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 | [문화시평]
원숙한 기량,철새조망대에서 날개 달다
이상조 전북대 미술학과 교수(2005-01-06 10:23:14)
새에 관한 최근의 기억이 있다. 지난 여름 45일간의 일정으로 인도 히말라야에 등반을 다녀왔다. 해발 4700미터의 베이스캠프는 삼면이 모두 육, 칠천 미터대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눈사태를 제외한 움직이는 것이라곤 우리 등반대와 스노우폭스라 불리는 눈에 사는 여우와 마치 매나 독수리처럼 하늘을 유유히 활공하는 커다란 덩치의 까마귀뿐이었다. 스노우폭스는 우리 식량을 몰래 도둑질해 먹기 위해 사람이 없는 고소 캠프에 나타나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하지만 까마귀는 아침부터 무리 지어 음식물 쓰레기통 주위에 나타나 어스름할 때까지 우리가 먹다버린 온갖 음식물을 먹어 치우고 재잘거리며 하늘을 마음껏 날아 오른다. 우리는 악천우를 만나 등반을 할 수 없는 날이 많았는데 하늘을 날아 오르는 그 까마귀 떼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까마귀처럼 날 수만 있다면 훨훨 날아 악마의 붉은 성벽이라 불리는 봉우리 정상에 올라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으니까... 우리는 등반을 마치고 하산할 때 남은 식량을 까마귀 떼를 위해 눈 위 여기저기에 모두 뿌려주고 내려 왔다. 비록 까마귀가 우리 정서에는 나쁜 이미지의 새이긴 하나 중력을 자유스럽게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런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아름다운 새'展은 군산 금강철새조망대를 개관한 기념으로 새를 주제로 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전시회이다. 군산 금강하구둑에 개관한 금강철새조망대는 매년 날아오는 수만마리의 철새를 관찰할 수 있게 교육적인 목적으로 개관한 국내 유일의 시설물이다.
새하면 많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미술평론가 최효준은 '화가는 왜 새를 그리고 조각가는 왜 새를 만드는가?'라는 긴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예술가들이 새에 접근하는 동기에 관해 이야기한다.
새는 비상한다. 인간은 육지에 터를 잡고 사는 존재인지라 창공에로의 비상은 그들의 영원한 꿈이었다. 창공의 새를 보며 날고 싶어하던 인간이 온갖 발명과 시행착오를 통해 마침내 '쇠로 된 새'를 만들어 내어 한꺼번에 수백명이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육체의 비상에 불과하다. 사실 인간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갈망해 왔던 것은 정신의 비상이었다. 이것은 현실세계로부터의 일탈과 정신적 고양을 의미한다. 리차드 바크의<갈매기의 꿈>에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것을 깨닫고 높이 치솟아 올라 갈매기의 세계를 떠난다. 그는 스승 치앙을 만나 깨달음을 얻고 사랑과 친절의 의미를 새기며 갈매기의 무리로 돌아온다. 이제 새라는 존재는 현실을 초월하는 영성적(靈性的) 진화(進化)의 표상이 된다.
새는 자신의 무게를 지니지 않은 듯 가볍고 자유롭게 공간을 이동한다. 자유로운 공간이동과 차원간 이동을 희구하는 인간은 새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었다. 그래서 새는 자유의 화신이자 해방의 상징이다. 감금된 상태의 인간이 새장 속의 새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네가 나와 같구나"하며 탄식하는가 하면,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보면 "나도 너처럼 날고 싶다"며 자유를 갈망한다. 그런데 육신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정신의 자유를 얻지 못한다면 그 삶은 지옥이다. 소설가들이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는" 느낌에 대해 말하거나 "추락하는 것의 날개"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정신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동양화 서양화 조각 서예 도예 등 많은 장르의 작가 15명이 참가한 이 전시회는 작가 개개인이 필자의 최근의 기억과 같은 절실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조형세계는 군산 금강철새조망대를 둘러 본 후 느껴지는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심을 완성시켜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 주고 있다. 물론 한 전시장 안에 두 개의 전람회를 바로 연결해 진열하는 작품 배치의 미숙함과 같은 실수가 눈에 띄기는 하였으나 원숙한 기량의 작품들이기에 그 흠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종만의 활달한 필치로 표현된 새들은 단숨에 새들의 정확한 몸놀림을 포착해 내는 원숙한 기량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또한 이세덕의 철 조각작품 비(飛)는 유머러스함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작가의 자연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아름다운 새'전이 관람객에게 좋은 감동을 주게된 이유는 철새 조망대와 같은 시설물이 있었기에 더욱 가능해졌다고 생각한다. 철새에 관한 모든 자료를 체계적으로 전시하여 자연환경의 중요성과 교육적인 체험을 얻은 후에 자연스럽게 기획 전시실로 이어지는 전시 동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나름대로 새에 관한 독자적 이미지가 형성되었고 작가의 상상력을 읽어 낼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다시 최효준의 서문을 빌어 새의 상징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뱀이 지하와 지상을 오가며 여성적 음(陰)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상징이라면, 새는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여 하늘의 양(陽)의 에너지를 지상에 전달하는 상징이다. 헤르메스는 날개달린 신발을 신었으며 샤먼들은 옷에 새의 날개를 암시하는 깃털을 꽂았다. 현대인에게 죽음과 불길한 이미지로 나타나는 까마귀는 고대 신화에서는 주로 태양의 새 예언의 새로 등장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세발달린 까마귀(三足烏)는 태양의 상징이었다. 솟대 꼭대기의 새나 벽사 부적에 그려진 삼두매들 모두 태양숭배와 관계된 이미지들이다.
오래된 무덤의 부장품이나 벽화 부적에 등장하는 새의 이미지는 인간 무의식에 깃들어 있는 '원형'을 자극하기 때문이며 인간은 이들을 통해서 우리 삶의 근저에 있는 원초적 생명력에 대한 암시를 받는다. 화가가 새를 그리고 조각가가 새를 깍고 빚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화가 자신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새를 그리고자하는 마음 저 깊은 곳에는 신화적 상상력이 촉발하는 바 삶의 깊은 뿌리에 자리한 원초적 생명력에 대한 비원(悲願)과 내재된 신성(神性)에 대한 외경(畏敬)이 엄존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화가로 하여금 새를 그리도록 충동하는 것이리라.
철새 조망대와 같은 시설물은 지방자치단체의 특수성을 극대화시킨 것이기에 앞으로 여타 지방자치단체의 모범이 되리라 믿는다.
이상조 |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미술교육과와 같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전북대 미술학과 교수로 있다. 전북판화가협회 창단의 산파역할을 하는 등 지역 미술을 올곧게 세우는데 큰 힘을 담당해 왔으며, 문화저널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