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 | [문화시평]
멍석 위'허튼가락'이 넘실댄다
한지영 학국소리문화의전당 홍보팀(2005-01-06 10:27:31)
아들을 고대하는 딸부자집 막내딸로 태어난 24살 부산 아가씨, 고난역정 7번째 딸 구박받으며 자란 이야기 “이렇게 잘~ 컸습니다”하며 왈칵 솟는 눈물에 목이 메는지 침 한번 깊게 삼키곤 구성진 소리로 늘여놓는다. 이렇게 눈물나고 웃음 나오게 만드는 예술가가 몇이나 있을까. 나는 남들처럼 “좋다”, “얼쑤” 그런 추임 한번 넣지도 못하고 재빨리 눈물을 훔치며 어린 또랑깡대에게 박수를 보냈다.
나는 산조를 모른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 전통음악에서 차지하는 가치가 얼마큼인지...그저 산조가 좋아 한옥마루 구석에 엉덩이 붙일 자리 없나 두리번거리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산조 예술제 본 ‘감상문’ 내라기에 염치불구하고 몇 자 적을까 한다.
올해 산조예술제는 ‘산조. 새로운 시도와 다양한 접근을 위하여 5’라는 주제 아래 다른 해에 비해 규모는 작아졌지만 내실 있는 작품으로 꾸려졌다. 산조예술제 사람들은 날을 참 잘 잡았다. ‘산조 즉흥춤’이 펼쳐지는 첫날은 세계소리축제 전야제였고, 본 행사격인 ‘산조 엑스터시’가 있던 날은 소리축제 개막식이었다. 잃는 것, 얻는 것 따지지 않는 똥고집 때문일까? 가을날 ‘소리’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욕심 때문일까?
다양하던 프로그램은 단 세가지로 축소되고 일반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거리행사도 사라졌다. 민간주도 문화운동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되살려 관의 보조금을 받지 않고 행사를 꾸리다 보니 규모에 욕심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홍보 또한 미흡해서 평소 산조 예술제에 관심 있던 사람들 사이의 입을 통한 소문으로 하나 둘 한옥마을을 찾아왔다. 아무튼 공룡과 맞서는 작은 몸집으로, 뒷마당에서 들리던 산조예술제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는 한숨을 무색하게 하며 산조예술제는 고유의 빛을 밝혔다.
어느 해인가 각 유파별 대금산조를 3시간 넘게 들으면서 엉덩이 아파했던 기억, 조금은 지루한 분위기에 ‘그들만의 리그’라며 발길을 돌리던 이들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워낙 판이 많은 지역이기에 여기저기 쫓아 다니며 보고 듣는 수준이 올랐는지 올해는 조금 달랐다. ‘허튼가락’이 재즈와 만났을 때, 춤꾼들이 땅에서 발을 떼었을 때, 익살스런 소리꾼들이 재담을 풀어 놓을 때,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산조 바다 속에 맘 문 열고 몸 담그기만 하면 넘실넘실 같은 흐름을 탔다.
첫날 있었던 ‘산조 즉흥춤’은 산조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산조를 음악장르에만 국한한 것이 아닌 ‘춤’까지 확장한 개척 정신이 돋보였다. 춤꾼들은 멍석 위를 맨발로 사뿐사뿐 걷기도 하고 나비처럼 가볍게 날기도 하고 외로운 인간이 되기도 하며 춤 속에 감정을 담아 방출하였다. 꼼꼼하게 짜여진 각본대로 시간에 맞춰 정교한 기교를 선보이는 여타 무용과는 다른 자유와 한을 담은 우리네 춤, 그것이 산조 춤이였다. 쌀쌀한 가을밤인데도 땀에 젖어 나풀거리던 그네들의 머리카락, 나는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산조 정신을 느꼈다. 너무 추상적이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날 밤 초롱초롱 호기심 찬 눈동자로 산조 춤을 보던 어린이들의 마음을 닮는다면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투정부릴 이는 없을 것이다. 하긴 그 판을 보고 감정을 못 이겨 자신도 즉흥공연을 하겠다고 나선 이도 있으니 문외한인 내가 더 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두 번째 날 경기전에서 펼쳐진 ‘산조 엑스터시’는 그야 말로 예술의 경지였다. 전자거문고 연주자 김진희씨를 중심으로 꾸려진 무대는 전통음악에 중심을 두고 전자거문고와 해금, 퍼커션, 가야금, 장고, 김매물 만신의 굿춤으로 어우러지며 각 섹션마다 본래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합주의 조화를 갖춘 대작이었다. 애절함에서 신명, 지극히 한국적인 리듬에서 다시 프리재즈로, 90분간의 공연동안 관객은 새롭고도 익숙한 우리 산조의 매력에 귀를 기울였다. 홍보부족으로 관람객 수를 걱정하였지만 고적한 경기전 뜰을 500여명의 인파가 가득 채웠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작품의 제목처럼 ‘산조 엑스터시’에 도달하였다. 특히 미국인 게리 헤밍웨이의 퍼커션 연주와 이색적인 전자거문고의 출현은 현대 악기와 전통 악기를 접목한 실험적 무대의 성공을 보여줬다.
산조예술제의 대표 브랜드인 ‘또랑깡대 콘테스트’는 올해도 한옥마을을 웃음으로 들썩거리게 하였다. 참가자는 신세대 대학생 소리꾼부터 중견인까지, 소재 또한 미국 조지부시 대통령, 한국 며느리의 삶, 북남한의 남녀, 뇌물에 눈먼 부엉이, 매트리스 등 재치있고 끼 넘치는 판이 구수한 막걸리와 같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부조리를 꼬집고 비틀고, 그러면서 박장대소하게 하고, 눈시울 뜨겁게 만들고... 또랑깡대의 멋은 직접 만나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멍석을 깔고 둘러앉은 관객과 달랑 부채하나, 북하나 들고 서는 또랑깡대는 무대위의 공연자와 객석의 관람자로 나뉘지 않고 서로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흥을 만들어낸다. 소리꾼 숨이 가뿐 것 같으면 “막걸리 한잔하고 해라~”, “고수도 한잔하시오”하며 술잔을 건네고 안주까지 먹여주니 이런 풍경도 시골 마을잔치 아니면 또랑깡대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또랑깡대에게 힘이 되는 것은 이렇게 함께 장단 맞추고 호흡하는 관객일 것이다. 또랑깡대 뿐만 아니라 산조예술제 전체를 두고도 어느 누구도 팔짱끼고 “어디 잘하나 한번 보자”라는 관객이 없다. 간혹 사진 펑펑 찍으며 분위기 깨는 사람은 몇 있지만, 연주자 혹은 소리꾼들이 잘 놀 수 있는 판을 만들고 그 판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그곳이였다. 당신과 나도 맘 놓고 어깨춤 출 수 있는 멍석 위 말이다.
단촐하지만 큰 울림을 남긴 ‘산조 예술제’가 끝났다.
한옥에 울리던 소리꾼의 목소리, 경기전 적막을 깬 퍼쿠션과 전자 가야금, 손끝 움직임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인 외침...이젠 모두 잠잠해지고 마당을 돌며 함께 춤추던 관객들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해 산조 예술제를 기대한다. 고대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바로 진정한 ‘축제’가 누릴 수 있는 행복 아닐까. 나는 다음해 단 하나의 공연만으로 산조 예술제가 열린다 해도 박수를 보내며 그 작은 노력에도 감사할 것이다. 왜냐면 그저 산조가 좋으니까.
한지영 |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북대 문화인류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사단법인 '마당'이 주최한 문화기획아카데미를 수료했으며, 한국소리문화의전당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