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 | [문화저널]
처음 그대로의 순수함으로
조희숙 전주시청 문화예술과 문화계장(2005-01-06 10:56:22)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나를 풍요롭게 한다.
방학이나 되어야 찾아오는 외손주들을 위해서 집 울타리 빙둘러 단수수를 키우고 호박엿을 고아 주시던 할머니는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주는 사랑이 얼마나 값진것인가를 가르쳐 주셨다. 한참을 걸어와 뒤돌아 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잘가거라 손짓하던 할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이제 그분은 없다.
내 손으로 지은 따뜻한 식사한번 대접하지 못하고 주신 사랑 되돌려 드릴 수도 없으니 몇 년에 한번이나 찾아뵙는 그 분 묘역에 이르면 가슴이 뭉클하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주신 사랑으로 이제 어른이 되어 버린 나는, 그러나 나의 외손주에게 그런 사랑을 물려 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나는 문화저널에게 외할머니처럼 조건없이 나를 따뜻하게 했던 그런 사랑을 기대한다, 고 쓰려한다.
내게 있어 문화저널은 외할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학창시절, 그때는 왜 그렇게 모든 세상사가 맘에 안 들고 뒤틀려 있었던지 능력도 없는 것이 홍지서점에 들려 맘에 드는 책을 골라드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 지하엔 창작 소극장이 있던 건물 3층이였던가 2층이였나, 고전음악감상실 필하모니가 있었다. 문화저널도 거기 있었다.
그곳에 있던 문화저널을 읽으며 자랐다. 저널에서 소개하는 책을 사기 시작했고 저널에서 취재한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들은 내가 보기에 뿌듯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었다.
방송작가로 일하면서도 나는 문화저널을 통해 지역문화계의 흐름을 읽었다.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문화저널을 통해 다시 한번 검증했다.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시각을 전하는 문화저널을 통해 나는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누구라는 것을 알았고 같거나 다르거나 전혀 상관없이 서로가 아름답게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아무 조건없이 문화저널의 사랑을 받아온 나는 지금 감히 여전히 아무 조건없이 처음처럼 그 사랑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내가 문화저널을 통해 문화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지역에 대한 이해를 깊이 했으며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게 되었듯이 나의 딸도 문화저널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기 원한다.
문화저널은 언제나 가난했으나 문화저널의 품에서 자라고 성장한 문화일꾼들이 우리 지역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나는 문화저널이 권력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
오히려 권력을 비판하는 올곧은 소리들을 제대로 모아서 있는 그대로를 전해주길 바란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모여 그중 가장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이뤄질 수 있도록 디딤돌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화 시대, 문화산업의 시대가 왔다고들 부산하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이뤄진 국가 균형발전위원회와 정부 혁신 지방분권위원회 모두 정부 혁신을 통해 지방 분권을 이뤄내고 국가를 균형발전시키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지방이 주인되는 세상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탓인지 아직도 나는 지방화 시대가 가능하기나 한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일찍부터 우리 지역문화에 대한 따뜻한 인식을 넓혀온 문화저널은 딱히 혁신할 것도 별도로 새롭게 사업을 추진할 것도 없어 보인다. 원래부터 그런 것들을 지향했으니까...
아무것도 없던 시절, 문화에 대한 순수와 열정만으로 지역을 보듬어 안을 수 있었던 처음 그때와는 달리 너와 내가 분명해 지고 없었던 경계가 생겨나는 이 지역의 문화판에 더 넓은 마당을 선사해 주길 바란다.
누구나 질퍽하게 놀다 갈 수 있도록 잠시 너나 없이 경계를 허물고 한바탕 쌈질이라도 할 수 있는 배려 깊은 마당이 되길 원한다.
얼마전 문화저널 백제 기행을 다녀왔다
팍팍한 일상을 힘겹게 관통하면서 모처럼 아무 조건없이 서로에게 친절했던 그분들 덕에 월요일 아침 출근이 즐거웠다.
제발 그 어떤 의도도 없이 전략은 더더욱 없이 우리지역 문화가 성장하면 할수록 커지면 커질수록 그 마당을 넓혀가며 경계없이 대화의 장을 제공하는 그런 문화저널이 되길 원한다.
단 한번 후원회원의 되어 30만원을 낸 적이 있고 1년 구독료가 4만원이 되기 전에 구독료를 몇 번 냈으며 그 외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이제 와서 문화저널에 뭔가를 바라는 것은 매우 발칙한 일이다.
그러나 외할머니가 내게 그러했듯이 한참을 걸어나와 뒤돌아봐도 손을 흔들고 있는 넓은 포용력을 지니길 바란다.
그것이 전주사람들의 문화적인 안목으로 키워낸 문화저널의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심으로 문화저널 16주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