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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 | [문화저널]
전설속 희망을 꿈꾸는 여정
구혜경 객원기자(2005-01-06 11:32:10)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습관처럼 세뇌되어진 말에 가을은 단어 하나만으로도 감정을 자극하여 사색하게 만들고 어디론가 떠나도록 충동질한다. 풍요로움과 빈곤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이 계절은 들녘의 색채들이 주는 뿌듯한 풍성함과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허전함에 나의 발걸음은 도심을 벗어나게 만들었다. 백제기행에 몸을 실은 이유도 그렇다. 역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기회도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을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공부와 여행을 다 만족하기 위한 일석이조를 꿈꾸는 것일지도. 마음 가볍게 여행길에 올랐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면서 작은 설레임도 느꼈지만 늘 그렇듯이 여행의 앞길은 흥분보다 차분함이 더 먼저 다가온다. 일정이 꽤 빡빡한 편이었다. 운주사, 쌍봉사, 소쇄원, 식영정 등 일박이일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냥 생각만 그렇다는 것이고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곳은 '운주사' 하나 뿐이었다. 예전에 운주사에 갔을 때 시간이 조금 비껴나 해가 저물어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서 운주사에 거는 막연한 기대감이 설레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절을 바라보는 운치는 해질녁만큼 좋은 때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운주사' 드디어 운주사에 도착했다. 오는 내내 버스안에서 예습을 하듯 여러 주변 정황을 설명해주시는 조법종선생님의 말을 꽉 붙들어 매고 기행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천불 천탑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운주사의 입구는 그 처음에서부터 돌부처들이 맞아주고 있었다. 길을 따라 들어가는 주변에는 너무나 평범하게 자연속에 묻혀 마치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듯이 주위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칠 것 같은 불상들이며, 탑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어느 동네에 들어와 마을사람들을 보듯 할아버지, 할머니, 남편, 아내, 아이부처 까지 친근하고 소박하게 보인다. 그 모양새도 형식이나 규제없이 제각각 평범하고 단순하게 처리하고 있다. 불상들이 반갑게 맞아 준 앞마당 처럼 넓게 펼쳐진 길목은 군데 군데 놓여진 불탑이며 불상들이 마치 현대미술의 설치작품이라도 되는 듯 멀리 보이는 절의 모습과 한 눈에 들어와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시작점에 있는 것이 보물로도 지정된 '9층 석탑'이다. 넓은 자연석을 놓아 하층 지대석 겸 기단석으로 삼고 그 위에 상층기단 받침을 3단으로 새긴 다음, 상층기단 겸 탑신을 올려 놓아 9층까지 이루었다. 초층의 탑신을 제외한 각 탑신 사면에는 능형(菱形)을 양각하여, 십자형 꽃무늬를 조각하고 옥개석 밑면 역시 사선문양을 양각하였다. 내 시선을 자극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불탑에 새겨진 문양들. 그 동안에 보아 온 탑에는 정교하게 부조로 조각된 불심 가득한 경전의 한 구절이라도 보듯 근엄해 보였던 것들이 이 곳에서는 전에 없던 문양으로 뭔가 새로움을 제시하는 듯이 보였다. 얼핏보기에는 정성이 부족한 듯도 하고 어설프게도 보이지만 이것은 분명 불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주변에 널려있는 불상에서도 보듯이 일률적으로 하고 있는 '지권인'의 수인(手印)처럼 포교의 대중화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듯 그 뒤로도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문양이 새겨진 탑들이 자리를 잡고, 탑의 거대한 기운에 대적이라도 하듯 중간에 자리잡은 '석조 불감' 또한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다. 보통 밖에 자리잡은 불상들은 그 모습 그대로만 드러낼 뿐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아 오랜 세월 풍파에 깍이고 깨져 자연스럽게 시간의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불심의 강도를 높이기라도 하듯 석조로 불감(佛龕)을 만들어 그 안에 불상을 모셔놓고 있다. 석조라서 투박한 느낌은 들지만 팔작 지붕 모양의 옥개석과 4각 석주(石柱)는 하나의 탑 형식을 보이면서 불상과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더욱이 예사롭지 않은 한가지는 후면에도 똑같이 불상을 안치하여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들 수 있지만 석문(石門)을 달아 여닫게 하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불심이라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석조불감의 후면 불상과 힘을 겨루고 있는 또 하나의 탑도 역시 눈에 띈다. 보물로 지정된 '원형 다층석탑'은 우리 일행들이 한참 허기져 있는 상태여서 그런지 모두들 햄버거처럼 보인다고 우스게 소리를 던져 한바탕 시원하게 웃을 수 있었다. 모양은 꼭 그렇게 생겼다. 그러나 불교에서 사각이나 팔각의 형태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마지막 형상은 원형으로 가게 되어있다는 우주적 조형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6층 까지 존재하고 있지만 옆에 흐트러져 있는 돌들이나 맨 위의 형상을 보더라도 아마 몇 층은 더 있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 맨 꼭데기는 부처만 올라갈 수 있다는 불법을 말하고자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드디어 운주사의 입구에 들어섰다. 대부분 사천왕상이 첫 인상을 맞이하고 있어 무서움으로 시작하지만 관광지라도 온 듯 아트샵과 찻집을 지나면 바로 절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맨 먼저 찾은 것은 대웅전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었다. 어느 소설가가 이 곳을 방문하고 풍경 추에 달린 물고기 형상이 없는 것을 발견하여 쓴 동화가 생각나 올려다보니 정말 양쪽 다 풍경엔 물고기 형상이 없었다. 정말 어디로 갔을까. 불심이 너무 깊어 승천한건 아닌지.. 잠시나마 감상에 젖어 지었던 여유로운 미소를 뒤로하고 다시 불심 안으로 들어갔다. 절을 둘러싸고 있는 뒷산에도 역시나 천불천탑에 맞게 산 구석구석 불탑이며 불상들이 제각각 다른 모양새를 하며 자리하였다. 이러한 불상들을 대표하듯 서쪽 산에는 거대한 '와불'이 누워있다. 전설은 여기에 숨어있었다. 천번째로 만들어진 이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미완성 석불이라는 말에 적잖은 실망감도 들었지만 만들어진 모양새나 거대함, 불심만은 그대로 전해왔다. 오히려 그냥 언젠가 이 와불이 꼭 일어날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와 그렇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희망하고 있었다. 운주사를 둘러싸고 있는 양쪽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하느라고 많이 힘들었다. 역시 공부하는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다. 이제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돌맹이도 예사롭지 않게 보여 이것이 바로 천불천탑을 만들던 불심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직도 운주사가 가지고 있는 신비로움을 다 발견한 것이 아니어서 뒤돌아 서는 발길을 부여잡는 기분이다. 아쉬움반, 웃음 반. 실망시키지 않은 '쌍봉사' 운주사는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허기진 배를 채워야하는 중대한 일정도 있어 일행은 능주로 행했다. 여기는 답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순전히 청국장과 함께한 맛있는 점심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다른 의미로 능주가 다가온다. 본이 능주였지만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지라 이름만으로도 낯설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음식으로도 유명한 전남이었지만 제대로 맛을 음미하지는 못하고 단지 허기만 정신없이 채워 포만감으로 '쌍봉사를 향했다. 굽이굽이 돌아 들어선 쌍봉사 입구에는 잘 다듬어진 연못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전설이나 의미가 부여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오는 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배려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한다. 여기로 온 까닭은 3층 대웅전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때마침 보수공사로 외관을 전혀 볼 수 없을만큼 공사 안전망을 설치해 놓았다. 단지 그 너머로 대략 파악만 해야할 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대웅전은 목조탑파(木造塔婆)의 희귀한 건축양식으로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구조물인 셈이다. 그 만큼 가치가 있는 위용있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게 너무나 서운함이 앞섰다.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된 것은 복원공사중이라 2층 지붕의 기와를 걷어내어 목탑형식의 구조물이 어떻게 올려지는지 내부 속사정은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것은 공사중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평생 실제로는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쌍봉사의 또 다른 볼거리는 절을 끼고 뒷산으로 올라가서 자리잡고 있는 '철감선사탑'과 '철감선사탑비'였다. 나에게 아쉬움 너머로 웃음을 준 것이 바로 이것이다. 통일신라시대의 부도 중에서 조식이 화려한 걸작품이라는 이 탑은 모양새도 그렇지만 새겨진 문양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다. 철감선사의 불심이 가히 짐작되는 이 부도는 상하 각부가 평면 8각형을 이루는 것은 통식(通式)에 속하지만 하단에 새겨진 구름무늬나 상단의 사자조각, 탑신에 새겨진 연화무늬며 옥개 추녀 끝 막새에 까지 섬세함을 놓치지 않고 새긴 연화문은 당시 조각의 대표가 될 만큼 훌륭하다. 대웅전에서 볼 수 있었던 장중한 느낌이 여기에서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 옆에 있는 '철감선사탑비'는 부도에서 보여지는 진지함과 대조적으로 유머러스하고 위트있어 보여 한숨 돌리게 만든다. 용두화 된 거북이의 등에 탑비가 올려져 있는 구성으로 그 표현이 매우 선명하고 정연하여 오랜 세월을 견딘 흔적은 잘 찾아볼 수가 없다. 이 탑비의 또 다른 매력은 성큼서큼 걸어가는 듯한 역동적으로 움직임을 보여주는 오른쪽 앞발의 들어올려진 모양새다. 이 표현 때문에 쌍봉사에 와서 두 번 웃음짓게 되었다. 아카데미 빌리지 '소쇄원' 이제 오늘의 기행도 거의 마무리에 접어 들고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감동과 즐거움을 맛보고 나니 피곤이 절로 배어났다. 어느덧 발길은 마지막 답사 지역인 소쇄원으로 향하고, 지친 발걸음은 그 무게가 천근만근이어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인지라 주저없이 나섰다. 길목 가득 메운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고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을 때 마다 무언가에 빨려드는 기분으로 들어서고 보니 언제보아도 역시 일품이다. 그러나 막연하게 감상하고 즐기기에는 담겨진 역사의 골이 깊어 보인다. 소쇄원은 기묘사화의 영향으로 양산보와 그 스승인 조광조가 낙향하여 만들게 된 곳으로 사화에서 파생된 신문학의 산실이고, 여러 중요 인물들의 유배지로도 알려져 있다. 이 정도의 유배지라면 할 만한 곳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왔다. 귀한 손님이 오면 묵었다는 '광풍각', 그 뒤로 주인 양산보가 기거했다는 '제월당', 그 앞으로 흐르는 개울과 바위로 조성된 작은 폭포는 아기자기한 한국식 정원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계정(溪庭)에 모여 그 옛날 논객들이 토론하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외에도 한껏 햇빛의 따스함을 머금은 '애양단愛陽壇'은 수줍은 여인처럼 아주 드러나지도, 감추지도 않은 적당한 자리에 잡혀져 있다. 우리 일행은 여기에서 새색시마냥 좋아라하며 기념사진도 찰칵!.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소쇄원 근처에는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 송순이 기거하면서 '면앙정가' 등 빼어난 가사를 남긴 '면앙정', 정철의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환벽당', 김덕령 장군의 일화가 있는 '취가정', 정원이 아름다운 '독수정' 등이 있지만 우리는 겨우 '식영정'만을 확인하고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짧은 시간 긴 여정을 마감하며 이로써 오늘의 기행은 마감이 되는 듯 싶더니 마지막 서비스로 하나 밖에 없다는 '당간'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후유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마무리가 되었다. 버스에 올라 지긋이 눈을 감고 오늘의 감흥을 되새겨 보았다. 전설이란 이런 것일까.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안에서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그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들고, 무엇이든지 억지로 만들거나 역행하지 않고 순응하며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드는 마음 자체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접어 들면서 슬그머니 꿈속으로 들어갔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환영에는 운주사의 와불이 일어나 걸어나오기도 하고, 풍경에 매달렸던 물고기가 날아다니기도 하고, 또 정자에서 시를 읊는 시인들의 모습이 서로 교차되며 아득히 전설속의 희망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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