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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 | [파랑새를 찾아서]
학급 선행을 마치고
김종필 동화작가 효림초등학교 교사(2005-01-05 15:38:41)
가을이다. 너무 크게 운 태풍 매미 때문에 한반도 동쪽과 남쪽이 혼란에 빠졌다. 인재니 천재니 언제나 되풀이되는 소리가 들린다. 확실한 것은 자연은 인간이 그렇게 호락호락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작정 경외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위험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자연을 툭하면 만만히 보고 사람 위주로 바꾸어 놓으려는 이기심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 하지 않았는가. 교만함보다는 겸손함이 확실히 몇 급 위다. 아이들과 등산을 했다. 1학기 학급 마라톤을 치르고 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산에 오르며 가을을 느껴보았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했다. 준비과정은 쉽지 않았다. 먼저 평일에 한 학급을 데리고 산에 오른다는 것. 나의 마음준비도 준비려니와 결재과정에서 염려소리를 반복해서 들었다. 관리자 입장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소리였다. 전에 같이 근무했던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첫인사치고는 참 고약한 인사를 받았다. "'똑' 소리나면 '딱' 소리납니다." 풀이하면 이렇다. 홀로 다른(똑똑한) 소리를 내지 마라. 다른 길은 생각지 말고 교장인 자신이 의견대로 따라오면 그게 진짜 똑똑한 교사다. 그렇지 않으면 '딱'소리나게 맞는다. 자신을 기준으로 미움받을 짓을 안 했으면 좋겠다. 대충 이런 뜻이다. 80년대에 유독 '인화단결'을 학교에서 강조했다고 한다. 그 정점은 물론 학교장이었고. 그런데 그런 사고가 초등교육 현장에서는 아직도 남아서 가끔 나처럼 힘없는 교사를 기죽게 한다. 교사가 새롭지 않고 새로운 교육이 어디에서 오겠는가? 그 교장선생님과 나는 나의 그 시답잖은 그 '똑' 소리 때문에 가끔 부딪쳤다. 스승의 날 전후에 있었던 일이다. 최근에는 교육자 대회를 이 즈음에 한다. 교육자 대회 휴업일을 언제로 할 것이냐를 놓고 교사 의견조사를 했다. 토요일에 쉬면 연휴이니 좋지 않느냐, 주위 학교가 모두 그렇게 하니 같이 했으면 좋겠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스승의 날에 쉬는 것이 그 의미로 보나 사회의 눈치(?)로 보다 훨씬 좋을 것 같아서 다른 의견을 나타냈다. 그것이 '똑' 소리로 들렸나보다. 나 없는 곳에서 '험담' 하는 것으로 부족했던지 교감선생님을 두 번씩이나 교실로 보냈다. 웃기는 일은 그렇게 토요 휴업일을 주장하고 두 명을 뺀 나머지의 동의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휴일은 스승의 날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똑똑한 교장선생님과 교사 95%의 의견을 교육청 협조 공문 한 장이 태풍 '매미'처럼 한 방에 날려 버렸다. 물론 그에 대한 변명은 아직도 들은 적이 없다. 행여 남이 볼 때는 이번 산행도 혹시 '똑' 소리나는 짓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학부모들의 도움이 컸다. 다들 삶이 녹녹치 않을 텐 데도 7명의 학부모가 차를 운행해 주었다. 훔쳐먹는 사과가 맛있다고 했던가, '공부' 안 하고 우리 반만 산에 간다고 하니 신이 나나보다. 다들 들떴다. 중인리 주차장에 모여 기념 사진을 찍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대형도 통제도 없다. 제일 만만한 친구와 손을 잡고 재잘거리며 걸으면 된다. 처음과 끝이 턱없이 벌어진다. 그래도 상관하지 않았다. 자기 성질대로 가면 되는 것이지 산에 오르는 시간까지 내 간섭을 받아야 쓰겠는가. 훗날 모두 사람 구실 제대로 하고 크게 될 녀석들이지만 그 중 좀 별난 녀석이 하나 있다. 방학 때마다 반세계화 교육을 받으러 쫓아다닌다는 오동선이다. 공부 쪽으로는 별로 튀지 않는데 사람 즐겁게 해 주는 데는 한가락한다. 며칠 전에는 일기도를 신문에서 스크랩하거나 인터넷 자료를 인쇄해 오는 것을 숙제로 내줬다. 동선이도 물론 해 왔다.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숙제 검사를 하고 있는데 키득키득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뿔사' 내 탓이다. 동선이의 기상천외한 편법 숙제를 찾아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일기도를 준비해 오지 않은 동선이가 버젓이 과학 교과서에 나온 일기도를 오려서 검사를 맡은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행동을 해도 화가 나지 않으니 나도 꽤나 이 녀석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동선이는 도시락 대신 비디오 카메라를 메고 산에 오른다. 카메라를 메고 있으니 친구들이 간식거리도 해결해 준다. 산에 오른다기보다는 산을 즐긴다. 길바닥에 널브러진 고슴도치 시체도 찍고 개구리도 찍고 친구의 엉덩이도 찍는다. 이렇게 즐기고 있는 아이가 무슨 흥미가 있어 땅만 보고 무작정 오르는 등산이 재미있겠는가. 스스로 즐기는 법을 벌써 터득한 것이다. 선두보다는 당연히 한참이나 뒤로 쳐졌지만 행복까지 적게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 길이 여러 개 있었다. 동전을 던져서 가보자고 했다..... 평소에 싫어하는 아이였지만 오늘은 길을 찾아 준 그가 밉지 않았다. - 차 속에서 본 오빠들이 너무 멋있어서 나는 손바닥을 치면서 발광을 했다. 나는 분명 사춘기다. -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돌아오는 길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 산을 올라가는데 자연에서 나는 진한 풀 냄새가 코를 찔렀다. -힘들었지만 우리 반 친구들과 우정을 쌓았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재수 없게 비가 내렸다. 감기가 걱정된다고 교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감기가 뭐 대순가? 비를 맞으며 산에 오르는 일, 지금 아니면 언제 해 볼 것인가. -발에 물집이 수도 없이 잡혔지만 참으로 내 인생에서 뜻 깊은 날이었다. -평발인 홍승환이 대단했다. 칭찬해 주고 싶다. -넘어졌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내리막길이라고 너무 만만하게 보았나보다. 산행을 마친 아이들이 쓴 글에서 일부를 옮겼다. 산은 싸움하듯이 혹은 시험지를 놓고 일정한 시간 안에 얼마나 덜 틀리느냐를 놓고 경쟁하듯이 올라서는 안 된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와 풀과 돌을 동무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지천으로 핀 물봉숭아와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애쓰는 으름 덩굴과 난데없는 손님들에 놀라 푸드득 날아가는 꿩들이 우리 반 아이들의 담임교사였다. 어떤 이는 인생에서 불변하는 위대한 스승은 둘이라고 했다. '자연'과 '나이'가 그들이란다. 학급 산행은 가랑비와 흐린 날씨 때문에 노심초사했지만 아이들에게 훌륭한 스승 한 분을 소개한 것 같아서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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