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 | [문화저널]
'통일'과 '풍요'의 큰 열매 맺어주길
양진규 목사(2005-01-06 10:54:33)
'개가 사람을 물었다'는 그럴 수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설사 개가 사람을 물었다고 해서 매스컴에 보도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만약 '사람이 개를 물었다'면 이는 확실히 뉴스거리이다.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한 것이 사건이라면 내가 문화저널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일 것이다. 웬만한 분야에는 두루 관심도 있고, 더불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은 된다고 생각하는데, 유독 문화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왠지 주눅이 드는 사람이 나다. 개념이 잘 안 잡히는데다가 '문화'가 예술과 연결이 되어서 학창시절 나를 열등하게 만들었던 예체능 과목들이 연상되어서 일까?
전북지역의 일간지나 진보적인 잡지, 기독교계 신문들에 한두번씩은 내 글을 올려본 경험이 있다. 그 때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고, 원고의 내용과 반응에 관심이 쏠려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원고 청탁을 받을 때, 쓸 때, 그리고 게재된 글을 다시 볼 때의 느낌이 문화저널의 경우는 매우 달랐다. 마치 내 영역이 아닌 곳에 발을 들여놓는 기분이었다. 매우 가기를 원했지만, 그 곳에 들어 가기에는 너무 자신 없는….
처음 문화칼럼을 원고를 제안 받고 야릇한 흥분이 있었다. '문화'라는 영역에 대한 나의 동경과 열등감이 섞인 감정과 함께, 문화저널이라는 잡지를 처음 대면했을 때 받은 고급스러운(?) 느낌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전북지역의 다른 매체에 비해 그 질(quality)을 달리하는 독특한 냄새와 분위기가 나에게 준 문화저널의 첫 느낌이었다. 그 곳에 글을 쓰는 자부심은, 이제 내가 '문화인'의 반열에 들어선다는 설렘까지 가지게 했다.
그 당당하지 못한 인연으로 문화저널을 위해(?) 이 글을 쓴다. 격려와 감사의 발언만이 아닌 감히 고언(苦言)을 포함하라니 여간 부담이 있는 게 아니다.
문화에 대한 문외한이 학습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문화의 최고수를 평가하는 것이니, 사람이 개를 무는 사건이나 진배없다. 용감할 수 있는 조건 중에 무식한 것도 한몫한다고 했으니, 그 시쳇말에 의지하여 용감해져 보기로 한다.
문화, 그 주인 찾아주기!
문화저널의 운동방향과 성과에 대해 이렇게 이름지어보았다. 예술을 중심으로 한 문화영역의 주인을 소수 엘리트들로 여기고, 대중은 그 문화주체들의 대상으로 대중들을 푸대접하던 문화계의 흐름에 익숙한 나는 문화저널을 통해 나도 문화계의 일원임을 깨달았다. 주체와 대상이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창조적 행위에 나도 주체로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감상하거나, 영화를 보는 등의 문화소비자적 행위 자체가 문화생산자들과 교류하면서 문화영역의 당당한 주체가 되는 것 아닌가?
문화영역의 일 주체로서 문화저널에 대한 요구를 해보기로 하자.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이 시를 놓고 토론하던 20년전 대학시절이 상기된다. 목가적인 우리의 농촌 풍경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대표적인 현대시로서 고향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향수를 자극하는 최고의 작품으로 알고 있었던 터였다. 이 시에 대하여 식민지 농촌의 암울함을 호도하는 역할에 대한 비판을 할 때 내 눈이 확 넓어져 버렸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에 술이 익어?' 선배의 말 한마디에 불과 5분전까지만 해도 별 뜻 없이 보던 시와 박목월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월이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 결국 식민지 상황을 미화하는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인 것이다. 당시에 논쟁은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의 관계가 주제였다. 결론은 '순수문학이라는 것은 본래 없고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참여를 하는 것인데 어느 편에 서서 참여할 것인가의 선택이다'는 식으로 맺어진 것 같다.
지금도 그 결론에 동의한다. 흑백논리, 이분법적 사고라고 비판이 있을 수 있는 지점이다. 성경에 나오는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요한계시록3:15)" 라는 구절로 비판에 대한 대답을 대신한다. 이분법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잘 분별하여 보면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규정하는 말이 있다. 1900년 대 초부터 해방(1945)까지는 식민지 시대이다. 그때도 농민문제 등 계층간의 갈등도 있고, 기근도 있고, 남녀불평등 문제도 있어서 사회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벌어지게 된다. 문제가 있는 곳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립이 있는 것은 사회의 발전 법칙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규정적 갈등은 식민지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독립하려는 세력과의 갈등이다.
나의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이렇다. 그 시절의 규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이 진보이고, 유지하려는 것이 보수이다. 예를 들어 식민지 말기에 유행하였던 자치권획득 운동은 식민지의 영구지속을 전제로 하였던 것이기에 진보에 반(反)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식민지 해방 투쟁이 진보요, 식민지 유지정책은 보수였다.
지금 시절 우리나라를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지금 시절을 '분단시대'로 규정해 본다. 그래서 우리의 과제는, 한반도 전체로 보면 분단의 극복이고, 남한 만으로 보면 국방을 외국에게 의존하고 있는 불완전한 자주권과 내부 계층간의 갈등해결이며, 북한은 아마 낮은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진보이다. 그리고 분단을 해소하는 통일을 저해하는 행위, 외세에 더욱 의존하려는 행위 등은 보수이다. 물론 보수의 역할이 있다. 보수는 진보의 모험주의를 제어해서 진보과정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볼 수있다.
문화저널, 진보인가, 보수인가
진보의 편에 설건가, 보수의 기능에 만족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선택한 자는 차든지 더웁든지 중의 하나이다. 자기도 모르면서 어느 한 쪽의 역할을 하는 것은 미지근해서 양쪽의 버림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문화저널'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아니면 아직 입장을 선택하지 못해 어정쩡한 입장인가?
분단을 해소할 통일을 원하는가? 아니면 현재의 분단체제를 유지한 상태의 개혁인가? 통일을 위한 문화영역에서의 활동은 어떤 목적과 방법을 가지고 있는가? 남한에서 미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우리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층간 갈등의 해법은? 한반도의 한쪽인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우리의 역할은?
용감한(?) 질문들을 해 보았다. 근본적이고 거시적 질문들이라 오히려 그냥 지나치기 쉬울 수 있다.
'사상'이 뿌리라면 사회제도는 나무이고 '문화'는 그 '열매'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문화저널은 지금까지 우리사회를 밝게하고 품위를 높이는 좋은 열매들을 맺어왔다. 이제 우리사회는 분단의 역사가 끝나고 통일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 동안 우리를 옥죄어 왔던 족쇄를 우리의 힘으로 풀어야 하는 진보의 과제가 눈앞에 와 있다. 이 전쟁과 평화 번영의 갈림길에 서 있는 엄정한 시절에 문화저널의 열매가 더욱 크고 아름답게 맺어지기를 희망한다.
전북지역의 모든 진보적 사상을 아우르고 나무를 돋보이게 하는 통일의 열매, 사랑의 열매, 풍요의 열매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