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 | [수요포럼]
문화영상산업,리더십과 피플파워가 꽃 피운다
김회경 기자(2005-01-06 11:30:21)
마당 수요포럼 열 번째 순서 '전주시 문화영상산업 현실과 이상'이 10월 8일 전주정보영상진흥원에서 진행됐다.
최근 도시의 전통과 문화를 상품으로 만들어 도시 이미지 제고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이 다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전주시도 이 같은 흐름을 타고 도시 산업화 정책의 하나로 '영상문화'를 중요한 화두로 던져놓고 있다. 영상도시-전주에 대한 청사진은 전주국제영화제 개최, 전주정보영상진흥원 개원 등을 통해 구체적인 밑그림 그리기가 시작됐다. 특히 영화를 비롯해 애니메이션, 게임, 모바일, 캐릭터 개발 등의 영상문화와 소리·음식·한지 등 전주 고유의 전통문화를 문화산업 콘텐츠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문화산업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놓았지만, 성급한 '산업화'만을 쫓는 것 아니냐는 비판과 반감도 없지 않은 상황.
이날 포럼은 전주시가 내놓은 문화영상산업이 지역 현실과 정서에 부합되는 정책인지, 문화영상산업 발전을 위한 현실적 전략과 준비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문화영상산업과 함께 전북지역에서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문화콘텐츠의 가능성에 관해서도 참석자들의 의견이 이어졌다.
전주정보영상진흥원 이규창 원장이 발제를 맡고, 시민행동 21 이재규 대표가 사회를 맡았다. 이 자리에는 게임과 모바일 관련 업계 관계자들과 대학 교수 등이 참여해 문화영상산업에 뛰어든 업체들의 현실적 문제를 비롯해 전주의 도시 정체성에 관한 포괄적인 시민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지적 등이 폭넓게 이뤄졌다. 이날 포럼 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전문성의 부재?… 피플파워와 리더십이 먼저
전주시가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문화영상산업이 현재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새로운 청사진과 비전을 위해 어떤 점들을 보강해 나가야 할 것인지에 관한 정확한 현실 진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참석자들의 논의도 이 대목에서부터 출발했다.
'엔와이텔' 김병철 대표는 문화영상이 산업의 영역으로 들어온 이상, 사업상의 거래나 협상 등에 있어 비즈니스 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문화영상산업뿐만 아니라 상품을 만들어 거래를 하는데 있어서는 무엇보다 비지니스 정보나 능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지역의 현실이 제조업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서울보다는 비지니스 역량이 뒤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나 문화영상산업은 관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비지니스 상의 설득력 등은 떨어질 수 있고, 거래상의 관계나 협상면에서 불리한 점이 없지 않다고 본다. 지역적인 상황이나 토대 마련이 우선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보영상진흥원 이규창 원장은 "냉정하게 현실을 보면 그 점에 있어서는 서울보다 뒤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진단한 뒤 "하지만 서울은 여러 면에서 인프라가 풍부하다. 그렇게 따지면 전주가 절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진다고만은 볼 수 없다. 전문성은 이쪽으로 유입시키면 되는 것이고, 이런 전문적인 사람들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리더십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며 전문 인력을 지역으로 끌어와 체계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지역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한 두사람의 리더가 있으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시민들의 힘, 피플파워가 리더십을 창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시민들이 갖고 있는 비전과 그 비전을 토대로 생성되는 피플파워가 부족한 면들을 채워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문화영상산업에 대한 관의 의욕적인 정책추진이나 비전이 시민들의 합의와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사업의 의미와 성과를 도출해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
정책 추진의 토대, 지역혁신시스템을 구축하자
이규창 원장이 전주 영상산업에 관한 구체적인 컨셉과 구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발제를 대신하면서 포럼 초반은 이러한 구상과 사업 진행의 실효성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어졌다. 특히 전주정보영상진흥원이 제안하고 전주시가 야심차게 진행중인 미국 UCLA 엔터테인먼트 비지니스팀 전주 유치의 현실성과 실효성에 대한 질문이 봇물을 이뤘다. UCLA 전주 유치는 영상산업을 영화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전 영역을 통해 전주를 국제적인 사업교류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진행되고 있는 사업. 그러나 최근 유보설이 나오면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대해 이 사업을 제안, 구상한 이규창 원장은 "UCLA 유치로 현실적인 교육수요가 뒤따를 것인지에 관한 우려가 있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업의 주된 목적은 교육수요에 있기보다 전주라는 도시가 영상산업도시로 발전해 가기 위해 UCLA와 같은 상징적 존재나 미래적 가능성에 있다. 이 사업을 가능케 할 지역혁신 시스템이나 전반적인 인식의 공유가 없다면 언제든 낙마할 수 있다. 보류설도 이 같은 맥락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규창 원장이 제기한 '지역혁신 시스템'에 관해서도 참석자들의 비상한 관심이 이어졌다. '지역혁신 시스템'은 도시 정체성을 규정하고 경쟁력 있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정서적 특성에 대한 이해와 정치-경제-문화의 총체적 매커니즘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에서는 특히 지역 정서, 이른바 '전주 사람들'의 특질에 대한 참석자들의 의견이 오가면서 흥미를 끌었다.
(사)마당 정웅기 이사장은 "지역혁신을 하자는 이야기는 어른들을 바꾸자는 이야기나 여론을 형성해 가는 시스템을 바꾸자는 이야기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전주시가 어떤 사업을 하든 발목잡기식 비난이 심하다. 이를 바꾸지 않으면, 행동이 나올 수 없다. 발목잡기식 여론몰이이나 잘 못된 여론의 흐름을 혁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면 누가 일을 하든 전주는 특화할 것이 없다. 본인의 이해가 없다고 판단되면 남의 이야길 하는 것이 고질적인 문제점이다."고 말했다.
건지소프트 유홍진 대표도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 해도, 지역 사회 전반에 걸친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관련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토론의 장을 마련하려는 성의와 노력들이 필요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전북대 이종민 교수는 이에 대해 "문화가 산업의 영역으로 인정되고 있다 해도, 기발한 기획 아이디어나 과감한 추진력만으로 문화를 키워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자치단체가 문화를 상품화한다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지만, 기획에만 의존하는 문화정책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가진 중요한 문화자산을 왜곡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타 도시에 선점당할까에 노심초사하다보면 우리가 가진 기왕의 자산이나 정체성도 놓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느리거나 발목잡기식의 전주 정서의 특징을 장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정한 지역 현안에 대한 효율적인 협의구조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는 의견도 이어졌다. 이재규 시민행동21 대표는 "청와대 관계자가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 전북이 전남에 뺏긴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전남 처럼 뭔가 포괄적이고 전반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전북의 합의구조가 매우 취약하다는 점은 모두가 지적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정책을 짜내는 관과 이를 따라가는 민간과의 괴리, 소통의 부재 등의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 단순히 이해관계로 반발하는 게 아니다. 자치단체장들이 의욕을 갖고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데, 왜 안 따라가는 지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전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산업정책이 시민들의 포괄적인 지지와 공감을 얻으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견해와 함께 신중함이 지나쳐 일의 추진력이 떨어지는 폐해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지적이 팽팽하게 맞섰다.
우석대 조법종 교수는 "시에서 정책을 세우고 진행하는 데 전문가 집단을 활용, 다양한 인재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 작업에 참여하면서 공무원들의 지나친 신중함 때문에 진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 모든 일에는 때가 중요하고 그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문화산업은 경쟁 지역이 너무 많다. 합의 과정이 부재했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지만 이제는 실천해야 할 때다. 우리가 가진 걸 빨리 특화시키고 행동해야 한다. 지금은 행동이 무엇보다 절박하고 긴박한 상황이다."고 강조했다.
전주영상산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영상산업에 뛰어든 업체 관계자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참여를 높이고 영상문화가 꽃필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닦는데 보다 많은 노력들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요구도 뒤따랐다.
게임개발업체 쓰리디컴넷 김종길 대표는 "정보영상진흥원에 입주한 입주업체 입장에서 정보영상진흥원의 목적과 원장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보영상진흥원과 입주회사가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고민이 필요하다. 진흥원에 입주해 있는 업체들마저도 많이 지쳐있다. 거창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이전에 영상산업과 관련한 소규모 업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반조성이 시급하다. 지금의 구상은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이라고 생각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김건 우석대 강사(영화학 전공)는 "지역혁신시스템의 하나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라고 보는데, 영상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리라고 본다. 전통문화에 영상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영상산업은 전주가 가진 토대에서 당장 안 되는 사업이다. 단순한 관련 이벤트 등은 가능하겠지만, 자치단체장 임기 내에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 영상문화에 대한 저변확대, 시민 인프라 구축에 대한 투자가 장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에는 전주시 문화영상산업의 전략기지 역할을 맡고 있는 전주정보영상진흥원이 내놓은 전주시 문화영상산업 구상이 현실성 있는 계획인지, 전주 시민들의 포괄적인 지원과 이해 속에 추진되고 있는지에 관한 참석자들의 비판이 뜨거웠다. 특히 전주를 아시아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센터(UCLA 유치 포함)로 만들어 가자는 구상에 대한 실효성 의문, 도시 산업 정책을 진행하는데 관의 일방적 의지만으로는 풀어갈 수 없다는 지적 등이 쟁점이 됐다. 그러나 전주시가 도시 경쟁력의 하나로 광범위한 분야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지적재산권에 관한 지식과 정보 등을 제공하는 지적재산권서비스센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구상에 대해서는 참석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향후 적극적인 검토와 현실화가 필요할 것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뤘다.
여기에 전주시에서 사무실 임대와 기자재 등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전주정보영상진흥원 내 입주업체들의 불만도 얹혀졌다. 입주업체를 비롯해 영상산업을 실현해 갈 관련 업체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
무엇보다 전주시가 문화영상산업을 추진해 가는데 있어 그 토대가 될 지역혁신시스템(시민공감-정치-경제-문화의 총체적 매커니즘)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 정리-김회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