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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 | [특집]
기업의 공익 마인드와 문화예술의 바람직한 조우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5-01-06 10:21:52)
문화예술의 궁극적 지향은 무엇일까.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문화예술 행위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사람의 정신과 의식세계, 섬세한 정서를 표출함으로써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의 자세를 성찰케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예술은 그래서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삶의 양태를 담은 그릇일 수 있다. 문화예술의 궁극적 지향이 삶과 정서적 풍요에 있다는 답이, 오래됐지만 언제나 맞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문화예술 행위자의 순수한 창작욕구와 그 창작의 결과물을 감상하고 싶어하는 향유자들의 욕구는 문화예술을 움직이는 기본 인자이자 발전의 원천일 수밖에 없다. 창작자와 향유자가 있었기에 시대를 관통해 늘 존재해왔던 문화예술은 삶의 중요한 동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으로는 크게 우대받지 못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개발과 성장의 이데올로기에 발목잡혀 '경쟁력' 없는 장르로 밀려나 있었고, 창작인들은 오랫동안 가난했다. 그런데 이제 문화를 사고 파는 시대가 왔다. 문화예술이 자체의 '경쟁력'을 얻어서일까. 물론 물질이 풍요로워지고 문화예술 수요자와 향유자가 증가하면서 경쟁력이 높아지긴 했지만, 자본의 투자와 고도의 포장술(홍보 및 마케팅)이 '경쟁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물론 그 또한 문화예술 행위자들에게서 나오는 자본과 포장술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사고 파는 자본가들과 마케터들의 몫이 훨씬 더 크다. 특히 자본을 쥐고 있는 기업들의 의식변화와 움직임은 문화예술계에 적지 않은 파장과 영향을 주고 있다. 기업이 문화예술과의 접목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새롭게 하거나 회사의 상표 경쟁력을 얻기도 하고, 최근에는 잘 팔리는 문화상품에 기업들의 투자가 몰리면서 그 문화예술장르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이른바 '문화 마케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그로 인해 '흥행'이나 '대박'을 의식한 문화상품에만 관심을 기울이면서 기업의 천박한 시장논리에 문화예술이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에 대한 기업의 투자가 반드시 돈을 벌기 위한 이윤 창출의 논리만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올바른 문화마인드가 문화예술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육성으로 이어져 활력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시장논리에 입각한 영악한 '투자'가 아닌, 기업과 문화예술의 만남, 기업 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통해 자립성이 취약한 문화예술을 지원함으로써 기업은 기업대로 신뢰를 높일 수 있어, 상호간의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과 투자, '메세나'(Mecenat)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기업 중심의 문화운동이다. 기업의 문화예술 투자, 메세나운동은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정착돼 온 개념이다. 그 나라의 문화예술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기업의 역할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단순한 '자선'의 개념이 아닌 기업도 '좋은' 시민으로서 사회에 그 이익을 적극적으로 환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일종의 기업윤리라는 인식이 더 크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의 전반적 합의 차원보다는 CEO들의 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과 의지의 차원에서 메세나가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사단법인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94년 발족)와 같이 문화예술에 대한 기업 차원의 투자와 지원을 이끌어내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가 하면,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제도적 노력들이 얹혀지면서 기업들의 의식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문광부는 기업이 문화예술 활동을 보다 많이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법인의 기부금 손비인정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중이다. 지금은 법인 또는 개인 소득의 5% 이내의 기부금에 대해서만 손비인정이 되고 있다. 전북지역에도 향토기업을 비롯해 대기업 지사 등의 문화예술 지원이 꾸준히 이어져왔다. 펜아시아페이퍼코리아와 전북은행, 하림, 석정수, 하이트, 현대자동차, KT, 기아특수강, 우진기업 등이 협찬과 후원 등을 통해 문화예술 단체나 행사를 지원하는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인식이 예술경영이나 문화 마케팅의 개념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되짚어볼 대목이 많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의 순수성과 사회에 대한 의무,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진지한 고민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박인배 민예총 기획실장은 "미국이나 유럽은 몇 백년의 역사를 이어온 기업들이 많고, 사회적 환원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하나의 기업 풍토나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어 메세나 운동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아직도 '선심 쓰기'나 오너의 입맛에 따라 지원 내용과 폭이 결정돼 진정한 의미에서의 메세나가 정착되려면 적잖은 시간과 의식의 전환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고 지적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기업들의 철학과 진지한 투자가 진정한 문화예술 발전을 도모하고, 기업이 스스로 '좋은'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의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설명. 인식의 전환과 내실화에 있어 재정비되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지만, 메세나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과 인식확산은 꾸준히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특히 지난 1994년 문화예술에 관심과 뜻을 같이하는 기업들이 모여 발족한 사단법인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의 역할을 주목해 볼만하다. 이 단체는 기업과 문화예술인들의 가교 역할을 자임하며 '1기업 1문화운동'을 비롯해 모범적인 기업을 대상으로 한 메세나 시상식 등을 꾸준히 벌이면서 '메세나' 확산에 기여해 오고 있다. '흥행'이 보장되는 대중예술이나 스포츠 등에 기업들의 관심이 편중되면서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는 최근 자정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순수예술 창작활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지난 6월 전북지역에도 전북메세나협의회가 발족돼 전북지역 메세나 활동이 힘을 얻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팬아시아페이퍼코리아, 아미티에, 하림 등의 기업인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으며, 각 대학 교수들이 기획운영위원과 고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북메세나협의회는 기업과 문화 사이의 상호 연관관계를 찾고 상승효과를 내기 위한 다양한 메세나 홍보활동과 프로그램 개발, 연구 및 조사활동 등을 활동의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발족 5개월을 맞은 지금, 아직까지 이렇다할 가시적 성과나 활동이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 있지만, 전북지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메세나 관련 의식조사와 세미나 등이 기획되고 있어 기대를 놓기엔 이르다. 전북지역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은 주로 본사의 프로그램이나 방침에 따라 지원되고 있지만, 대부분 기업 협찬이나 지원이 지역의 대형 축제로 몰리고 있어 개인이나 소규모 창작집단들의 불만이 만만치 않다. 민간 주도의 문화행사를 추진하는 주체들이나 개인 창작인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이야기가 "발에 땀이 나도록 쫓아다녀도 협찬 기업 하나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볼멘 소리. 문화예술 한 관계자는 "대형 축제들에 치여 작은 문화행사나 소집단에 대한 지원은 거의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고, 기업이 사회 환원을 위한 여윳돈이 있다 하더라도 큰 돈은 언론사 광고비로 다 흘러가지 않느냐"며 "기업을 상대로 프로그램이나 문화행사에 관해 아무리 설득하고 홍보해도 귀기울이지 않을 땐 비굴하고 초라한 느낌마저 든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기업들이 대형 축제나 오페라, 유명 합창단 공연 등 '이름내기' 좋은 행사에 관심과 지원이 치우쳐 대중들의 문화적 편식을 조장하거나 순수 문화예술을 지향하는 창작집단들에게 반감을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기업주의 취향이나 학연, 인맥 등으로 문화예술 지원이 결정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와의 유대관계가 문화예술 지원에 있어서도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에 관한 철저한 마인드가 없다면, '메세나'를 통해 실질적인 문화예술 지원이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북메세나협의회 김성수 사무처장은 "기업이 업종이나 기업의 이미지, 컨셉에 맞는 문화예술 장르를 찾아내고, 지원의 전문성과 기준을 갖출 때 기업과 문화예술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메세나의 윈-윈 전략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주문한다.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기업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만큼 문화예술인들 역시 '순수성'에 갇혀 기업과의 교류를 기피하거나 대중을 끌어들이는 '문화 비지니스'를 천박한 것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비판도 새겨봐야 할 부분이다. 기업주들은 협찬이나 지원요청이 쇄도하는 속에서 어떤 단체를 어떻게 지원해 줘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문화예술인들의 기획력이나 적극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해 주는 대목. 기업 이윤이나 경제적 목적으로 메세나에 접근할 경우, 문화예술이 시장경제논리에 종속돼 왜곡될 수 있다. 기업의 철저한 문화마인드와 전문적인 예술경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것이 메세나의 함정이랄 수 있다. 또 문화예술이 외부의 지원 없이 자립기반을 갖추기 어렵다는 속성을 갖는 한, 문화예술인들도 대중성과 경쟁력을 도외시하고 순수성만을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업이 문화예술이 갖는 다양한 메리트와 힘을 다각적으로 포착하고, 그것을 문화예술 발전과 바람직하게 조우할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인식의 전환이 전제될 때 메세나의 의미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업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문화와 복지, 교육 등에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의무를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기업과 문화예술이 상호 상승효과를 거두는 윈-윈전략의 발판이 될 수 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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