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 | [문화저널]
우리의 음악은 아직도 실험 중!
김선경 객원기자.JTV 전속작가(2005-01-06 10:31:43)
한 사람을 파악하는 데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가령 우리는 한 두 마디의 단서만을 가지고도 그 사람이 어떤 '과(류)'인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 나로 말하면 누군가가 "어린 시절 헤세와 전혜린에 빠져 살았다"고 하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가 어느 지점에 닿아 있었는지 짐작하고, 희미한 연대감 비슷한 걸 느끼곤 한다. 한 시절 같은 것에 공감하며 살았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쉽게 한편이 되곤 하는 것이다.
그룹 오감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또한 그랬다. 한때 이상에 열광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그의 불우한 존재의식이 나의 그것처럼 생생하고 절실했던 시절이 있었다. 오감도의 대표 안태상씨는 외모마저 이상의 불우함을 드리우고 있어서, 필시 그가 이상 마니아일 것이라고 나는 단정지어버리고 말았다. 이상을 좋아하시는가봐요? ...네. 학창시절 배운 것 중에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이상입니다.(역시!) 그렇다면 오감도라는 시를 좋아해서 그룹이름을 오감도라고? ...네. 그리고 제 별명이 한때 오감도였거든요. (화들짝 놀라며)뭐시라고라? 왜요?(역시 뭔가 있음이 분명한 게야!) ...그것이...그러니까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고 해서...그래서 오감도였어요.(....?!)
그랬다. 여기서 '오감'은 시인 이상의 '오감도'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오고 감'의 줄임말이었던 것이다!
음악에 대해 무지한 관계로 약간의 콤플렉스까지 갖고 있는 나는 그들의 자유분방한 정신을 따라잡기가 꽤나 버거웠다. 안태상씨는 오로지 음악에 집중하느라 말하는 법을 까먹은 사람 같았다. 말을 일부러 아낀다기보다 태생적으로 말하기에 적응하기 힘들어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를 고문하는 심정으로 궁금한 점을 물었다.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왜!"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누나의 클래식 기타를 만지게 된 그는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만 몇 개월 동안 쳐댔다. 참다 못한 아버지가 기타학원에 보내줬고 그것이 음악인생의 시작이었다. 믿지 않겠지만, 이후의 인생은 매순간 행복했다. 한순간도 음악한 걸 후회하지 않았을 정도로 완벽한 삶이었다. 그 삶의 여정에 놓여있는 것들이 신호등(고2), 석기시대(우석대), 낼(1995), 맛있는 관계(2001), 오감도(2003)다. 4년 이상 지속됐던 그룹 '낼'은 전주의 클럽 라이브 문화를 일으켜 세웠고 라이브공연 마니아들을 형성한 최초의 그룹이었다. 맛있는 관계는 '퓨전재즈밴드'라는 컨셉으로 시작됐고, 거기에 더 짙은 실험성을 가미하고 싶어서 만들어진 것이 오감도다(오감도가 비록 '오고 감'의 줄임말일지언정, 실험성과 창조성의 측면에서 이상의 시와 그룹 오감도의 음악은 기막히게 닮은꼴이다). ‘맛있는 관계’ 멤버와 국악실내악 단체인 '한음사이' '소리샘' 멤버가 크로스하자 이런 것들이 생겨났다. 기타(안태상), 피리, 태평소(조송대), 베이스(한현욱), 장고(황상현), 오카리나, 소금, 대금(조용오), 피아노, 신디사이저, 거문고(안은정), 해금(이승연), 가야금(백은선), 드럼(권형준)....이 모든 것이 오감도 안에 들어있다. 9명의 멤버들은 굳이 어느 하나를 고집하지 않으며 때에 따라 뭉치기도 하고 풀어지기도 한다. 오감도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오디션 같은 것은 보지 않았다. 이미 오랜 활동경력을 갖춘 맛있는 관계와 한음사이, 소리샘 멤버들은 벌써 서로의 '깊은 부분'을 들여다본 후였다. 망설임 없이 의기투합했다. 대금과 소금, 오카리나를 넘나드는 조용오씨는 "멤버들끼리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이 서로 통하고 음악에 대한 순수함이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순수함에 있어서 안태상씨를 따라올 자가 있을까? 이미 음악인생 20년을 바라보는 그에게 생계는 항상 음악 다음이었다. "그냥 그때 그때 살아지더라"는 것이 그의 생계 철학이다. 그에게는 한끼 밥을 먹는 것보다 하나의 새로운 곡을 만드는 것이 더 절실하다.
오감도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시작한 것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부터다. 2001년도에 데모CD를 만들긴 했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직접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음악이 '최종'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들의 반응에 그렇게 목매달지도 않는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남들이 많이 하지 않는 것 중의 하나를 하고 싶었다. 하나의 완전한 팀으로서 음악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멤버 각자가 최고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태상씨는 무얼 말하든 구구절절 늘어놓는 법이 없다. 간단하고 명료하다.
지금 오감도는 각자 흩어져서 쉬고 있다. 공연 일정도 없다. "앨범을 내기 위해 녹음을 한다"는 널널한 계획만 잡혀있을 뿐이다. 녹음을 위해서는 매일같이 모여서 피나는 연습을 하고, 그렇게 녹음된 앨범은 곧 돈이고, 돈은 곧 성공이고....식의 시나리오만 생각하고 있던 나로서는 녹음 전의 한가한 분위기가 다소 의외다. 앨범을 판매할 생각이 아닌가 보죠? "앨범 내는 게 1,2년 사이에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다. 앨범발매도 습작단계라고 생각한다. 팔 수도 있지만 판매가 목적은 아니다. 녹음도 연습일 뿐이다." 추구하는 바가 높은 사람에게 속세의 들고 낢은 연습일 뿐이다.
오감도의 음악은 전주이기에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는 음악이란다. 서울은 철저히 경제원리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순수한 의도의 실험은 용납되지 않는다. 전주는 전통예술을 키워내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고, 연주실력도 중앙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새로움을 갈구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어떻게 전주를 떠나겠는가.
그러나 끊임없이 실험을 하는 이유가 '궁극적인 완성'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면, 음악적 완성의 잣대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연주할 때 즐거우면 성공한 음악"이라고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단원들이 즐겁게 연주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머리맡에 기타를 놓고 잘 정도로 작곡에 취해 살지만, 악상이 떠오른다고 다 오선지에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악상이 세 번 이상 찾아올 때, 비로소 그는 흥얼거림을 악보에 옮긴다. 간단한 곡 하나도 수많은 단련을 거쳐서 나오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것도 그렇다. 누가 작곡한 어떤 장르의 음악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듣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조용오씨는 국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팝이나 가요를 안 듣고 국악만 들었지만 그것이 '우매한 짓'이란 걸 오감도를 하면서 깨달았단다. 11월의 초입에 듣기 좋은 음악을 골라달라고 했더니 뜻밖의 음악을 추천한다. "굳이 추천하라면 빗소리가 어떨까 싶다. 비에 젖은 대지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것을 좋아한다.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빗소리의 편안함을 권하고 싶다." 치료음악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안태상씨가 옆에서 거든다. 조용오씨는 음악을 통해 정신세계를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단다. 안태상씨는 "가장 좋은 음악은 자기자신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위대한 작곡가다. 내면의 소리는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하고 훌륭한 음악이다. 그것만큼 좋은 음악이 없다."
이렇듯 거창한 음악관을 가진 오감도지만 아쉽게도 공연장을 찾아가지 않는 한 그들의 음악을 만나기는 어렵다. 다음 까페에서 '오감도'를 치고 회원가입을 하면 자료실에 들어가 공연사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라이브 공연의 펄펄 뛰는 감동에 비길 수가 있으랴. 그래도 오감도의 음악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오감도가 직접 추천한 그들의 대표곡을 소개한다. <봄바람-경쾌한 소금의 멜로디와 열정적인 기타의 솔로가 어울리는 곡> <운암가는 길-가야금, 대금, 피리가 연주하는 산조 풍의 곡으로 서양음악의 화음과 잘 어우러지는 즉흥연주곡> <열정-열정적인 라틴리듬과 힘찬 태평소의 시나위 연주가 흥겨움을 자아내는 곡> <midnight run-역동적인 소금의 테마와 가야금의 화려한 테크닉이 압권인 곡. 후반부의 장고와 드럼, 베이스의 솔로가 흥겹게 어우러지는 곡으로 오감도 멤버들의 기량이 한껏 드러나는 종합선물세트> <미지의 세계로-해금의 멜로디가 아름다운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