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 | [문화시평]
문화공간이 새롭게 보였다
구혜경 객원기자(2005-01-06 10:29:36)
작가들이 자기 속에 감추어진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새롭게 의기투합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10여 년 전부터 작가들은 새로운 작업환경을 찾아 지방의 구석으로 찾아들면서 그야말로 전원에서 창작활동에만 주력하고자 하였다. 그 한 장소로 섭외 된 곳이 시골의 문닫은 학교들이다. 그 동안 꽤 많은 폐교들이 창작활동의 장소로 제공되면서 작가 내부적으로는 나름대로 창작활동에 더 없이 좋은 애착을 가지는 곳으로 인식되고, 대외적으로는 문화 소외지역이었던 구석진 동네가 폐교를 중심으로 문화를 형성해 가는 좋은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폐교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은 전북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형성되어 있고 지금도 여러 곳에서 문화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창작활동을 위한 장소로서 감당해야 할 고민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 현실들을 감당하면서 까지 그 곳에 머무르려고 하는 작가들의 의지에는 확고한 이유가 있다. 그런 작가들의 확고한 의지를 표현하고자 전북 임실에 있는 오궁리 미술촌이 그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제 1회 전국 문닫은학교 연합예술제'를 만들어냈다.
처음 시작은 단순하다. 우연한 기회에 다른 지역의 폐교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알게되고 그 작가들과 온라인 대화를 하다보니 지역이 다르고 환경은 달라도 결국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은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밖으로 둘러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작가들이 폐교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아직은 많은 학교들이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전국의 몇몇 폐교 활동작가들이 모이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은 전남 경복미술문화원, 충남 서해미술관, 경남 가인예술촌, 강원도 Camp700 등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19명이 모였다. 각 지역별로 한 학교만 참여하고 있어 아직은 한 목소리를 내기에 준비상황이 미비하지만 전국을 순회하면서 지속적으로 한 목소리를 낼 예정이라고 한다. 오궁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중 한 명은 이번 전시가 겉으로는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지만 전시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대단한 것이어서 나름대로 거대한 만족감과 뿌듯함, 그리고 속 시원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만큼 제대로 목소리 내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전시라는 것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속 얘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예술제의 주도적 역할을 한 '오궁리 미술촌'은 1995년 전국 최초로 설립되어 임실지역의 문화명소가 될 만큼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대곡리 미술촌, 사곡리 미술촌 등 여러 지역에서 창작활동이 이루어졌지만 폐교를 임대한 기간이 끝나면서 작가들이 떠나고 현재는 오궁리 미술촌만 남아있는 현실이다.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전북지역은 미술촌 이름 자체가 폐교 주소지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이름들은 지역과는 별개로 가인미술촌, 경복미술촌 등 창작공간의 이름을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전북은 오궁리, 대곡리, 사곡리 등 대부분이 그렇다. 아마도 처음 시작한 오궁리가 그 이름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곳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러나 더 애착이 간다. 어찌보면 폐교로 들어온 작가들은 그 지역의 낯설은 이방인일 수 있다. 농촌지역은 정이 많고 순박하지만 그만큼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어서 처음 미술촌이 생기는 것이 달갑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네들 눈에는 작업이라는 것이 사치로 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별천지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주민들과의 갈등과 소외, 작업환경의 미비, 관계 관청과의 마찰 등 여러 가지 고민거리들이 있다.
처음 미술촌으로 들어오는 심정은 오로지 작업에만 정진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왔을테지만 정작 그 안에 들어와서는 많은 문제들이 있어 오히려 더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고민 다 떠안고 해결해 가면서 이만큼 걸어왔다. 작가들 스스로 창작활동을 위해 환경을 개선하려 노력도 하였고, 어린이 미술교실이나, 도예교실, 전시회, 문화강좌, 때로는 바쁜철에 대민봉사까지 하면서 서슴없이 주민들 속으로 뛰어들어 그 속에 동화되기를 바랐다. 가끔은 주변환경과 너무 익숙해 보여서 토박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것들이 만들어지고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이유는 오궁리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대부분이 거주지까지 옮겨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변의 이방인이 아니라 그 동네 주민인 셈이다.
그런 모습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전시가 오픈하던 날 대부분의 전시들이 그렇듯이 전시 관계자나 미술관련 작가들이 모이기 십상이지만 이 전시에서는 동네에 무슨 큰 잔치라도 난 듯이 많은 주민들과 관공서 관계자들, 작가들 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 바탕 흥겹게 잔치가 난 것처럼 신명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 전시가 가지는 궁극적인 목적은 이런 것에 있다. 문화소외지역에 그럴싸한 것을 보여 준다는 것보다는 생활가운데 자연스럽게 파고드는 문화적 확대와 거리감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공서 관계자들에게는 창작환경의 개선이 시급함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날 전시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은 같이 공감하고 느끼고 생각하며 아깝지 않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도 외지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가볍게 오고가는 사람들은 없지만 물어 물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여전하다. 그만큼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 이상으로 전시가 가지는 의미는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전시 뿐 아니라 세미나도 마련하여 구체적인 발언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전시가 끝나는 11월 3일 전시참가자와, 행정 관계자, 주변의 관심인들이 참석하여 지역 문화공간의 새로운 제안을 하고자 하고 있다. 주제는 농촌에 만들어지는 미술촌의 위치와 역할, 작가들의 창작 지원 문제 등을 하나씩 풀어나갈 예정이다. 작가들이 근사하고 화려한 환경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최소한의 것들이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작가들이 개선점을 요구하기에 앞서 창작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자리 매김의 노력들도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문화적 생산물을 제공하고 지역 안에서 필요로 하는 문제 등도 고려하여 노력해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오궁리미술촌에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어린이 미술교육과 꾸준히 보여지는 전시를 준비하여 누가 어느 때 오든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항상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한 작가 왈 "비어 있는 전시장을 볼 때마다 한구석이 찜찜했는데 지금은 방문객들에게 미안하지 않고 떳떳하게 맞을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이렇듯 작가들의 확고한 의지가 꾸준히 이어지기를 바란다. 또한 내년이면 벌써 10주년. 이 시기를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고 올바른 지역문화공간으로 정착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