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0 | [문화저널]
가난 속에서 버린 가난
농부(2005-01-05 15:37:00)
문득 책장을 둘러보니, 『길을 잃는 즐거움』 또는 『풍요로운 가난』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월든』을 쓴 데이빗 소로우보다 열 배나 오래 숲속에 살았다는 월리스 카우프만이 쓴 자전적 이야기인데, 다 읽지는 못했고, 그 제목은 짐작컨대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서 비로소 만났던 숲속의 자연이 보여주는 경이로움에 대한 이야기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낯선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당혹감이란, 상황에 따라선 공포에 가까울 때도 있다. 물론 밝은 대낮에 비교적 작은 숲에 접근했을 때는 그나마 걱정이 덜한 편이다. 예전에 고사리를 따러 숲을 헤매다가 길을 잃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그 참에 장항쪽 기슭에서 찬물이 쏟아져 나오는 석굴을 처음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 참 놀라운 경험이다. 그러나 다짜고짜로 '길을 잃는 즐거움'이란 제목을 볼 때는 참 역설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풍요로운 가난』 역시 마찬가지다. 엠마뉘엘 수녀님이 쓰신 책이라는데, 아마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영적으로 부유할 수 있다는 생활 속의 영성을 드러내시는 것 같다. 다행히도 수녀님은 생활적 가난을 훌쩍 넘어설 수 있는 영성을 신앙을 통하여 미리 선물 받으셨겠지만, 그런 행운이 오지 않았던 내핍 생활자들의 가난이란 그렇게 풍요롭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말씀을 제목으로 삼는다는 게 퍽 도발적으로 느껴졌다.
어떤 독실한 교수님은 제도권 교회의 신앙을 비판하기 위하여 몇 년 전에 아예 『예수는 없다』란 책을 내셨다. 보수적인 교단에서 믿으라고 강요하는 그런 식의 예수는 없다는 뜻이라고 나중에 들었는데, 어찌 되었든지 제목이 역설적이고 도발적이다. 하기사 불교에서는 자기 안의 부처를 만나려고 평생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가르치지 않던가.
길을 잃고 가난하게 사는 게 즐겁고 행복하다는데, 예수도 없고 부처도 죽여야 참 진리가 보인다는 데, 갈 길은 멀고 험하기가 이를 데 없다는 느낌이다.
지난 십 수년 동안 '자발적 가난'이란 말을 수없이 듣고 새기며 살아왔다. 해방신학의 세례를 받았던 탓에 만인의 해방을 위해서 분투하는 사람은 으레 가난해야 하고 가난하기 마련이었다.
가난은 뜻 있는 자의 살아있는 긍지이며 눈에 잡히는 훈장이었다. 예수는 분명히 그 길을 걸었고, 나 역시 그 길을 가야한다는 의지가 소중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분명 갑자기 온 것은 아니겠지만, 예수는 해방자의 모습뿐 아니라 치유자로, 친구로, 나의 행복을 바라시는 분으로 다가왔고, 실상 구원자는 예수의 얼굴로 부처의 모습으로 자연의 음성으로도 새겨졌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이제 예전 방식으로 이해되던 그런 '예수는 없다'고 해야할 판이다. 어쩜 이런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나의 '생활'이었던 것 같다. 생활의 발견. 영화 제목치곤 따분할 것 같은, 그러나 그 영화만큼 그늘지고 쓸쓸했던 것이 '나의' 생활이 아니었을까.
자발적 가난이란 명제가 내 삶을 이곳 산골 광대정까지 밀고 온 셈인데, 그 길에서 나는 자발적 가난을 버렸다. 내 삶에서 부당하게 차지하고(강박하고) 있던 무게를 덜어내고 있다. 나는 사실상 구체적으로 엄연하게 지금 여기서 '가난하다.' 아이가 생긴 뒤로는 그 가난을 더 실감하고 있다. 정작 가난한 생활을 '발견'하고 나니 가난을 버리고 되었노라는 이야기다. '청빈(淸貧)'이란 멋진 말로 포장된 것을 벗겨버렸다. 그렇다고 소비적 인간, 소유 중심의 인간이 되겠노라는 타락선언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나는 지금 가난하고 어떤 점에선 보잘 것 없는 인간이란 걸 인정하자는 것이고, 그런 내가 싫다는 것이고, 그래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충분히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참이라는 것이다. 돈을 좀 벌고 싶고, 내가 마치 태어나기 전부터 갈망해 오던 것처럼 느껴지는 어떤 욕구를 채우고 싶다는 것이다. 사회적 대의에 앞서 나 자신의 대의에 충실해보는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충분히 꽃피울 때, 결과적으로 세상에도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뜻을 스스로에게 거듭 말해 두는 것이다. | 농부