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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 | [문화칼럼]
'종이쪽지에'에 가려진 독립운동사
신순철 원광대 교수ㆍ한국현대사(2005-01-06 09:28:54)
사십오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 세계 최장기 복역수로 기록된 김선명 노인, 그는 스물다섯 청년 때에 본 어머니를 칠십의 총각 노인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인간적 고뇌와 의지를 다룬 영화 <선택>이 지난달 말에 개봉되어 코믹폭력물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영화를 업그레이드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하고 싶다.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와 분단의 비극을 시종 웃음을 통해 전달하면서 주인공이 전향서 라는 ‘종이쪽지’ 하나 때문에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고 함축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50년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35년 만에 귀국한 송두율 교수는 그 '종이쪽지' 문제로 구속되는 현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 '종이쪽지'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이념 문제는 비단 살아있는 사람들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생애에도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독립운동가들의 경우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에게까지도 이념의 잣대는 지금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김제에서 신간회 지회를 조직하여 항일활동을 하다가 3년간이나 옥고를 치른 정판갑 이라는 독립운동가가 있다. 후손들은 지난해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하였으나 보류되고 말았다. 또한 남원지역 신간회 활동과 관련하여 복역했던 이두용이라는 인물도 마찬가지였다. 해방 후 여러 차례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하였으나 번번이 거부되었다. 근거가 미비하다는 등의 사유로 보류 또는 반려된 것이다. 정판갑의 이력을 간단히 살펴보면, 1905년에 김제에서 태어난 그는 3.1운동 이후 중학교를 그만두고 교사가 되었으나 신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1921년 동경으로 건너갔다. 와세다 대학 상과에 입학하여 일년 남짓 수학하던 그는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일본의 조선인에 학살을 계기로 귀국하여 항일운동에 종사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김제에서 청년회를 조직하여 등의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6개월간 복역하였으며 1928년에는 신간회 김제지회 간사 및 본부 대의원으로 활동하던 중 체포되어 2년 6개월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서대문 형무소를 출옥한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지하활동을 계속하다가 해방을 맞았고 해방 후 여운형 김철수 등과 건국사업에 종사하였으나 43세때인 1947년 미군정의 포고령 위반으로 서울 자신의 집에서 검거된 후 현재까지 행방불명 된 상태다. 가족들은 6.25를 전후해서 좌익인사들에 대한 처형 과정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간회는 좌우합작으로 이루어진 합법적인 독립운동 단체였고 또한 좌파인사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간회 관련자들 가운데에는 좌파 인사들이 옥고를 치른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독립유공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사실, 그들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조직 활동 경력자라는 것이다. 위에 든 사람들 외에도 국내외의 항일운동 과정에서 좌파활동을 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해방 후 전향서라는 이름의 그 '종이쪽지'를 쓰지 않은 한, 아직까지도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을 수 없다. 심지어는 학술논문에서도 좌파 경력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쓸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 장지락이라는 인물의 독립운동 행적을 전기로 쓴 님 웨일즈의 『Song Of Ariran』(번역명; 아리랑)은 그 사료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80년대까지 국내반입조차도 금지되었다. 이제는 이들 모두가 고인이 되었으니 누가 대신 그 '종이쪽지'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친일 행적이 있는 사람들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어 이를 다시 취소하는 사태에까지 이른걸 보면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반공이념은 민족에 우선하는 가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의 독립운동사는 반쪽의 독립운동사일 수밖에 없다. 초, 중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우리 역사 교과서에 좌파 계열의 독립운동은 찾아 볼 수 없다. 1930년대 만주지역의 화북조선독립연맹이나 동북항일연군, 재만조국광복회는 물론이고 항일운동의 전선통일운동 단체인 조선민족전선연맹이나 전국연합진선협회 등도 교과서에는 제외되어 있다. 특히 1930년대 이후의 독립운동사를 다룬 남과 북의 역사책을 보고 있노라면 등장인물이나 단체가 서로 달라 마치 서로 다른 나라의 독립운동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남북정상이 만났고 남북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어 남북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아직도 이념의 거리는 조금도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사회 내부에서조차도 그 이념의 거리는 멀게만 느낀다. 선거 때만 되면 색깔론 시비가 등장하고 국회에서조차 면책특권을 이용한 색깔론 덧씌우기가 끊이지 않는걸 보면 반공주의는 아직도 유용한 정치도구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선조들의 명예 회복을 가로막고 있는 이념의 걸림돌은 곧 반공주의에 기반하는 국가보안법이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고 문화예술 창작의 자유까지도 제약하는 이 법은 반쪽의 우리 독립운동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그 '종이쪽지' 제도를 철폐하기 위해서도 하루 속히 청산해야할 구시대의 유물이다. 신순철 | 1951년 경북 안동 출생. 원광대 원불교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사학과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현재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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