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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 | [문화비평]
아직도 룸살롱 뉴스를 보십니까?
변희재(2005-01-06 11:00:31)
MBC뉴스가 최근 시청률이 한자리수로 떨어지면서 위기에 처했다. MBC 뉴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는 언론노조 등 개혁진영 쪽에서는 MBC의 이긍희 사장체제가 출범한 뒤, 급격히 논조가 보수화되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물론 한나라당 등 보수진영 쪽에서는 이미 지난 대선 전부터 MBC 뉴스의 시청률은 추락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을 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겠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분명히 MBC 뉴스의 시청률이 급락하고 있고, 사측은 이에 대해서 단 한 가지의 처방만 내놓았다는 점이다. 바로 단 1년차인 신인 아나운서 최윤영을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우먼으로 올린 것이다. 나는 1999년에 『스타비평1』(인물과사상)의 백지현편에서 이미 방송의 꽃 여성앵커의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그리고 올해에는 『월간인물과사상』과 웹진 시대소리(http://sidaesori.com)에서 연속해서 여성앵커 기용의 남녀차별문제를 지적했다. 남성앵커는 최소한 보도국 15년차, 40대 중반 유부남을 기용하는 반면, 여성앵커는 기껏해야 5년차 이하 20대 미혼 아나운서를 짝으로 붙이는 것이 관습이다. 내가 처음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직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내 스스로 가정이든 학교든 항상 평등하게 생활해왔다 생각하다보니, 어떤 경우라도 "왜 여자만?"이런 의문이 들면 물어보지 않고는 참지를 못한다. 나는 방송사 내의 다양한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해보기도 했었다. 내가 놀란 점은, 참으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기자와 PD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기자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젊은 기자들은 주로 1분 30초짜리라는 정형화된 뉴스 포맷에 불만을 갖고 있다. 앵커의 역할 역시 그런 뉴스를 읽어주는 데 불과하기 때문에 어차피 누가 하든 별다른 역량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 거라 여긴다. 그리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젊고 예쁜 여성이 앵커 자리에 앉는 게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KBS의 경우는 주로 30대 이상의 장년층 남성이 주된 시청자이니, 젊은 여성을 붙이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생각은 이렇다. 나는 40대 유부남과 20대 미혼녀가 나란히 앉아서 뉴스를 읽고 있는 모습이 불편하다. 아니 불편한 정도를 넘어서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난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나는 주로 앵커 혼자 진행하는 YTN 뉴스를 즐겨본다. 그 불편함의 원천은 내가 룸살롱 문화와 익숙하지 않다는 것과도 맥이 통한다. 그나마 괜찮은 남성이라는 사람들은 룸살롱 문화야말로 남녀차별적인 문화이므로 가고 싶어도 참아야한다는 말들을 한다. 나는 그 사람의 발상에는 박수를 보낼 수 있기는 하나, 그 사람의 마음은 이해가 안 된다. 룸살롱에서 나의 선택권이란 없다. 도대체 어떤 여자가 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끌려가,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와 옆에 앉아, 애인처럼 행동 해야 하는 감옥 같은 곳이 룸살롱이다. 내 옆에 앉은 여자가 내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돈을 내는 사람에게 미안해서, 즐기는 듯 연기라도 해내야 한다. 더구나 '오빠'라는 단어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나의 개인적인 체질 상, 룸살에서 '오빠! 오빠!'하는 오빠 공해 하나만 해도 시간을 떼우는 것조차 힘들다. 나의 경우라면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 체질 상, 어린 여성이 옆에 앉아서 '오빠' 하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나는 방송사 뉴스만 보면 여성 아나운서가 금방이라도 남성 앵커에게 '오빠'소리를 불러댈 것만 같다. 내가 방송3사의 뉴스를 보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다. 반면 40대 유부남과 20대 아가씨가 함께 진행하는 뉴스를 보고도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룸살롱 문화에 중독되어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더구나 이화여대 언론홍보학과 이재경 교수의 "그러나 국장이나 경영진 등 인사권자의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앵커가 바뀌는 인사 관행이 앵커 스스로 뉴스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추구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말대로라면, 사실 상 앵커의 선택은 방송사 간부들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되고 있는 듯하다. 아직까지 여성 앵커의 젊음과 미모가 과연 어느 정도 시청률에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한 조사가 나오지 않고 있다. 방송사 측에서는 시청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성앵커의 미모를 강조한다고 하지만, 시청자가 원한다기 보다는 방송사 간부들이 원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KBS시청자위원 14명 중 여성위원 5명이다. 나는 대부분의 여성위원들과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전원 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번 회의에서 이 문제가 잠시 거론이 되었다. 아마도 방송 관행상 KBS 하나만 알아서 바꾸라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앵커의 성차별 문제를 극복하겠다면 이것은 여성부와 함께 남녀차별금지법의 힘을 빌어 전 사회적인 이슈로 띄워야 한다. 방송3사 뉴스를 동시에 거론하며, 끝까지 여성앵커의 미모와 젊음에 의지하겠다는 곳이 있다면, 해당 방송사의 뉴스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 엄청난 비용을 들여 최고의 엘리트를 기자로 뽑아놓고서도, 결국 단 한 명의 미모의 여성을 간판으로 내걸어야 인정받는 뉴스라면 그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90년대 들면서 여권은 급속히 신장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제도적 관습적 차별이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1년 365일 내내, 남성이 주도하고 젊은 여성이 보조하는 성차별적 뉴스가 반복적으로 방송되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그 진취적인 여성을 키우자면서, 여대생들이 닮고 싶은 인물 1, 2위가 기껏해야 방송의 꽃 여성앵커들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 열받지도 않는가? 과연 언제까지 룸살롱표 뉴스를 보고 있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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