통과 제작이 훨씬 더 쉬워졌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터넷은 문화의 시대를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중요한 조건이 아닌가 해요. 인터넷 시대에는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져 다른 경로를 통하지 않고도 직접 유통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임 : 아, 그것 참 좋은 지적입니다. 광화문 촛불시위나 월드컵 응원, 그리고 '노풍'이 일 때도 제도언론이 아니라 인터넷이 그 분위기를 주도했지 않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요. 한편으론 헤게모니를 인터넷에 빼앗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예술도 그렇습니다. 미술 쪽도 인터넷에 맞는 미술이 등장하고 있거든요. 플래시 아트나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등장하고 있으니까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인터넷에서 소통하는 게 매우 직접적이면서도 그 파급효과가 엄청나다는 겁니다. 파급력이 거의 광속에 가깝다는 느낌인데요. 저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인터넷이 이미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상상력의 보고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박 : 인터넷 매체가 굉장히 중요해진 건 사실이예요. 인터넷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하겠지만 시장의 도구로 기능하는 부분도 커지고 있지요. e-마켓이나 e-비지니스 등이 대표적이지 않습니까? 생산자와 소비자가 독자적이고 직접적인 유통구조를 갖추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해지면서 지난번 소리바다와 같은 논란의 여지가 생겨날 가능성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림 스캔을 받거나 음악 CD 역시 아주 쉽게 복사해서 유통되긴 하지만, 법적으론 여러 문제가 파생되지요. 그렇게 되면 작가들도 저작권 운동을 벌이거나 하는 식으로 부딪히게 될 문제가 꽤 있을 것이구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겠지요.
이 : 문화의 시대라는 말은 문화산업적인 측면에서 제기됐지만, 그게 먹혀 들어가는 건 대중적 수요가 그만큼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 수요의 실질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말이죠.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유통에 있어 인터넷이 중요한 위치로 등장했다는 점, 정치 시대에서 탈정치 탈이념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는 점 등이 지적되었고, 이 과정에서 그것의 문제점까지가 자연스럽게 제기되었는데요. 특히 인터넷, 디지털 시대에 따른 문화 지형의 변화가 무시할 수 없는 파급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기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저작권 문제도 복잡할 것 같은데...
임 : 디지털과 아날로그적인 게 지금은 매우 대립적으로 비쳐지는데 사람의 특정한 감각이나 기술만이 유용하고 활용될 소지가 높다고 보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요. 또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 아날로그적인 것까지 모두 다 흡수할 거라고 우려하는데, 한편에선 디지털이 한계에 부딪히면 다시 아날로그로 회귀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 있거든요. 어떤 한 가지 포맷에 사람을 묶어두는 것은 사람들의 정상적인 감성 작용이나 본능을 해치게 되고, 결국 사람은 자연스레 이걸 다시 회복하려는 힘을 발휘하게 될 거란 말이죠.
이 : 디지털 문화가 인간의 삶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연결되는 것인가요?
임 : 그렇죠. 촛불시위는 국민의 새로운 힘이 인터넷을 통해 발현된 긍정적인 경우지만, 디지털 문화가 보편화되면 자연과 합일하고 호흡하는 기회는 적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게임이나 시뮬레이션 세계에 빠진 아이들에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어요. 프랑스는 초등학생들에게 컴퓨터를 못 쓰게 규제를 한다고 해요. 이건 우리에게 시사점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이 : 사이버가 실질 사회를 대신해 버리는 게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겠는데요, 컴퓨터 세계가 더 좋다고 느끼는 거죠. 제 아들만 해도 축구를 좋아하는데 실제 잔디에서 뛰는 것이나 텔레비전에서 중계되는 것을 구경하기보다는 컴퓨터 속에서 스스로 게임을 하는 것을 훨씬 더 흥미로워 하여 걱정이 좀 되거든요. (웃음)
박 : 그렇더라고요. 그래픽이 얼마나 리얼한지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나운서 중계까지 아주 현실적으로 진행되는데 기가 막히더라고요.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문화의 시대를 이끌어 가는 주요한 조건이 된 건, 우리 사회가 고도 소비사회로 진입했다는 중요한 변수가 작용된 결과라고 봅니다. 절대 생존과 관련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니까 문화적인 욕구가 더 커지거나 충족시키고 싶은 부분이 다양하게 나서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문화산업의 대상이 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서 이러한 현상이 문화의 획일화를 부추길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매체가 좀 더 다양한 부분을 보여주고 사람들의 독특한 문화를 소개하면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도록 만들어줘야 하는데, 현재로선 전혀 그렇지 못하거든요. 옷이든 음악이든 어떤 유행이 한바탕 휘저으면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돼서 문화를 서열화 한단 말이죠.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실현하고자 하고, 또 그런 조건은 갖춰졌는데, 그게 여의치 않은 건 문화의 우열을 만들어 내 그걸로 서열을 매기게 되고, 한쪽 측면에 대한 요구나 수요가 많아지다 보니 자연히 돈이 없으면 충족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문화가 다양하게 보급되거나 구현될 수 있는 아이템이 풍부하게 제공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니, 차분히 바람직한 유통이나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게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까 싶어요.
임 :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봐요. 어쨌든 제가 볼 때 문화의 시대 운운하는 건 결국 문화를 상품 논리로 끌어들인 거라고 봐요. 사람들로 하여금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문화를 논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상품으로서의 소비를 소비하게 하느냐의 관점에서 문화를 끌어들이게 됐다는 거죠.
축제만 양산하는 선심 행정, 문화압력단체로 막자
이 : 예. 문화의 상품화나 상업주의도 문제지만, 또 하나 심각한 것은 자치단체에서 선심행정의 중요 수단으로 문화정책을 이용하고 있다는 건데요. 문화의 시대라는 핑계로 단체장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각종 문화시설을 짓거나 수많은 축제를 양산해 내고 있거든요. 구체적인 운영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 없이 큰 규모의 문화시설을 덩그렇게 지어 운영비 압박을 초래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체성도 불분명하고 주민들의 참여도 거의 없이 예산만 축내고 있는 축제가 비일비재한 것도 참으로 심각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임 : 그게 어찌 보면 사람들의 입을 막는 거예요. 문화에 대해 무식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꼼짝 못하게 한단 말이죠. 지금 이런 문화 폭력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거든요. 제가 매스컴 등을 통해 주장한 것이 시민 문화권이란 건데요. 공민의 개념이 들어와야 한다는 거예요. 이런 속에서 문화권, 다시 말해 문화적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문화권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대해 고민하다 보니 결국 공공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공공문화가 확산되고 활발하게 진행되는 사회로 진입하는 길, 문화예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아보는 작업이었어요. 좁게는 공공미술이지만 저 나름대로는 공공사회 프로젝트를 꾸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정치 사회적 접근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미술이라는 영역에서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죠.
이 : 공공미술에 대한 개념이 그리 익숙치는 않은데요, 부연 설명을 좀 해주시죠.
임 : 좁게는 건물 앞 조각상이나 공원 또는 도시에 설치된 문화예술 작품들을 말하는 건데요. 결국 공공적 마인드를 통해 성공적인 문화를 새롭게 선보이고 만들어내는 것인데, 제가 꿈꾸는 사회는 미술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한 가지 프로젝트를 도모하고 머리를 맞대는 거예요. 이 자리에 왜 이 작품이 와야 하는지 사회학자는 사회학자대로 미술가는 미술가대로, 그리고 건축가는 건축가대로 공청회 등을 통해 활발하게 제기하고 고민하는 거죠. 서양에서는 이미 널리 확산된 개념이거든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문화에 대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 이게 제가 주장하는 공공미술, 공공사회 프로젝트의 핵심이예요. 우리가 세금을 내고 사는 이 거리에 왜 이 조각상이 서 있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문제 제기할 수 있는 권리, 그런 거죠.
박 : 나름대로 이 자리에 오느라 인터넷을 뒤적여 봤는데, 디제이정권의 문화정책이 크게 문화생산자들에 대한 지원이라는 한 축과 문화산업 육성이라는 또 한 축의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진행돼 왔다는 내용의 글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실질적인 문화정책은 후자만 있었지 전자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는 비판을 봤어요. 그걸 보면서 드는 생각이 현 정부 들어와서 국가가 자기 위세나 홍보를 옛날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문화가 그런 면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정부가 전국에 엄청난 문화예술 지원금을 지원했는데, 그러다 보니 가시적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강박이 드는 거죠.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찾다보니 건물을 짓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결국은 그 속에 뭘 넣어야 할지 건물을 짓고 난 뒤에야 고민을 시작한다는 거예요. 또 천편일률적인 축제에 엄청난 돈이 쓰이고 말이죠.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것 때문에 문화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요. 가만 내버려두면 동네마다의 일상과 문화가 자연스레 형성되고 발전해 갈텐데, 문화에 엄청난 돈을 들여 획일화하니까 결국 똑같은 축제를 양산해낸다고 비판하는 거죠. 물론 정부가 해야 할 역할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면 안되겠죠. 돈도 많고 정책적·법적 권한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런 식으로 관 중심이나 업적 중심의 문화를 창출해 내는 것은 오히려 역작용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분도 발굴하거나 보존할 자신이 없으면 발굴하지 말아라, 하는 이야기도 있었잖아요. 제대로 된 문화감각과 정책을 입안할 능력이 없으면, 그저 인프라 구축을 도와주는 수준으로만 가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임 : 맞는 말씀이고, 그래서 문화 압력단체가 필요합니다. 문화 쪽에서는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곳이 문화개혁시민연대뿐이란 말이죠. 거긴 이론가가 많고 주로 정책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참여를 이끌어내고 독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화는 지금 무풍지대나 다름없어요. 제가 알기로 전국적으로 경기도만 문화 감리단을 꾸려놓은 상태거든요. 문화저널도 문화감리단을 만들어 백서도 만들고 감리 역할을 대행해주면 어떨까 싶어요. 돈만 허공에 뿌리고 그 결과에 대해선 보고서 한 장이 없단 말이죠. 시민들 독려해서 문화압력단체 꾸리고, 지역 나름대로 자부심이 될만한 작은 단위의 아마추어리즘을 곳곳에서 살려내야 해요. 문화가 획일화되면 결국은 암흑의 시대나 마찬가집니다.
이 : 문제점에 대한 이야길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대책에 관한 것까지 논의가 되고 있는데요. 좀 전에 박 선생님께서 문화의 시대를 주도한 게 정부의 홍보 차원이 아닌가 하셨는데, 조금 더 확대하면 국가 홍보차원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한 나라가 일정한 경제적 수준에 이르게 되고 국제적으로도 일정한 위상을 획득하게 되면 국가 자존을 내세우기 위한 문화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치게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도 지금 그런 시대를 맞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영국은 19세기 말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니까 영국학(the English)을 대대적으로 발전시켜 영국의 전통문화나 문학에 연구하게 되거든요.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는 망발도 그때 나온 것 아닙니까? 미국의 경우에도 3-40년대 세계의 열강으로 성장하면서 미국학(the American Studies) 붐을 조성하거든요. 우리나라도 OECD에 가입하면서 인문학이나 문화 부분에 상당한 투자를 하게 되는데 이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 유행하고 있는 문화의 시대 역시 이런 국가 홍보 차원에서 조장되고 있는 면이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박 : 홉스본이 주장했던 게 전통의 창조라는 부분인데, 그건 근대의 중요한 특성이었단 말이죠. 프랑스나 독일도 제국주의를 실천한 인물 중심으로 동상을 만들어 전국에 국가적 상징으로 확장시키곤 했는데, 요즘은 이런 태도들이 부정적 국가주의와 연관이 되거든요? 국가가 정치적 상징이든 문화적 상징이든 그걸 강하게 내세워 국가의 프라이드를 내세우려는 태도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각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공동체의 상징물을 확보하는 건 중요한 부분이라고 봐요. 물론 그 상징물의 내용이 뭔가가 중요한데 그게 결국 국가관에 입각해 부국강변론으로만 채워지게 되니까 문제가 된단 말이죠. 제대로 된 공동체의 상징을 잡아내는 것, 그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정부가 문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상징을 찾아내거나 채우진 못한 것 같거든요.
임 : 예. 맞는 말씀이에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될 뭔가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어요. 문화의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미국문화에 경도돼 있고 그것이 언어에까지 파급되고 있잖아요. 이 때문에 자국 문화에 대한 콤플렉스가 알게 모르게 확대 재생산되고 있거든요. 다행히 월드컵을 계기로 미국 상품 불매운동도 펼쳐지고, 국민적 합의를 통해 이런 현상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조성되고 있잖습니까? 스크린 쿼터제 주장하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지금은 우리영화가 영화 시장의 50% 이상을 넘어서는 다행스런 측면도 있고요.
"모든 이가 예술가"…문화 획일화를 방지하는 힘
박 : 저는 광화문 촛불시위가 참 문화적이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내용이 정치적이든 비정치적이든 시위 방식이 아름답게 표출되는 걸 보고 우리사회의 문화 역량을 보여주는 것 같아 감동적이었거든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것이 태극기라는 상징으로 귀일되는 듯한 장면이었어요. 이게 자칫 국가주의로 비쳐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태극기 이외에 평화를 상징하는 뭔가가 함께 등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죠.
임 : 맞아요. 오늘 한겨레신문에서 박노자씨의 글을 봤는데, 역시 잘 썼더라고요.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으로만 머물지 말고,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에서 희생된 수많은 효순이와 미선이를 생각하면서 세계 평화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박 : 저는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걸개그림 같은 게 나왔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이 : 예. 그런 생각까지는 미처 못했던 부분이긴 합니다. 말씀 나누면서 미흡한 부분에 대한 이야길 좀 더 보충했으면 하는데요. 문화의 시대,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몇 가지 지적이 됐는데요. 특히 예술 분야에 있어서 누구나 쉽게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면서 여기에 필요한 조건이나 전제되어야 할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임 : 제가 말하는 문화 소비자는 상품을 구입하는 선에 머무는 수동적인 수준이 아니라 밑에서 뭔가가 형성돼 위로 올라가는 적극성을 띠어야 한다는 겁니다. 문화 획일화를 극복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가 혼재되거나 구분이 필요 없게 되어야 한단 말이죠.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일 수 있다, 라는 기본 전제가 필요하단 겁니다.
이 :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요즘 문화나 예술 생산에서 지나치게 아이디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아이디어 하나면 엄청난 상품이 될 수도 있으니까 오랜 세월동안 갈고 닦던 옛 사람들의 장인정신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일정한 공력을 전제로 하는 노작들을 만나보기가 힘들어지지 않나 싶어요.
임 : 물론 그렇죠. 그것도 경계해야겠지만, 반대로 일품주의의 부작용도 있잖습니까? 나 이외엔 아무도 못 만든다 하는 식, 물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아이디어만 갖고 뭔가를 구축하거나 형성해 가는 것도 문화예술이 자칫 가벼워질 우려가 있는 것이죠.
이 : 예.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오늘 문화의 시대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제기되고 논의됐는데요. 끝으로 문화의 시대, 지방화 시대를 맞아 문화저널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지역 문화의 전망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 나눴으면 합니다. 임 선생님이나 박 선생님은 전주에서 활동하다 서울로 옮겨가셨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 시각으로 전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박 : 저는 서울로 올라온 지 이제 8년짼데, 우선 전주에서의 생활이 서울에 와서도 저에게 큰 자산이 되었단 생각을 자주 합니다. 80년대와 90년대의 시대 차이인지, 아니면 전주와 서울의 차이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분명한 변화 중의 하나는 세상과 사회를 다양하고 폭넓게 보게 됐다는 거예요. 물론 두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만,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중앙과 지방이 단절적으로 가는 건 중앙도 지방도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타 지방이나 중앙과의 소통은 중요하다고 봐요. 추상적인 이야기 같습니다만, 뭔가 지방적인 걸 새로운 시대감각과 연결시키고 변화시키면 충분히 가능한 틈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저널이 전주의 문화적 역량을 결집하고 문화를 소통시키는 구심점으로 자리해 왔잖습니까? 그런 구심이 존재한다는 건 없는 곳과는 천지차이라고 봐요. 여러 가지로 힘이 들겠지만 문화저널이 객관적으로 할 수 있거나 해야 될 위치는 참 큰 것 같아요. 지방적인 것과 중앙적인 것, 로컬과 세계적인 걸 결합시키는 데 시각을 넓혀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임 : 저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전주가 많은 영향을 줬다고 봐요.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한계가 있듯, 또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가 그 사람을 만들어내듯, 지역도 다른 지역과 어떻게 유대하느냐에 따라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건 능력도 없이 쇼맨십만으로 지역 축제나 행사를 꾸리는 건 문화압력단체에서 철저히 막아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문화저널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 예. 여러 가지 조언과 부탁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큰 틀거리는 문화의 시대에 대한 당위와 그 문화의 시대를 보는 제대로 된 시각과 해석, 그리고 바람직한 대안을 다시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임 선생님과 박 선생님 긴 시간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오늘 저희가 나눈 이야기들이 문화의 시대를 올바로 해석하고 현명히 대처할 수 있는 좋은 지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말씀 나눠주신 두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정리 - 김회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