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 | [문화칼럼]
하는 일마다 뜻한 바대로 이루시라
김병기 전북대 중어중문과 교수(2005-01-07 13:36:53)
萬事如意!
뜻대로 이루소서!
하는 일마다 모두 뜻한 바대로 이루라는 축원이 담긴 이 '萬事如意'라는 말은 예전에도 많이 써 왔고 지금도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새해 인사말이다. 뜻이란 무엇인가? 욕망과 소원,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바로 뜻(意)이며 그 뜻대로 다 이루라는 축원의 말이 바로 '如意'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만사여의'라는 새해 인사말은 함부로 쓸 인사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착한 마음과 훌륭한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야 그 착하고 훌륭한 뜻을 이루라는 의미에서 '만사여의'라는 말을 얼마든지 쓸 수 있겠지만 악과 탐욕과 질투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만사여의'라는 인사말을 써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만약 남을 속여서라도 부자가 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만사여의'라는 인사를 했다면 그것은 곧 그 사람에게 "뜻한 바대로 사기를 잘 치도록 하시오"라고 말한 셈이 될 것이고, 누군가를 몹시 미워하여 죽이고 싶다는 속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만사여의'라는 새해 인사를 하였다면 그것은 곧 "새해에는 그 미워하는 사람을 꼭 죽이도록 하시오"라는 말을 한 셈이 되는 것이니 어디 '만사여의'라는 인사말을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만사여의', 이 말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착한 마음과 고운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서만 사용이 가능한 말인 것이다.
'如意'는 '뜻한 바와 같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외에도 특별한 물건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막대기 끝을 손톱모양으로 깎아서 등을 긁는데 사용한 물건, 오늘날로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속칭 "효자손"이라고 부르는 물건을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여의'라고 불렀다. 이 여의는 중국의 戰國시대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것을 여의라고 부른 까닭은 평소 맨손으로는 긁기 어려운 등을 뜻대로 잘 긁어 주는 물건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여의는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르러 죽림칠현과 같은 高士들이 늘 손에 들고 다니면서부터 사회에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마치 우리나라 조선 시대의 선비들이 합죽선을 들고 다니듯이 위진남북조 시대의 고사들은 여의를 들고 다녔던 것이다.
'如意'는 본래 나무로 만들었었다. 나무 중에서도 비교적 결이 아름다운 나무를 사용하거나 혹은 멋지게 자란 뿌리를 사용하
기도 하였고, 때로는 대나무나 대나무 뿌리를 이용하여 소박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돈도 많고 신분도 높은 사람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물로 이용되면서부터 차츰 장식이 가해져서 明, 淸 시대에는 여의 자체가 옥으로 바뀌고 그 위에 각 종 귀금속을 장식하게 되었으며 용도 또한 원래의 '효자손' 역할은 없어지고 탁자나 책상 위, 혹은 장식장에 넣어두는 장식품으로 변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이 여의가 뇌물성 선물로 이용되면서 순금으로 만든 여의, 진주로 수놓은 여의, 각종 보석으로 덮어씌운 여의 등도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청나라 황궁의 여의에 대한 사치는 대단하여 궁중의 귀인, 궁녀, 환관은 물론 고위 관료들도 경사를 핑계삼아 호화스런 여의를 만들어 서로 기증함으로써 겉으로는 송축을 표하고 속으로는 뇌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당시 궁중에 경사만 있으면 여의를 만드느라 북경 시내의 금은 보석 값이 폭등하곤 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여의가 뇌물로 둔갑하자, 가경(嘉慶)황제는 특별히 여의를 금할 것을 명령하면서 신하들을 향해 "경들은 ‘如意’를 바치지만 짐은 오히려 그것을 ‘不如意’로 볼 것이오."라고 하였다고 한다. 순박했던 사람들의 뜻을 따라 여의롭게 등을 긁어주던 여의가 사치와 향락을 탐하고, 뇌물을 바쳐 출세를 꿈꾸는 못된 사람들의 뜻을 따라 호화로움을 극을 향하다가 결국은 '불여의'한 물건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萬事如意!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의 그 좋은 뜻을 따라 만사여의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도둑놈의 뜻을 다라 만사여의하면 그 세상은 도둑놈의 세상이 될 것이고, 사기꾼의 뜻을 따라 만사여의 하게 되면 그 세상은 사기꾼의 세상이 되고 만다. 한 때 우리 사회는 정말 도둑놈이나 사기꾼의 뜻에 따라 만사여의한 적이 있었다. 대통령들이 수 천억의 돈을 착복하여 온 세상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고,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보다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잽싸게 이익을 챙기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하였고, 교통법규를 위반해서라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운전자를 기막힌 솜씨를 가진 운전자로 특별히 모셔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여의롭게 사는 세상은 결코 좋은 세상이 아니다. 착하고 성실하고 정의롭고 초지일관하는 사람들이 만사여의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게 바로 정의로운 세상이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무척 많은 의미로 다가오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정직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 이익을 쫓아 돌변하지 않는 사람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가슴이 뭉클하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대통령이 끝까지 착한 대통령, 정의로운 대통령, 상식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기를 빌고 그 대통령이 만사여의하기 만을 빌면 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착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정의로운 나라, 상식이 통하는 나라, 그리고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강한 나라, 어떠한 나라를 일러 강한 나라라고 하는가? 경제력이 강한 나라인가? 국방력이 강한 나라인가? 아니다. 바로 건강한 문화가 숨쉬는 나라가 강한 나라이다. 진시황의 진나라가 경제력이나 국방력이 약해서 망한 게 아니고 로마제국이 군사력이 약하여 망한 게 아니다. 문화가 건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했다. 황제가 女樂에 빠지고 관료들이 향락에 젖어 일하기를 싫어하고 백성들이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법망을 피하려고만 할 때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를 건강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를 건강하게 하려면 문화와 예술을 선도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뜻이 건강해야 한다. 문화예술인들의 뜻이 건강할 때 그 건강한 뜻을 따라 '여의롭게' 건강한 문화가 사회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문화 예술인들이 문화와 예술을 통하여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거나 문화와 예술을 빙자하여 사회의 저명인사로 행세하고 싶은 헛된 욕망을 갖는다면 그것은 이미 문화 예술인의 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사기꾼의 욕망이나 도둑의 야심과 다를 바 없는 속스러운 생각일 뿐이다. 예술을 함부로 상품이나 경제와 연결시키지 말아야 한다. 예술은 예술이고 문화는 문화일 뿐이다. 예술가들은 그저 열심히 예술활동을 할 일이다. 그러면 맑고 깨끗한 좋은 작품이 나오게 된다. 그런 좋은 작품은 작가가 나서서 부르지 않아도 작품 스스로가 돈을 불러오게 된다. 그리고 작품 스스로가 불러오는 돈을 통하여 문화산업은 저절로 융성해 진다. 이렇게 해서 건실한 문화산업이 자연스럽게 자리하는 나라, 그게 바로 강한 나라이다. 2003년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새 대통령도 뽑혔다. 문화저널의 가족 모두가 착하고 성실하고 정의롭고 건강한 뜻을 가지고 그 좋은 뜻을 따라 여의로운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문화저널 가족의 그러한 뜻을 따라 세상이 온통 성실함과 정의로움으로 가득 차기를 기원하도록 하자.
김병기 | 전주대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문화대학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북대 동양어문학부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연구기획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