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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스캔들
신귀백(2005-01-06 11:04:49)
부챗살 서까래 롱샷에 풍악. 환갑 세트 술상을 두고 뒷머리를 틀어 올린 이는 '느냐'체로 미장원 커트의 뒤꼭지는 '하옵니다'체의 TV사극은 정말로 깡통식혜 맛이오. 당연히 이녁은 궁중사극을 좋아하는 사람조차도 좋아하질 않소. 인수대비는 노상 흰자위를 보일 뿐이고 장희빈양은 매양 코웃음이니, 아프냐고 묻는 다모(茶母)의 장성백의 대사가 어찌 따뜻하지 않겠소. 임권택 대감식 사극 또한 메주 뜨는 냄새가 나지요. 공든 채색화면, 애잔한 국악 뒤에는 계몽성의 꼬리가 보인단 말씀이오. 그런데 보셨소? 최근 이재용 한량이 만들어 물긷는 아낙들의 눈물을 산 남녀상열지사의 사련(邪戀)말이오. 솔향기 싱싱하고 고들빼기 쌉쓰름함 같아 강호제현(江湖諸賢)께 내 권주가 한 곡조 부르는 것 아니겠소. <스캔들>이니만큼 치정의 채필(彩筆)장면에는 음란한 형식 또한 없지 않으나, 고집스런 미술의 흔적은 장식의 차원을 넘어 눈부실 지경이니 어찌 통(通)하지 않겠습니까. 악공 이병우의 양이(洋夷)풍 음악은 비단에 꽃이고요. 가산은 풍족해도 손없는 외로운 여인 조씨부인(이미숙)은 장미의 아름다움을 가졌으니 어찌 가시가 없으리요. 부띠끄 샵에서 막 건져 올린 홍상채의(紅裳彩衣)는 천하지 않은 엘레강스 자체였지요. 사서삼경에 병법까지 능한 패션리더 조마담의 가체는 아파트 한 채 값이요, 가마는 에쿠스 이상일 것이나 남편의 사랑이 없으니 아미(蛾眉)에는 시름이 가득할 뿐. 부귀는 있어도 어짐이 없는 그녀는 세상을 다 안다는 표정으로 바람둥이 종제(從弟:사촌동생)에게 내기를 겁디다. 작은댁으로 들어올 열여섯 여자아이를 꺾어주면 그대가 원하는 것을 주겠노라고. 한편, 고시에 합격하고도 작업에만 열중하는 단아(端雅) 준일(俊逸)한 풍채를 가진 선비 조원(배용준)은 백수지요. 백마금편(白馬金鞭)으로 치장한 그는 몰카 대신 춘화를 그려두는 파락호인데 이마가 반듯한 숙부인(전도연)과의 작업에서만은 예외를 보여줍디다. 명도와 채도를 낮춘 차분한 중간색이 잘 어울리는 숙부인의 쪽진 머리의 둥금은 백자항아리의 선이었지요. 서사(書舍)에서 책고르며 수작(酬酌)하기, 미사를 보는 척 우연을 가장한 희롱은 교회와 교보문고의 수순을 훑는 이 시대와 작업환경이 비슷하다는 얘긴가요. 고흐의 '아이리스'는 감색의 붓꽃이 진초록에서 잘 어울림을 보여주지요. 달개비꽃도 푸름 속에 있을 때 청초함이 더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녹음방초 우거진 신록의 정원 속에서 감색의 선비와 초록의 여인네가 거니는 그림은 "한국의 美"다큐 이상입디다. 숙부인의 옷차림이 화사해지고 볼연지가 고와질 때까지의 전반전은 로맨틱 코메디의 즐거움에 교양 다큐의 포만감을 즐길 수 있었지요. 그러나 비극의 얼음장으로 흘러가는 후반부에 이르면 그 짜임이 흐트러지는 느낌입니다. 조씨 부인에게 질투는 힘이 아니라 미친 짓이어서 죽음과 이별이라는 파멸로 바뀌고 말더이다, 너무도 쉽게. 조선비는 칼에 맞아 죽고 숙부인은 설워하다가 얼음장 아래로 연보(蓮步)를 옮기니 어찌 까마귄들 슬퍼하지 않으리오. 아으, 애재(哀哉)라. 눈 내리는 배 위에서 앙천 탄식(仰天歎息)하며 낙루(落淚)하는 조씨부인이여. 사창의 여읜 잠을 깨운 선비는 시서화에 무예까지 뛰어난 인물이요마는 숙부인은 현숙(賢淑)함 빼고는 별 컨텐츠도 없는데 어찌 둘 다 죽음까지 흘러가는 지, 참 알 수 없더이다. 그미가 명기(名器)라서? 허, 글쎄요. 염정(艶情)의 감정이란 게 이렇듯 속절없음은 내 이미 알던 터이나 끝맺음이 옷고름보다 쉽게 풀린 듯하니 그 망연(茫然)함을 어쩌지요. 이재용 한량이 재현한 사대부의 이 럭셔리한 아름다움 앞에 다산 선생이 말한 '가마메는 수고로움'을 말하는 것은 야박한 일이겠지요. 이한량의 미술과 고증의 수고로움은 이미 다 통하였으니 다음 그림에서는 이(李)선비를 염정의 마력에 빠지게 했던 그 여인네들의 컨텐츠에 주목하시어 매력 있는 캐릭터 만들기에 진력하시길.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서 바라본 사무치는 아름다움에다 이 한량의 안목과 고집이면 다음 작품을 기다려도 좋질 않겠소? 蛇足, 소나 끄는 무리들이 영화가 돈이 된다고, 연하여 <전봉준> 추진하시다 몇 푼 떼인 공무원 나리들, 아프시오?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더이다. 돈황의 세트도 고창읍성의 세트도 애물단지라오. 고증의 피말림이 시간과 돈의 싸움이란 걸 깨달았다면 시나리오 건진 것도 토생원 용궁 다녀온 것으로 아시고 훗날을 도모하시길. 謹拜書 butg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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